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인기있는 일본 미스테리 작가중에서 "아, 이 사람이라면 인기있을만 하군!"하고 생각하는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이다. 글에 어느 정도 안정성이 있고, 어떤 책을 골라도 크게(아주 크게) 실망하는 법도 없고, 읽기도 쉬우며, 그들만의 필력이랄까, 소재를 다루는 노련함같은 것은 인기작가가 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그들이 소설 말미에 내놓는 훈훈한 결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어쨌든간에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는 크게 싫어하지는 않고 뭘 읽어도 어느 정도 읽을만도 하지만, 확 끌리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의 소설을 다 읽어본 것도 아니지만, 읽어본 몇개의 소설들로는 그럭저럭 읽을만은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 아직도 깨지지 않는다.)

미래의 아들이, 과거의 아버지를 만난다.
이 얼마나 뻔한 설정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키오>는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하는 소설이다.
소설 말미까지 미래의 아들 도키오가 어떤 방법으로 과거로 타임슬립을 하게된 건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지만, 미래의 아들 도키오는 어머니와 만나기도 전의 아버지를 만나러 아사쿠사 놀이공원으로 가게 된다.
분명 심성은 착하지만, 성격이 불같고 한량기질이 있던 아버지의 젊은 나날들을 만나게 되면서, 되려 아들이 아버지를 키우는 꼴이 되어버린다. 복잡한 사정으로 헤어진 생모와의 만남을 어렵사리 주선하고,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여자친구의 행방을 쫓으면서, 아버지 다쿠미는 아들에 의해 성장하게 된다.
철난 아들과 철없는 아버지의 만남, 과거로의 여행 같은 것 자체는 뻔하고 식상하지만, 그것을 재밌게 풀어낼수 있는 재주가 바로 노련함이 아닐까 싶다.

뻔하디 뻔하게 소설은 흘러가고, 소설의 결말 역시 상상한 바대로이다.
그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서 읽어갈수록 훨씬 더 재밌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읽을만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는 어딘지 뒷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아마도 너무 안정적이어서 그렇거나, 또는 내가 이 소설가에게 매료될 만한 뭔가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느껴지듯이 정체성이 모호한 여자캐릭터들은 여전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여자등장인물 두명 다, 어쩐지 참아주고 기다려보는 전형성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나마 자신의 의지로 일가를 꾸려낸 생모의 캐릭터는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서는 참신하달까. 그나마도 여전히 순종적이긴 하지만...)
꺼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찾아읽을 생각은 들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빠지게 될 일이 앞으로 있을까. 그의 대표작이라는 소설을 읽게 된다면 그렇게 될까.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감성은 내게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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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저 사랑에 빠졌을 뿐인데.
스물여덟살에 사랑에 빠진 것이 그렇게나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죄였을까.
<잠자는 라푼젤>의 주인공 결혼 6년차의 전업주부 시오미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상대가 열세살 중학교 1학년 소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년의 남자를 만나 바람이라도 폈다면 나았을걸. 그렇다면 다들 혀 한번 끌끌 차고 말았겠지.
일찍 출산했더라면 아들같았을 소년을 사랑한다니,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가 왜 13살의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아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시오미는 광고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만나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 다들 예상하듯이 남편은 한달에 두세번쯤 겨우 집에 들어온다. 안전한 집이 있고, 너무나도 쿨한 나머지 아내에게 참견따위 하지 않는 돈 잘 벌어오는 남편이 있고, 매달 그녀의 통장에는 남편이 보내주는 많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용돈이 있고,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두려워하는 그녀인지라 비교적 무난하게 동네아줌마들 사이에도 끼일 수 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늘 집을 비워 얼굴도 잊어버릴것같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을지, 그 외로움이 치가 떨리게 싫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시오미는 자신에게 단서를 단다. 그녀는 천성이 게으르기 때문에, 결혼 전 남편을 만나 꼭 결혼하리라 생각했고, 이런 단조롭고 부족할 것 없는 일상이나 남편의 부재에 불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을 편하게 생각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낮잠이나 실컷자면서 이어지는 이런 일상들이 그녀에게는 꿈이었던 것이다.
무엇이 불만이어서 이런 용납받기 힘든 사랑에 빠진 것일까.
그녀는 성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아둥바둥 이어가는 일상속의 사람들에게 피해 무료함과 안락함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것이다.

