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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시티
에릭 라슨 지음, 양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시카고는 "윈디시티"라는 별명으로 불뤼기도 한다. 지금까지 무척 단순하게 "아, 바람이 많은 도시인가보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보다보니 시카고가 윈디시티라고 불뤼우는 이유는 허풍쟁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기보다는 부풀려서 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바람"과 연관시키는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똑같은 가보다.
이 소설은 그 허풍쟁이들이 시카고로 모여들던 시절, 19세기말 시카고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이 세계 박람회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자리를 구하러, 또는 젊은 혈기에 더 넓은 세계를 보러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인 셈이니,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좀더 자신있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허풍을 좀 섞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터.
이중에 딱 한명, 세기에 남을만한 허풍쟁이가 하나 존재했으니, 그의 이름은 홈즈라고 한다.
이미 눈치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셜록 홈즈의 그 홈즈이다. 영국제 이름으로 보이기 때문에 뭔가 있어보였는지, 그는 자신을 홈즈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미국 역사상 첫번째로 기록된 연쇄살인범이었다.
홈즈의 사기행각과 살인방식을 보고있다보면, 이 시절 사람들은 어찌나 이리도 순진하던지, 거의 외상과 노동착취로 커다란 건물을 하나 짓는데도 누구도 홈즈를 의심하지 않았고, 지하에서 사람이 태워져 나가고 있는데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기위해 도시로 나간 처녀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홈즈의 비밀스러운 건물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1892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 있었던 음지와 양지의 사건들을 재구성한 이 책 "화이트시티"에는 매력적인 인물 두사람이 등장한다. 선량한 미소로 자신의 음울한 살인욕망을 덮을수 있었던 H.H.홈즈, 그리고 세계 박람회의 총지휘자 건축가 번햄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두 주요 등장인물들을 지나치게 미화시켜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한 점이 좀 거슬리지만, 한 세계를 창조해낸 남자 번햄과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파괴를 일삼는 남자 홈즈를 묶어 설명하려는 점은 무척 독특했다. 굳이 소설로 읽을 것만이 아니라 역사서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도 좋을법하다.
세계 박람회가 준비되고 끝날때까지의 상세한 설명들과 자질구레하기까지한 사실들도 흥미로웠고, 살아생전 한번도 만난적 없는 두 사람의 극적인 대비도 제법 재밌다.
다만 건축보다는 범죄에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조금 아쉬운 점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인생보다는 역사에 남는 박람회를 기록하는 것이 더 수월했을테니, 홈즈의 이야기보다 번햄의 이야기가 압독적으로 더 많이 등장하기도 해서, 홈즈와 번햄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니 조금 안달나기도 하더라.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선과 악.... 이리도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것들의 차이는 그저 종이한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뚜렷한 선을 그어 그들을 분리해놓는다. 그것이 여러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최선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편리한 구분법은 될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일수록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점은 참 신기하고 무서운 사실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똑같은 시대, 똑같은 장소에서 창조와 죽음이 이리도 거창하고 비밀스럽게 일어났던 것일까.
발행연도를 보니 나온지 꽤 된 소설인데, 비인기 소설인가보다. 몇년전, <인 콜드 블러드>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것을 떠올리면,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버리기에는 아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인 콜드 블러드>가 더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실을 토대로 쓰여진 소설중에 <인 콜드블 러드>를 뛰어넘는 논픽션 소설을 내가 다시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때문이다.)
특히 "팩션"이 아닌 "논픽션"소설에 흥미가 많은 사람들은 놓치면 후회할만한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