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 - Let the Right One 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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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영화를 보다보면, 암담하다는 말밖에 설명할수 없는 영화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전에 보았던 "스위트 세븐틴"이라는 영화가 그런데, 이 슬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뿌듯한 것도 아닌 뭐라 말할수 없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보는 내내 마음을 졸이면서 보았던 이 "렛미인"도 그런 영화였다.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만, 공포영화는 아니며, 사실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 또한 왕따라는 전세계 공통의 뻔한 주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토록 차고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 것은 영화속에 주구장창 등장하던 눈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쌓이는 눈, 그보다 더 하얀 아이들의 얼굴.
상황과 시간에 무방비하게 내던져진 듯한 느낌이었고, 영화속의 아이들의 상황도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어떤 끝을 내더라도 암담했을 이야기. 해피엔딩이어도, 배드엔딩이어도 그랬을 것같다.

영화속의 거의 유일한 뱀파이어인 이엘리.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열두살 소년 오스칼.
새까맣다고 말할수 밖에 없는 오밤중에 눈속에 혼자 놀고 있는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난 너와 친구가 될수 없어"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고 만다.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이엘리와 왕따를 당하면서도 부모님에게는 털어놓을수 없는 소심한 소년 오스칼. 어차피 두 아이들은 세상에 홀홀단신으로 내던져진 아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을때면 몰래 숨겨둔 칼을 꺼내들고,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이 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는 오스칼.
진정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잔인무도한 아이들의 행동을 나름 멋있다고 부러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스칼이 원했던 것은 자신을 왕따시킨 아이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도망치게 해줄 구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이고 싶어하는 오스칼과 죽여야만 사는 이엘리.
이엘리의 초인적인 대범함과 오스칼의 나약한 자아는 너무나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아마도 의지할곳이 서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렛미인>은 공포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지나친 잔인함은 표현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무척 잔악하다.
소녀가 짐승처럼 인간에게 달겨들어 피를 빠는 장면 같은 것은, 여타 다른 뱀파이어영화와 다를 바 없고 어린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왜 그다지도 불편하게 느껴지던지.... 살기 위해서 그렇게 밖에 할수 없는 그 상황이, 열두살 소녀가 의지할 부모나 가족조차 없다는 사실이, 초대받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갈수 없는 뱀파이어의 방식이 이 소녀 이엘리에게는 초대받지 못하면 마음이 산산히 부숴지는 고통과도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 아마도 영화속의 냉정한 눈처럼 차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작소설이 있다고 하던데,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고 싶다.
이 영화가 소소한 성과를 거두면 어디선가는 번역해주지 않을까.
원작소설에서는 미묘하게 아동성애를 다루고 있다고 하던데, 영화속에서는 전혀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영화속에 이엘리의 아버지처럼 등장하는 아저씨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의 존재감에서 어렴풋이 짐작만 할 따름이다. 이엘리와 아저씨의 관계는 영화속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만 아버지라 소개하고, 둘이 있을 때는 노예부리듯이 대하는 이엘리의 행동이라던가, 아저씨의 맹목적인 희생이 묘하게 부모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느낌이었을지...
짐작이 맞다면, 그 아저씨의 눈물겨운 사랑도 참 가슴 아프구나.

아주 독특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느낌의 영화였다.
단 하나뿐인 우정과 눈과 성장통과 죽음에 대한 조금 이상한 동화...
영화의 이미지가 무척 차고 시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에서도 입김이 날 것만 같았고, 이가 시리다.
열린 엔딩 또한 해피엔딩인척 하면서도 무척 암담하다.
혼자 극장에서 보고 나오는데 머릿속이 멍하고 쓸쓸해지더라..



이보다 더 흴수 없는 아이... 어쩜 이렇게 하얄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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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 TOKY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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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확실한 레오 까락스, 깨끗하고 귀여운 봉준호, 길잃은 미쉘 공드리....라고 요약해보는 영화.
큰 사건 없이도(물론 까락스편은 큰 사건이 있었다.) 그럭저럭 재밌게 볼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비틀어놓은 영화였다.

타락과 비루함에 대한 레오 까락스의 애정이랄까, 대담함이랄까는 이 영화 <도쿄!>에서도 나타나서 감독의 개성면으로는 최고였던 것 같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재밌게 보았던 것 같다.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인들이 너무 싫어서 지하에 숨어살다가 간간히 나와서 일본인들을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괴남자역의 드니라방의 포스도 절절 끓고, 역시 레오 까락스의 영화에는 드니 라방이 나와야 색깔이 확실해지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외로 코믹하기도 해서 참 괴물같은 영화이면서도 나름 귀엽다.흐흣...

