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 애장판
하기오 모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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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아는 사람들, 연인. 뿌리깊은 고목처럼 나이가 들수록 얼기설기 가지를 치고, 그동안 쳐내려가는 가지도 있을 것이고 더 커지는 가지도 있을 것이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내 존재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거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으며, 누구가의 연인이었던 사람. 그러면서도 혼자서 존재하는 사람.
나이가 한살씩 먹어갈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존재하지만, 타인이 있기에 혼자 존재할수도 있다는 생각.
살아가면서 겪었던 존재감의 하찮음이나 무거움, 그 어느쪽이든 그리 호락호락한 감상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존재하고, 무엇때문에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다분히 관념적이고 철학적이지만, 누구나 하는 결론도 나지 않을 고민들.
존재감의 휘청거림을 가장 많이 느꼈던 시절은 어쩌면 사춘기였을지도 모르지....

하기오 모토의 <방문자>에 등장하는 사춘기 역시 그랬다.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모두 "무엇때문에" 살아있음에 대한 존재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한없이 바람처럼 떠돌기만 하는 아버지의 죄를 덮으려 거짓말을 하는 오스카가 그랬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일수 있는 죽음에서 멈추어버린 소년 라울이 그랬다.
그들은 무엇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 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한없이 방황한다.
<방문자>를 읽으면서 가슴 한켠이 아리면서 존재감의 하찮음과 무거움에 서글퍼진 것도,
괴로워하며 피를 흘리는 세계가 너무나 사랑스럽다던 라울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어둠속에 내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언젠가 그런 생각으로, 그런 고민으로, 그런 허무함으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오 모토의 글은 송곳같아서, 찌르고, 피를 흘리게 만들고, 그러고는 그냥 내버려둔다.
상처가 그렇듯, 세상이 그렇듯, 무책임하고 허무하고 아름다워.
그래서 이 아이들은 너무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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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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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이트 시티
에릭 라슨 지음, 양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10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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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시티
에릭 라슨 지음, 양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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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는 "윈디시티"라는 별명으로 불뤼기도 한다. 지금까지 무척 단순하게 "아, 바람이 많은 도시인가보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보다보니 시카고가 윈디시티라고 불뤼우는 이유는 허풍쟁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보다는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바람"과 연관시키는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똑같은 가보다.
이 소설은 그 허풍쟁이들이 시카고로 모여들던 시절, 19세기말 시카고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이 세계 박람회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자리를 구하러, 또는 젊은 혈기에 더 넓은 세계를 보러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인 셈이니,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좀더 자신있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허풍을 좀 섞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터.
이중에 딱 한명, 세기에 남을만한 허풍쟁이가 하나 존재했으니, 그의 이름은 홈즈라고 한다.
이미 눈치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셜록 홈즈의 그 홈즈이다. 영국제 이름으로 보이기 때문에 뭔가 있어보였는지, 그는 자신을 홈즈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미국 역사상 첫번째로 기록된 연쇄살인범이었다.

홈즈의 사기행각과 살인방식을 보고있다보면, 이 시절 사람들은 어찌나 이리도 순진하던지, 거의 외상과 노동착취로 커다란 건물을 하나 짓는데도 누구도 홈즈를 의심하지 않았고, 지하에서 사람이 태워져 나가고 있는데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기위해 도시로 나간 처녀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홈즈의 비밀스러운 건물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1892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 있었던 음지와 양지의 사건들을 재구성한 이 책 "화이트시티"에는 매력적인 인물 두사람이 등장한다. 선량한 미소로 자신의 음울한 살인욕망을 덮을수 있었던 H.H.홈즈, 그리고 세계 박람회의 총지휘자 건축가 번햄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두 주요 등장인물들을 지나치게 미화시켜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한 점이 좀 거슬리지만, 한 세계를 창조해낸 남자 번햄과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파괴를 일삼는 남자 홈즈를 묶어 설명하려는 점은 무척 독특했다. 굳이 소설로 읽을 것만이 아니라 역사서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도 좋을법하다.
세계 박람회가 준비되고 끝날때까지의 상세한 설명들과 자질구레하기까지한 사실들도 흥미로웠고, 살아생전 한번도 만난적 없는 두 사람의 극적인 대비도 제법 재밌다.
다만 건축보다는 범죄에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조금 아쉬운 점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인생보다는 역사에 남는 박람회를 기록하는 것이 더 수월했을테니, 홈즈의 이야기보다 번햄의 이야기가 압독적으로 더 많이 등장하기도 해서, 홈즈와 번햄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니 조금 안달나기도 하더라.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선과 악.... 이리도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것들의 차이는 그저 종이한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뚜렷한 선을 그어 그들을 분리해놓는다. 그것이 여러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최선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편리한 구분법은 될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일수록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점은 참 신기하고 무서운 사실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똑같은 시대, 똑같은 장소에서 창조와 죽음이 이리도 거창하고 비밀스럽게 일어났던 것일까.

