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저 사랑에 빠졌을 뿐인데.
스물여덟살에 사랑에 빠진 것이 그렇게나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죄였을까.
<잠자는 라푼젤>의 주인공 결혼 6년차의 전업주부 시오미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상대가 열세살 중학교 1학년 소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년의 남자를 만나 바람이라도 폈다면 나았을걸. 그렇다면 다들 혀 한번 끌끌 차고 말았겠지.
일찍 출산했더라면 아들같았을 소년을 사랑한다니,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가 왜 13살의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아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시오미는 광고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만나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다. 다들 예상하듯이 남편은 한달에 두세번쯤 겨우 집에 들어온다. 안전한 집이 있고, 너무나도 쿨한 나머지 아내에게 참견따위 하지 않는 돈 잘 벌어오는 남편이 있고, 매달 그녀의 통장에는 남편이 보내주는 많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용돈이 있고,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두려워하는 그녀인지라 비교적 무난하게 동네아줌마들 사이에도 끼일 수 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늘 집을 비워 얼굴도 잊어버릴것같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었을지, 그 외로움이 치가 떨리게 싫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시오미는 자신에게 단서를 단다. 그녀는 천성이 게으르기 때문에, 결혼 전 남편을 만나 꼭 결혼하리라 생각했고, 이런 단조롭고 부족할 것 없는 일상이나 남편의 부재에 불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점을 편하게 생각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낮잠이나 실컷자면서 이어지는 이런 일상들이 그녀에게는 꿈이었던 것이다.
무엇이 불만이어서 이런 용납받기 힘든 사랑에 빠진 것일까.
그녀는 성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아둥바둥 이어가는 일상속의 사람들에게 피해 무료함과 안락함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것이다.

책의 제목은 "잠자는 라푼젤"이지만, 읽으면서 피터팬과 웬디를 떠올리게 되었다.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 팬-결국은 나이가 들어 피터팬의 곁을 떠날수 밖에 없는 웬디.
열세살 소년 루피오와 스물여덟살의 온실속의 화초 아줌마 시오미의 사이는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무 일 없는 이런 일상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남편이, 남편이 어디선가 바람을 필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오미의 거세된 욕망이, 어린 소년앞에서 무너진 것이 아닐까.
자라고 싶지 않았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무료한 권태에 만족하면서도,
인간인 이상 시오미의 마음 어딘가에는 하고싶은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거세해버린 모든 욕망의 결핍을 충족시킬 충격적이고 위험한 뭔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만이 권태에 찌들어버린 그녀 자신을 깨고 나오게 할, 변하게할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열세살 소년과 스물여덟살의 주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책이고, 보통사람의 시선에서 보기에는 충격적일 만한 육체적인 사랑 역시 책에는 등장하지만, 결국 이 주인공에게 필요했던 것은 변화의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아이들은 누구나 어른이 되고싶어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누구나 차라리 아이였으면 한다. 되돌아갈수 없는 시절의 그리움이나 순수한 욕망들을 나이가 들어서는 뚜렷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모험같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보니 어차피 별일없이 세상은 이어지고 어쨌거나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 권태가 시작된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갈증 같은 거, 어차피 풀수 없다고 생각하는 맥빠지는 폐배감은  어른이 되면 얻게되는 삶의 지혜면서도, 삶을 더더욱 무료하게 만든다.
시오미의 충격적인 사랑이야기가 낯서면서도 온전히 이해할수 없는 것이 아닌 이유는 무료한 일상을 이어가는 누구나에게나 어떠한 자극이든지 갈망하고 필요로 한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랑이 루피오의 말처럼 그 아이가 어른이 될때까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한때의 자신처럼 변해가는 루피오를, 어린아이이고 싶은 웬디 시오미가 받아들일수 있을까. 미래가 어떻게 이어지든간에, 시간이 흐르면 알게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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