봉준호의 <흔들리는 도쿄>는 가장 일본스러웠다.
주로 일본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일상의 모습들이랄까 그런 모습들이 가장 잘 반영되었던 것 같고,
아마도 같은 아시아사람이라 그런지 감성 역시 딱 일본, 한국 스타일이었달까.
아오이 유우도 예쁘게 나오고, 주인공으로 나왔던 히키코모리 아저씨의 연기도 훌륭했다.
한장 한장 사진같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색채 반짝이는 조명만은 정말 일본 사진같은 느낌이 가득했던 편이었지만, 살짝 공익광고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너무 건전해서 그럴까.
하긴 봉준호 영화가 지금까지는 그닥 삐뚤어진 점은 별로 없었지만서도, "히키코모리 여러분! 세상으로 나오세요!! 사랑은 당신에게 용기를 준답니다!!!"하는 공익광고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거의 결벽증적으로 하얗고 깨끗한 색채들이 참 예쁘더라. 지진같은 사랑도.

미쉘공드리 편이 좀 아쉽기는 한데, 그럭저럭 볼만은 했다.
갈팡질팡하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래저래 꼬여버리고 친구집에 자기 연인과 빌붙어 사는 여자의 오갈데 없고 쓸모 없어진 자신의 신세에 대한 단상과 그로 인해 아예 가구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초반부와 후반부가 잘 맞물리지가 않아서 어색한 느낌이 든다.
후반부는 미쉘 공드리 영화같은데, 초반부는 그렇지 않다.
초반부의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후반부의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갑자기 생각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오히려 초반부를 짧게 줄이고, 이래저래해서 의자가 되어버린 여자를 더 많이 보여주었더라면 괜찮았을 것 같기도....

그래도 한편 한편 아주 떨어지는 편들은 없어서 이게 감독의 내공인가 싶기도 하다.
마감끝나고 처음으로 극장을 찾은건데, 세편 다 나름의 상큼함이 있어서 특별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넋놓고 보았던 것 같다. 특히 봉준호의<흔들리는 도쿄>의 영상들은 너무 너무 예뻐서 이걸 어딘가에 담아놓을수 있다면 담아놓고 싶었다. 또 영화의 프롤로그,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단면적인 도쿄 애니메이션도 귀여웠다.

부탁하지 않아도 이런 영화도 만들어주고.... 일본은, 도쿄는 좋겠다!
제목이 <서울>이었더라면 대체 무슨 얘기가 나왔을까?

p.s. 미쉘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에 갑자기 츠마부토 사토시가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까메오?.
<아키라와 히로코>에서 히로코로 등장하는 여자는 놀랍게도 스티븐 시걸 딸이란다. 허걱....!!!
그러고보니 어딘가 닮은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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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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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니스 루헤인 자신이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켄지 & 제나로>시리즈의 첫권이자 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이다.
1994년작. 지금은 2009년. 15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현재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된 데니스 루헤인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냈을 당시 신인이었을텐데도 노련한 솜씨로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몰아치듯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놀라운 데뷔작 <전쟁 전 한잔>.
그려놓은 듯 선명한 캐릭터들의 이미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센스넘치는 유쾌한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은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방식인듯 싶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뒷권부터 먼저 읽은 상태라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도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끝난 상태이지만, 지금의 켄지를 있게 한 성장과정이라던가, 켄지와 제나로가 함께 있을수 있던 관계의 시발점 같은 것을 확인할수 있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담백한 폭력주의자 부바가 제일 좋아서, 부바만 등장하면 눈을 부릅뜨고 보게되기도 했다. 앞으로 부바의 활약상이 더 많다면 좋으련만....잇힝~)

이야기는 사립탐정 켄지가 한 유명 정치인을 만나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얘기인 즉슨, 제나라는 흑인청소부가 그에게 중요한 문서를 들고 사라졌으니 그녀를 찾아 문서를 되찾아오라는 것이다.
켄지는 자신의 파트너 앤지 제나로와 함께 사라진 여자를 찾아나서는데, 사라졌던 여자를 찾으니 이 여자는 또 정의를 위해서는 절대 문서를 내줄수 없다고 뻐기지 않나.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그녀가 훔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밝혀져야할 진실과 지키고자 했던 정의는 무엇일까.