발행연도를 보니 나온지 꽤 된 소설인데, 비인기 소설인가보다. 몇년전, <인 콜드 블러드>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것을 떠올리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버리기에는 아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인 콜드 블러드>가 더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실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중에 <인 콜드블 러드>를 뛰어넘는 논픽션 소설을 내가 다시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때문이다.)
특히 "팩션"이 아닌 "논픽션"소설에 흥미가 많은 사람들은 놓치면 후회할만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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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정한 OOO을 위한 추천도서!

멀리서 불어오는 황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어도, 봄은 여전히 봄입니다. 한해의 시작은 1월이 아니라 3월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만일까요. 

인생의 봄이라 할수 있는 청춘(靑春).
바람은 살랑살랑, 마음은 저 하늘 어딘가로 붕떠버리는 이 봄에는 청춘소설이 제격이지요.  

그리하야- 여기 조금 특별한 청춘소설들을 모아보았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푸르른 청춘들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애매모호한 몽상을 꿈꾸었던 시절, 끊임없는 자신에 대한 고뇌, 범죄에 가까운 은밀한 욕망, 나약한 우유부단함,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할거라는 치기 어린 고독감. 그런 것 역시 청춘의 또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괴롭기 때문에, 어설프기 때문에, 알수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청춘은 더 청춘답습니다.

 

 

 

 

 

 

 

도나 타트-비밀의 계절 

이 청춘들은 지금 엄청난 고뇌에 빠져있습니다. 잠도 들지 못하고, 하루종일 넋이 나가있으며, 그동안 친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살인을 했으니까요. 우발적으로 한번, 계획적으로 또 한번. 그것으로 그들은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지요. 

<비밀의 계절>에 등장하는 이 청춘들은 최고의 엘리트 학생들이고 자신들이 지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애들은 애들일수밖에 없습니다. 청춘을 지나면서 누구나 겪었을 동년배 친구들에 대한 선망과 질투, 달뜬 치기, 비밀모의의 쾌감같은 것- 누구나 겪지는 않았을 "살인"이라는 형태를 빌어서,  이 책은 누구나 겪으며 자라온 것들을 공감하게 합니다. 추리소설과 순소설의 중간쯤의 형태이지만,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성장하며 상실하는 청춘의 성장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에단호크-이토록 뜨거운 순간 

배우 에단호크의 소설입니다. 에단호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중 하나이지만, 배우가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건지 사실 조금 우습게 보고 이 소설을 보기 시작했지만, 기대 이상의 성장소설이었습니다. 

스무살 청춘만큼이나 설레이는 단어도 흔치 않겠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청춘들은 딱 스무살 답게 열정적이면서, 서툽니다. 사랑해도 표현하지 못하고, 사랑해도 두려워 도망쳐버리고, 결국 자신밖에 모르는 사랑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에만 가슴아파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잊혀질 것은 잊혀지고 실연에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우리는 결국 살게됩니다. 이 어설프고 서툰 사랑들이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실패로 조금 더 커져 진짜 어른이 되는 모습이겠지요.

누구의 연애에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제법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소설로, 사실은 스무살보다도 스무살을 지나온 사람들이 더 공감할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터 헤지스-길버트 그레이프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인데, 얼마전에 다시 재발간 되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영화보다 재밌는 원작소설은 많지만, 이 책 역시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재밌었다고 생각합니다.  피터헤지스의 문장에는 청춘이 차고 넘치지요. 

소설의 주인공 길버트 그레이프는 한창 청춘에 한 가정을 책임져야할 책임감을 가진 청년이죠. 어머니는 움직일수도 없이 뚱뚱하고, 동생 어니는 정신박약아이고, 이들을 책임질 사람은 길버트 그레이프 뿐입니다. 한창 청춘에 돈벌고 구제불능 가족들을 책임지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겠지요.  

길버트는 자유를 꿈꾸죠. 여느 청춘이 그렇듯이. 갑갑하고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 족쇄가 되어 눈앞을 빼곡하게 채워도, 길버트에게는 자유로의 꿈이 있습니다.  

누가 이 청춘을 사랑하지 않을수가 있을까요. 상처받을 만큼 상처받고, 쓰러지고 싶어도 안간힘을 써서 일어나고, 갑갑하면서도 꿈을 꾸는- 이 청춘이 전해주는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은 영화 그 이상입니다. 

로버트 코마이어-텐더니스 

여기에 또 이상한 청춘들이 있습니다.  