책의 제목은 "잠자는 라푼젤"이지만, 읽으면서 피터팬과 웬디를 떠올리게 되었다.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결국은 나이가 들어 피터팬의 곁을 떠날수 밖에 없는 웬디.
열세살 소년 루피오와 스물여덟살의 온실속의 화초 아줌마 시오미의 사이는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무 일 없는 이런 일상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남편이, 남편이 어디선가 바람을 필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오미의 거세된 욕망이, 어린 소년앞에서 무너진 것이 아닐까.
자라고 싶지 않았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무료한 권태에 만족하면서도,
인간인 이상 시오미의 마음 어딘가에는 하고싶은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거세해버린 모든 욕망의 결핍을 충족시킬 충격적이고 위험한 뭔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만이 권태에 찌들어버린 그녀 자신을 깨고 나오게 할, 변하게할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열세살 소년과 스물여덟살의 주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책이고, 보통사람의 시선에서 보기에는 충격적일 만한 육체적인 사랑 역시 책에는 등장하지만, 결국 이 주인공에게 필요했던 것은 변화의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아이들은 누구나 어른이 되고싶어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누구나 차라리 아이였으면 한다. 되돌아갈수 없는 시절의 그리움이나 순수한 욕망들을 나이가 들어서는 뚜렷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모험같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보니 어차피 별일없이 세상은 이어지고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권태가 시작된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갈증 같은 거, 어차피 풀수 없다고 생각하는 맥빠지는 폐배감은  어른이 되면 얻게되는 삶의 지혜면서도, 삶을 더더욱 무료하게 만든다.
시오미의 충격적인 사랑이야기가 낯서면서도 온전히 이해할수 없는 것이 아닌 이유는 무료한 일상을 이어가는 누구나에게나 어떠한 자극이든지 갈망하고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랑이 루피오의 말처럼 그 아이가 어른이 될때까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한때의 자신처럼 변해가는 루피오를, 어린아이이고 싶은 웬디 시오미가 받아들일수 있을까. 미래가 어떻게 이어지든간에, 시간이 흐르면 알게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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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깨어나 보니 병원이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한 남자가 있다.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에서 다루어졌듯이 이 주인공 "나탕"은 사고로 기억상실증이 되어버린 남자이다. 수많은 기억상실증 주인공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피의 고리"의 주인공 "나탕"은 다른 기억상실증 환자보다 더더욱 집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북극 빙하에서 조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해 정신을 차려보니 기억을 잃은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모두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어딘지 수상하고 기묘한 느낌이 감도는 가운데 병원을 탈출해 과거를 찾으려던 그에게 그를 쫓는 사람들이 따른다. 어렵사리 찾아간 자신의 집이었던 곳은 휑하기만 하다. 나탕은 어렴풋이나마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과거를 필사적으로 쫓으며 고군분투 하게되는데, 알면 알수록 자신의 존재는 더더욱 이상했다. 여러가지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결국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미지의 인물-마치 유령같이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전세계를 누비며 진행되는 "피의 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막히는 부분없이 술술 읽어갈수 있는 미덕을 지닌 스릴러 소설이다. 많은 스릴러 소설들이 그렇듯이 "마치 한편의 영화같은" 느낌이 드는 방대한 스케일의 스릴넘치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져 생각해보자면, 나는 이 책이 그저 그랬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장면들이 너무나 많이 연속되며, 왠만한 스릴러 소설들을 많이 읽다보니 이제는 스릴러 소설에서도 "영화같은" 느낌을 덜 받을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장르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충분하나, 작가의 개성이 희미하며, 프랑스 소설임에도 프랑스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미국소설같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드는 소설이라, 그 점도 많이 아쉽다.
초반부의 강렬함과 박력이 중반부 이후까지 지속되지 않아서 후반부는 읽는데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니, 그보다는 읽으면서 결말이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달까..)

책을 읽다가 잘쓰여졌고 기억에 오래남는 스릴러 소설의 조건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수많은 스릴러 소설들이 있지만, 게중에는 어떤 사람들이 장르문학을 이야기할때 말하듯 "시간떼우기"에 불과한 소설이 있는가하면, 명작 계열의 스릴러 소설도 있기 마련이다.
예술의 모든 부분에서 그렇지만, 잘쓰여진 명작 스릴러 소설의 조건 역시 만든이의 철학과 개성이 첫번째 가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메시지는 흐릿해져도, 그래도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은 작가라는 한인간이 남기는 열정과 고뇌와 진중한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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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일상 토크쇼 <책 10문 10답>



1) 당신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을 알려 주세요.