정치와 암흑세력의 결탁을 다룬 책들은 너무나 많으니 아주 독특한 소설이라고 할수는 없는 셈이지만, 데뷔작 <전쟁 전 한잔>에서부터 이어지는 데니스 루헤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개성넘칠 정도로 뚜렷하고도 맥빠진다.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할수도 있을 법한데, 그의 소설을 읽고나면 느껴지는 찝찝한 뒷끝, 올바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무기력은 이것이 올바르지는 못해도 적어도 현실이기는 한 것 같아서 항상 기분이 우울해진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흑인과 백인, 선과 악, 권력 그리고 탐욕.
사회적 정의란 윤리교과서에나 등장할만한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사회 정의를 헤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은 가난한 나쁜 놈이 아니라 부유한 나쁜 놈이지 않을까.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기 독선과 탐욕에 빠져버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세상은 계속 그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비정하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뭔가 해보려는 듯 움직이다가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은 또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물림 하게되고, 몇백년을 그렇게 돌고 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은 폐배주의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이 또 그렇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는 어렵다.

자신에게서 멀어져서 그럼에도 살려고 했던 어느 소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그는 원래 자신이었던 어떤 존재로 부터 멀어져서, 자신이 원래 어땠는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려고 했었는지를 잊었다. 아무데도 돌아갈 곳도 없고, 누군가가 망쳐버린 삶속으로 어쩔수 없이 뛰어들어가야 하는 그 소년의 뒷모습은 이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이 상처가 끊이지 않는 고리처럼 이어져 개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그럼에도 그 고리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배에 새겨진 다리미자국을 바라보면서, 정의의 뒷꽁무늬라도 쫓으려는 켄지처럼.
정의란 보이지 않는 환타지일지도 모르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지옥은 찾아오지 않을거라고,
그래도 아직은 믿고 싶다.


"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면서 싸움이 끝나면 그도 평화롭게 살 거라며 자위했겠지만 그건 가능한 바람이 못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몸안에 침투한 오점은, 피의 일부가 되어 피를 모두 희석시키고 심장까지 침투해 버린다.
그리고 심장을 빠져나온 피는 이제 온몸을 휩쓸며 가는 곳마다 오염시키고 마는 것이다.
오점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빠져나오지도 않는다. 그걸 믿는 건 어린애들이나 바보들 뿐이다.
조금이나마 가능성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오점을 통제하고 단단한 공으로 만들어 한쪽 구석에 꼼짝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 뿐이다. 그리하여 평생 짐으로 떠안고 사는 것." -p29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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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땅 Medusa Collection 5
니키 프렌치 지음, 노진선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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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만약 혼자사는 독신 여자이고, 어딘가로 사라져 한달동안 연락이 없다면, 누가 나를 찾아줄까?
나를 아는 친구들은 그저, 내가 바쁜가보다 하고 생각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매시간 연락하고 살 수는 없으니, 그들이 먼저 연락을 해오더라도 그저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으려니, 또는 어딘가 여행이라도 갔으려니 생각할테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얘기하도록 하자. 2주이상 내 존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면 좀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내가 자의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 끔찍한 유괴사건에 휘말려 있을지 모르니까.
전화도 없고, 문자도 없고, 자주가는 커뮤니티나 블로그, 홈페이지등에 그간 움직인 흔적이 전혀 없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나를 추적해달라고.
영국이라는 나라가 참 무섭다. 아니, 무서운 건 영국이 아니라 이 세상인지도 모른다.
2주동안 사람이 사라져 지하에서 결박당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쌓여 정체를 알수도 없는 범죄자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데, 아무도 사라진지 몰랐다. 그녀의 친구들, 옛연인,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니키 프렌치의 강렬한 소설 <산 자의 땅>은 여주인공 애비게일이 기절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머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자신의 정체도, 지금 있는 곳도 확실히 알수 없었다.
그리고는 곧 끔찍한 악몽속에 놓인 자신의 상태를 알게된다. 손발이 결박당한 채, 두건을 쓰고, 자신의 배설물위에 누워 자신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누군가에게 유괴당해 이렇게 지하에서 물건처럼 버려져있다고.
정체를 알수 없는 범인은 간간히 찾아와 물을 주고, 먹이를 준다. 몇일이나 지났는지, 밤인지 낮인지도 알지 못하는 채, 그녀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른다.
차라리 죽자 싶어서 자살하려던 순간, 뜻밖의 탈출의 기회가 찾아와 그녀는 그 악몽속에서 도망친다.
머리에 받은 충격으로 이 사건전에 자신이 어떻게 해서 잡혀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자신을 돌봐주던 의사들과 경찰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했다. 한때 옛남자친구에게 맞은 경력을 들이밀며, 지나친 폭력에 시달린 나머지, 이런 이야기를 꾸며내 도움을 청하고 있는거라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여자를 다섯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에게 잡혀있었는데, 자신이 여섯번째 희생자가 되려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니.
악몽에서 뛰쳐나왔더니 또다른 악몽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고, 그녀가 실종된 약 2주간의 기간동안 그녀의 행적을 찾으려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고, 그저 불쌍하다는 듯이 동정할 뿐이다.
애비게일은 기억나지 않는 사건전 자신에게 일어났을 몇일의 기억을 추적하기로 한다.