계부에게 성추행 당하면서도 딱히 싫어하는 기색이 없는 소녀, 그리고 전형적인 미남 모범생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연쇄살인범 소년. 그들은 어쩌면 한없이 영악한 청춘들입니다. 소년도 소녀도, 자신들에게 타고나 갖추어진 외형적인 장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삐뚤어진 행각을 계속해 나가니까요. 

제목처럼 부드러움에 취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게 된 연쇄살인범 소년과 우연히 소년을 보고 그에게 키스해야겠다는 강박이 생겨버린 소녀가 만나게 됩니다. 아이의 얼굴에 어른의 몸을 가져서 남자들에게 표적이 되는 소녀와 여자아이가 주는 부드러움에 심취해버린 연쇄살인범 소년의 만남이  어떻게될지는 안봐도 뻔하겠지만, 예상하고 있듯이 이 청춘들의 엔딩은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굳이 그들을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의 마음속에는 다 존재할 말못할 상처들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기억나지 않는 꿈같은 찝찝하고 몽롱한 느낌. 그들에게 청춘이란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이언뱅크스-말벌 공장 

여기에도 이상한 소년이 하나 등장하네요. 

학교는 다니지않지만, 어디서나 볼수 있을법한 아주 평범한 소년. 하지만 이 소년은 끔찍하게 여자를 혐오하고, 작은 동물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이상한 취미마저 있습니다.  아주 나쁜 아이인가 싶으면, 또 그건 아닙니다. 동물 학대를 즐기지만, 남이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죽이지도 않고, 여자를 싫어하지만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는 매너도 갖추고 있고, 저 나름대로 가족들 사랑하기도 합니다. 

소설이 긴장감을 가지게 되는 지점은 정신병자인 형이 정신병원을 탈출하면서 부터입니다. 형을 증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광적인 행동을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지켜보기"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언뱅크스는 이런 기이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소년을 어떤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그를 평가하거나 단죄하려는 생각도 없어보입니다. 이런 이상한 취미, 이런 이상한 욕망-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누구나에게나 한때 있었던 것들이 아닐까요.

멜빈 버지스-빌리 엘리어트 

<길버트 그레이프>에 이어 영화부터 먼저보고 책을 한참후에 보게된 책입니다. 말이 필요없는 반짝반짝 아름다운 성장소설이죠. 

남자라면 당연히 권투라고 생각하는 탄광촌 마을에서 권투보다 발레가 더 좋은 소년 빌리 엘리어트와 그를 둘러싼 소동과 가족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 정말 어쩌면 뻔한 성장드라마입니다만,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간절히 원하며 되기를 바라는 빌리의 모습에 그야말로 꿈꾸는 청춘이라는 설레이는 감정으로 두근거릴수 있는 소설입니다.    


에이단 체임버스-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청춘은 그저 반짝이는 것만이 아니라 잃어가기때문에 더 아름답습니다. 행복만 계속된다면 그것이 행복인지 알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죽을만큼 괴로웠기 때문에 아름다웠다는 모순적인 감정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에서는 죽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소년이 다른 소년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우정을 나누고, 그 다음에는 사랑에 빠지고, 그 다음에는 키스를 하고, 그 다음에는 싸우고, 그 다음에는 한쪽이 죽어버리고 맙니다. 

짧지만 열정적이었던 사랑. 이것이 행복이로구나-하고 알수 있을 정도로 유난히 반짝 반짝 빛나던 시절에 만난 사람의 잃어버린다는 것은 다른 어떤 실연보다도 더 힘겨운 것 같습니다. 너를 잃고 나를 잃었다-만큼 가슴아픈 말이 또 있을까요. 수다스럽고, 사랑스러우며 그리고 아름다운 성장소설입니다. 

 

*봄은 청춘의 계절. 무언가 시작하기에 딱 좋은 계절임과 동시에 흘러가면 다시는 안올것같은 계절입니다.  비록, 청춘이라 할만한 나이가 훌쩍 지나가버렸어도 청춘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다는 상투적인 말을 내뱉어야할 순간인가 봅니다. 