먹어보고싶었던 이라기보다는 종종 책을 보면서 먹게 되는 것들이 있다. 주로 자기전에 책을 보기 때문에 먹기 좀 그런 시간이지만,=_=; 초콜렛이나 과자종류를 보통 먹고, 가끔은 바나나나 참외같은 과일도 먹는다. 그래도 책 볼때는 왠만하면 먹지 않으려고 한다.(책을 보다 자는 경우가 많아서...=_=;)

2) 책 속에서 만난, 최고의 술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책속에서 말고, 작가인 아사다지로 아저씨를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다. 그 사람이 보는 인간은 어떤 동물일지. 책을 보다보면 책쓴이에게 "아, 이사람 현자다!"하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소박한 의미에서 아사다지로는 내게 그런 종류의 소설가이다. 사람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몹시 매력적이고, 닮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현자라고 생각하는 후루야 미노루도 만나 보고싶은 사람. 이 사람은 아주 거칠면서 은근히 소심한 사랑스러움이 있을 것 같다.


3) 읽는 동안 당신을 가장 울화통 터지게 했던 주인공은 누구인가요?

하기오 모토의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가 울화통을 터지게 만들었다. 새아들에게 찝적대는 악마같은 그레그도, 그레그에게 끊임없이 성적 폭행을 당하고 자신이 갈갈이 쪼개어지면서도, 엄마에 대한 사랑때문에 참기만 하는 제르미, 바보같이 남편이 아들에게 가혹한 짓을 저지르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또는 수수방관하고)만 있는 바보같은 어머니-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 졸이고, 속상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던지 말도 못하게 고심하면서 보았던 만화이다. 물론 내가 제르미같은 상황에 빠지게 되면, 나 역시 어떻게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 하게 될것같기는 하지만......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동굴속에 갖힌 것 같은 책. 이렇게 갑갑한 만화책은 흔치 않은데, 그래도 읽게되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책이다.


4)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표지는 책의 얼굴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표지/최악의 표지는 어떤 책이었는지 알려 주세요.
최고의 표지도, 최악의 표지도 너무너무 많다. 그중에서 뽑아보자면-

뭐랄까. 일러스트 표지인 책들은 자칫하면 책 자체를 저렴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호하게 되는 표지디자인은 아니지만, 노블마인에서 나온 쓰네가와 고타로 책 표지는 너무너무 좋다. 작가 색과 무척 잘 어울리는 그림체이기도 하고, 같은 작가의 책이 같은 포맷을 갖추고 나오는  일관성도 갖추고 있어서, 특히 쓰네가와 고타로를 좋아해서 책을 모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감사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꽂힌 펭귄클래식의 아름다운 표지들. 표지만으로도 사질러버리고 싶은 유혹이 솟구친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아름답고 깔끔한지, 이런 표지를 가진 책들로 가득찬 책장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ㅠ ㅠ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기담문학 고딕총서의 책들도 무척 어여쁜 장정을 하고 있으나, 이상하게 책은 읽히지 않는다. 먼저 읽어본적 있는 책들인데도, 읽히지 않으니 왠일? 그래서 앞으로는 안보게 될것같다;;;;

 

최악의 표지라고 생각되는 비채의 블랙앤 화이트 시리즈. 어쩌면 이렇게 센스가 없는지 너무나 궁금하다. 특히 <럭키걸>의 표지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런 표지의 책은 읽고싶지가 않아서 책을 사지도 않았다. <다크>와 <유지니아>는 보았는데, <유지니아>는 다 보고나서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들었던 첫번째 책이었고, <다크>는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책임에도 도무지 재밌게 읽을수가 없었다.  아아, 제발 이런 가혹한 표지들은 제발....ㅠ ㅠ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은 안다. 표지는 별로지만, 내용은 의외로 재밌는 책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심각한 넌센스의 표지들이 책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맞는 말인 것 같다.


5) 책에 등장하는 것들 중 가장 가지고 싶었던 물건은? (제 친구는 도라에몽이라더군요.)

물건이라기 보다는 한번쯤 보고싶은 장면.