꿈을 꿀수 있다면, 슬퍼도 다시 한번 웃을수 있다면, 아직도 열정을 믿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청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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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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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소설과 일반 소설의 차이점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어떤 소설들을 미스테리 소설이라 부르고, 어떤 소설들을 순수문학이라고 부를까. 매니아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일개 독자의 입장으로써 그것이 언제나 내게는 미스테리였다.
모든 소설은 미스테리를 간직한다. 주인공이 어떤 성장과정에서 자랐고, 그래서 어떤 성격과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고, 이 이야기에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초반 10페이지내에 모두 서술된 소설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나씩 밝혀지는 이야기들, 주인공들이 간직한 비밀들, 그 조각조각이 모여서 커다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모두 "미스테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 30분만 얘기하면 그 사람의 성격부터 성장배경, 살아온 이력을 모두 알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 사람의 말투, 행동거지, 얼핏 들어온 살아온 방식으로,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추리해나가는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고, 미스테리는 있다. 사람도 그렇고 소설속의 주인공도 그렇다.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 소설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 비밀, 그 미스테리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라고-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알아가는 설레임과 비슷하다. (물론 다 알고났는데 매력없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소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면으로는 거의 모든 소설이 미스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스테리 소설과 순수문학의 차이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끔씩 추리, 미스테리 계열소설들중에서 "어라,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잖아?"하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 소설들이 나타나는데, 그런 의문에 나는 여전히 "그래도 이것 역시 미스테리"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같은 경우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배후를 하나씩 추적해나가긴 하지만, 사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고, 그 추리자체가 스릴넘치는 것도, 뭔가 예상치못할 깜짝 놀라는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그 성격의 이중성, 추악함과 그것이 만들어낸 기이하고 불쾌한 사건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것은 "미스테리"였다고 규정하고 싶다.

왠지 서론이 길어졌지만,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 역시 그런 소설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추리소설의 형태를 완전히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소설 역시 나는 미스테리라고 규정하고 싶다. 왜냐면,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에 얽힌 여러가지 사건들이 등장하니까. 단순히 생각해서 그렇다.

주인공 쿄코는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여자이다. 부잣집 딸로 자라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긴 했지만, 삼촌손에서 매우 부유하고 완벽하게 자랐고, 얼굴 예쁘고, 옷 잘입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하고, 그만큼 자존심도 쎄다.
단 하나 그녀에게 단점이 있다면 그녀가 불임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프라이드를 목숨같이 여기는 여자가 남들 다 하는 거 하나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치명적인 치부이겠는가.
그런데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전화속의 여자는 자신이 남편의 내연녀라고 말하면서 그 사람의 아이를 가졌단다. 게다가 요리하나 못하는 무능력한 마누라라고 비난하며, 심지어 집으로 모자 건강수첩까지 보내면서 쿄코의 자존심을 긁어놓는다.
그래서 쿄코는 결심한다. 그 여자를 죽이기로. 살인까지 결심할 정도로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집에 있던 농약을 이용해 그여자의 집에 몰래 잠입해 오렌지주스에 농약을 탔고, 그 결과 뉴스에서 죽은 내연녀 마유미를 보게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은 이런데, 책장을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더 복잡하게 흘러간다.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느꼈다고는 결코 말할수 없으나, 간결한 듯 뛰어난 심리묘사(사실 자존심 좀 상했다고 살인까지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불능이긴 하지만, 읽다보면 이런 여자라면 그럴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와 납득이 가는 소설속의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것이 무척 흥미로워서 책이 빨리 끝나버릴까 조금씩 아껴읽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우연으로 밝혀지는 사실들이 너무 많은 점과 거의 완벽해보이던 완전범죄에 예상치 못한 목격자가 지나치게 많이 드러나는 점이 아쉬워서, 그 점에서는 작가가 생각이 좀 짧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것이 작가의 처녀작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면 무척 훌륭한 짜임세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이 무척 재밌었던 이유는 독보적인 주인공 쿄코의 캐릭터 때문이다.
완벽하고, 독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쎈 여자. 완벽한 여자이면서 팜므파탈인 이 이미지는 여자로써는 무척 매력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남자 추리소설작가들이 지은 책에 등장하는 팜므파탈과 여자 추리소설 작가들이 지은 책에 등장하는 팜므파탈의 이미지는 비슷한듯 하면서 몹시 다르다.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그려낼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여자가 보는 여자작가들의 팜므파탈은 무척 음습하고, 더 농밀하게 악랄하면서도, 그 점이 매력적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은 책 제목 "얼음꽃"이라 부를수 있는 쿄코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괜찮은 여자작가를 만났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특히 일본 여자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지나치게 여성성에 기댄 여자캐릭터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한데, 독특하게도 이런 악랄하고 한편으로는 고독한 여자 주인공들을 만나면 기뻐서 가슴이 뛴다.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결국은 나약한 여자일뿐인- 그런 캐릭터들은 이제 좀 질린다. 사실 여자는 좀더 복잡한 존재가 아닐까. 질투와 허영과 악의를 가진 소악마이면서도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에는 과감이 희생을 할수 있는 천사, 양면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는 복잡다난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얼음꽃>의 작가 아마노 세츠코는 60대에 데뷔했다고 한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
몇년이 걸리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시간을 돌고 돌아서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지 아니한가.
즐거운 소설이고, 여자들이 읽으면 더 즐거울 지도 모르는 소설. 앞으로도 작가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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