<빙글 빙글 도는 미끄럼틀>은 가볍게 읽으려고 읽었다가 생각보다 꽤 짠한 기분이 들었던 소설인데, 그중 한 장면은 상상만 해도 정말 아름다울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번쯤 그런 장면을 내 눈속에 기억시키고 싶었다.

등장인물은 20대 초중반의 학원 선생님과 초등학생. 장소는 옥상. 시간은 해질 무렵. 선생님이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면서 했던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무척 세심한 말들. 다정하고 눈부신 기억처럼 한번쯤은 사진처럼 머릿속에 담아두고 싶은 장면이다.



6) 헌책방이나 도서관의 책에서 발견한, 전에 읽은 사람이 남긴 메모나 흔적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정확히 이 앨범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엠플로 앨범이니까...)

책은 아니지만,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한 CD이야기. 일본에 여행갔을때, 북오프에서 여러 앨범을 사온 적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CD를 무척 깨끗하게 듣는지 CD들 상태가 무척 좋더라. 중고CD임에도 CD가 깨끗한건 물론이요, 띠지부터 CD속 광고지까지 껴있다. 그중에 M-flo의 CD가 한장 껴있었는데, CD안에 이벤트 응모 엽서가 껴있는 것 아닌가? 더 웃기는 것은 그 CD의 본 주인은 그이벤트에 응모하려고 했는지, 이벤트 설문지를 다 쓴 것도 아니고, 쓰다 말았더라. 내가 알아볼수 있는 것은 이름과 이메일 주소였는데, 왠지 그 이벤트 엽서를 보고 있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메일로 편지보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흐흐..

7)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되는 것은 기쁘면서도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화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로 남겨둘 수 있었으면 하는 책이 있나요?

코넬 울리치의 <상복의 랑데부>. 너무 사랑하는 책이라 사놓고 몇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책을 사자마자 일단 두번을 읽었다.;;; 평소 나는 책을 두번이상은 잘읽게 되지 않는다.)

내게는 "환상의 여인"같은 책이랄까. 코넬울리치의 소설은 항상 어딘지 전위적인 슬픔이 도사리고 있어서, 머릿속에 담아놓은 코넬울리치 소설의 이미지들이 구체적인 현실화 되어서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저 안개같은 꿈처럼 남겨두고 싶다.

다른 의미에서 영화화되면 안될만한 책들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나 <살육에 이르는 병>같은 텍스트형 반전이 있는 소설들이 아닐까? 이 소설들이 영화화 된다는 것은 정말 아무 의미없다.-_-;



8) 10년이 지난 뒤 다시 보아도 반가운, 당신의 친구같은 책을 가르쳐 주세요.
어린시절의 내게는 가장 친구같았던 책. 어릴때 너무 할일이 없어서 책을 읽을수 밖에 없었던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사랑하게 된 책이 <제인에어>였던 것 같다.  이 소설로 나는 빅토리아풍 고전들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내게 <제인에어>같은 명작은 두번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너무 많이 읽어서 대사를 외울 지경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마저도 희미해져서 스물 두살땐가 다시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 왠걸? 내 기억속의 소설과 무척 다른 것이 아닌가? 까칠한 미남처럼 기억되던 로체스터씨의 기억은 "그의 커다란 머리" 한구절에서 산산조각났고, 예쁘지도 않고 나약해보이지만, 자기 의지가 강한 여인이라 생각했던 제인에어의 따박따박 따지는 말투는 조금 재수 없었다.ㅠ ㅠ

그래도 내게는 내 인생의 첫번째 친구같은 책. 나이가 들어서 읽어도 너무 재밌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수가 없었다.


9) 나는 이 캐릭터에게 인생을 배웠다!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싶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이 있었나요?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싶은 책은 없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에 영향받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말로 사람에게 감동을 줄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책들은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이다. 내용이 주는 감동 이전에, 캐릭터들이 읊어대는 대사들이 주는 짠한 느낌들이 좋아서 나는 이 책들을 좋아한다. 언제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들은 어렵고 복잡한 말들이 아니라, 사소하고 간단하고, 흔한 말들이더라.


10) 여러 모로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가서 살고픈, 혹은 별장을 짓고픈 당신의 낙원을 발견하신 적이 있나요?

거의 서울에서만 살아와서 나는 서울을 떠날수 없을 것 같다. 서울에서만 20년 넘게 살아오다보니 서울의 나쁜 면과 좋은 면, 모두 알고 있지만, 대도시가 주는 쓸쓸함 또한 이제 나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시골같은데 내려가서 살고싶다는 생각은 해본적 없다. 가고싶은 곳이 있다면, 반드시 여행이 될 것이다. 나는 서울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서울에서 살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마도 평생 이루어지지 않을 꿈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_=; 이 세상 어딘가에 별장을 하나 지을수 있다면, 지중해같은데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빨간 구두>를 보면서 주인공 남자가 살던 지중해의 집을 보면서 저렇게 바다를 마주보는 집에서 일주일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 <고래와 창녀>를 보면서는 그 황량한 파타고니아라는 섬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곳에서라면 평생은 아니더라도 한달쯤은 살아보고 싶다. 푸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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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수없게가까운 2008-10-2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에 머리카락 잘라주는 장면은 저도 참 인상깊었어요^^

까칠마녀 2008-10-2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펭귄클래식이나,기담문학을 향하여 같은 생각을 했던지라...나말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반갑네요.코드맥카시와 주제 사라마구는 저도 많이 좋아하고,'상복의 랑데부'는 완~전~죽음이죠^^

Apple 2008-10-2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군요..^^
이제 외롭지 않아요.(?)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Miracle 1
강지영 외 지음, 김봉석 엮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보면 기대에 못미치는 책을 만나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재밌는 책을 만나게 된다. 이책은 내게 후자쪽,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던 책이다.
세상의 모든 단편집들의 공통점이겠지만, 한 책에 수록된 모든 단편들이 재밌다고 말할수는 없다. 어떤 단편들은 참을수 없을 정도로 보기 버겨운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자주 읽게 되는 것은 혹시 그 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한방을 기다리는 심정이 꽤 즐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생각보다 재밌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수록된 단편들 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스릴감의 재미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몇년전만해도 미미하던 국내 장르소설의 분위기라던가 수준이 정말 많이 성장한 것을 느끼고, 앞으로도 우리나라 장르소설을 더 보고싶은 마음도 드는데, 책 뒤를 보니 이것도 시리즈 도서이더라. 다른 책들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단편 인간실격에는 정체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종족이 등장한다.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을 먹는 종족-그것이 외계인이거나 새로운 인간의 종족인지에 관해서는 별 다른 설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 괴물들에게 처자식을 잃은 한 남자가 인간과 섞여 살아가며 전혀 티나지 않는 그 괴물들을 냄새만으로도 알아볼수 있게 되면서 이 남자는 세상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이 괴물들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
먼저 말했듯이, 장르소설이 줄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재미는 갖춘 소설이지만, 어딘지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어서 어디선가 이 비슷한 것을 봤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또 스릴러라기보다는 공포소설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이어지는 단편 나의 왼손에서는 간질수술을 받은 여자가 어느 날 왼손이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병을 앓았고, 그 때문에 누군가에게 의지를 해야했던 나약한 이 여자의 왼손이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 의지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사소한 일부터 그녀에게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약하지만, 왼손은 포악하다.
왼손은 어쩌면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자아를 대변하고 있느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야만성은 있다. 이 여자의 과거는 이 단편에서 자세히 등장하지 않지만, 간질병을 앓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나 알고있다. 병약해 자신을 움츠리고 살아야 했던 이 여자의 마음의 병이 왼손에게 또다른 자아를 부여했던 것은 아닐까. 현실은 부자연스럽지만, 자유를 꿈꾸었던 마음의 병. 처절하게 와닿지는 않지만, 이해할수 있을 것도 같다.
흐름이 자연스럽고, 뭔가 비밀스러운 느낌을 풍기며 스산하다는 느낌이 드는 매력적인 단편이다.
 
피해의 방정식에서부터 나는 비로소 이 단편에 집중해서 보게되었다. 주인공은 순간순간 정신을 잃는 병을 가지고 있는데,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자살사건에서 자신이 관계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의 잃어버린 쌍둥이 동생을 떠올린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단편으로 전형적으로 잘 보여지던 모습들이 등장함에도 꽤 즐겁게 읽을수 있는 단편이다. 어딘가 뻔해보이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이 단편집내에서는 영화로 만들면 가장 좋을 것 같은 단편이 이 단편이다.
 
질주는 이 단편집 중에서는 "스릴"의 목적에 가장 충실한 단편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스티커를 붙여주고, 봉투를 내밀면서 "살아 돌아와라."라고 말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봉투안에는 5천만원이 들어있고, 약속된 장소까지 오면 5천만원을 더 얹어주겠다는데.
그래서 주인공은 쫓기고 달리고, 몸싸움도 벌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약속한 5천만원은 더 얹어받았다. 그렇게 끝이라면 이 단편이 그렇게 재기발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지 못했던 한방이 있는 단편이었다. 스릴있고, 재기발랄하고, 재밌다.
 
주말여행에서는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주는 스릴을 맛볼수 있다.
결혼한지 3년, 일을 벌여놓고 늘 수습하지 못하는 남편과의 사이는 오래전에 벌어져서 각방쓴지도 오래되었다. 마트가자던 남편은 왠일로 옷을 말끔히 차려입었고, 왠일인지 친절하다. 주인공은 그 행동에서 미심쩍음을 느끼는데, 마트에서 다녀오던 길, 남편은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그녀를 데려간다. 주말여행이나 하자나? 그렇게 도착한 펜션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한단계씩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같은 단편으로,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확실한 것이 참 마음에 든다. 현실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무척 섬뜩한 일이겠지만, 소설로 읽었을 때는 코믹잔혹극같은 느낌이 든달까.
 
액귀에서는 술취해 잠든 한 남자가 폐가에서 깨어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지만 도무지 나갈수가 없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귀신이 등장하는 단편인데, 그냥저냥 읽을 만하지만 이야기가 기억될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아서 아쉽다.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그 뒤에 나오는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에서도 계속 된다.
마지막으로 한탕하기로 하고, 주인공은 어딘지 미스테리한 한 여자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와 함께 한 대저택으로 잠입하면서 커다란 사건이 벌어진다. 도둑질하기로 한 것은 언제던가, 어느새 생존게임을 벌이게되는 이야기로, 어떤 면에서는 앞서 등장한 질주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 단편이다. 역시 전형적임이 아쉽고 드러나는 진실을 유추해내기도 쉬운 단편이기는 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생존게임이 거침없이 진행되어서 시원시원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분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세상에 쉬운 돈벌이가 없다는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별로일 거라고 예상했던 단편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예상은 빗나가서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밌게 봤던 단편이다.
한때 경호원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백수인 가진건 몸밖에 없는 한 남자가 타고난 힘과 근육을 근거로,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을 해결해주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날 스토커를 떨어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는데, 이 스토커가 보통 스토커가 아니다. 등장인물은 딱 네명. 근육질의 남자, 스토커, 스토킹 당하는 여자,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딱 네명만 등장해도 이 단편은 무척 풍부한 느낌이 든다. 개개인의 살아온 이야기와 그에 따른 성격이나 장단점을 짧게나마 모두 설명하고 있어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간혹, 일본 장르소설에서는 많이 보였던 서술방식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소설에서는 그런 꼼꼼한 점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이 단편에서 각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하는 꼼꼼함을 잘 느낄수가 있어서 무척 재밌었다.
재밌고, 독특하고, 한편으로는 유쾌하기도 하고, 이 단편 베스트라고 꼽을수 있는 단편이었다.

나만의 베스트를 뽑아보자면, <나의 왼손> <질주> <주말여행> <세상에 쉬운 돈벌이가 없다>정도인데, 굳이 특별히 재밌는 것을 뽑지 않아도 어느 것이나 다 기본적인 재미는 갖추고 있는 단편집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끔 다른 단편집에서는 한개씩 정도는 아주 마음을 찢어놓는 것들이 하나씩 껴있었는데, 이 단편집에는 그런 단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슬픈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조금 아쉽다.
몇년전에 비하면 우리나라 장르소설이 정말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느껴진다.
소재도 그렇지만, 표현방식 또한 기존의 장르소설에서 보여지던 틀에서 벗어나서 한결 읽기 수월하면서도 재밌어지고 있고, 많은 부분에서 숙련되고 세련된 맛을 느낄수 있다.
지난번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나의 식인 룸메이트>같은 경우가 그랬지만, 이 단편집 역시 단편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기 때문에 일상의 지루함을 소설에서나마 잠시 잊을수 있는 좋은 단편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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