몹시 폭팔적인 에너지를 가진 책이었다. 초반부부터 강렬하며 흡인력이 있어서 책을 편 순간부터, 도저히 덮을 용기가 나질 않아서 잠도 자지 않고 다 읽어버렸더니 낮이더라...(....이건 뭐....밤을 샜다고 하기도 뭣하고.....)
책을 보면서, 말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있었던 사실도, 진심도, 세치 혀를 거치면 훨씬 가벼워져 버린다.
모두가 믿어주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을 추적하는 애비게일의 노력이 눈물 겹기는 했지만, 책을 보면서도 나 역시 혹시 그녀가 정말 미쳐버린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하게 막판에 미친여자의 자작극이었소-하는 반전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기억이라는 건 또 얼마나 모호한가. 매순간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면서도, 매순간 망각의 시간속으로 사라진다.
내일이 되면, 일주일전의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 거의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데도 꼭 기억해내야할 특별한 순간도 있나보다. 애비게일이 찾던 그 몇일간의 기간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 몇일동안 일어난 일을 알아야 그녀는 범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모두 망각속으로 사라져가는 순간이라고는 해도, 그 순간 순간들이 다음에 올 순간들에 영향을 주고 있었나보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그제 뭘했는지 자세히 떠올려 보려고 하니 그닥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멀쩡히 살아갈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사건을 겪은 애비게일처럼 하루하루 흔적을 추적하며 기억속에 살다가는, 모두 피곤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추리, 스릴러 소설들이 더더욱 중점을 둬야할 부분은 "결말"보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나가다가 결말에서 다 망쳐버리는 소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나온 추리, 스릴러 소설들을 보면 지나치게 반전의 의식한 나머지, 과정을 모호하게 흐려버리고, 뜬금없이 반전을 펼쳐놓아서 결말을 망쳐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과정이 즐겁다면, 이미 추리, 스릴러 소설은 의무를 다한 거 아닐까.
중요한 건 "누가?"라기보다는 "왜?"니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은 스릴러 소설중에는 이 소설이 가장 강렬했다. 하나씩 밝혀지는 애비게일의 몇일의 흔적, 뜻밖의 이야기들, 첨예한 심리묘사까지, 심리스릴러로 이보다 더 스릴넘치고, 흥미로울수 없어서 말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되더라.
애비게일이 범인을 맞딱뜨리는 순간이 생각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역시 소설이 계속 그랬듯이 꽤나 강렬하다.

작가 니키 프렌치는 한명이 아니라 두명의 사람이다. 아내인 니키 제라드, 남편인 숀 프렌치의 이름이 합쳐져서 나온 필명이란다. 필명을 여자이름으로 지은 이유는 그들의 첫 공동작품의 주인공이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책을 읽으면서 마냥 여류작가의 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남자작가의 박력과 여자작가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합쳐져서 이렇게 놀랍도록 강렬한 느낌을 만들어낼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자작가들의 나약하고 섬세하기만 한 소설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소설이었다.
남편과 아내의 공동작업이라니. 그것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아닌 악몽같은 심리스릴러라니. 참으로 독특하신 분들이다.
앞으로 니키 프렌치의 다른 소설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 부부가 만들어낸 폭팔적인 에너지를 지닌 기억의 세상속으로 다시 한번 빠져들고 싶다.

P.S 다 보고나니 메두사 컬렉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보니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도 메두사 컬렉션이었는데...
왠지 컬렉션을 하나씩 찾아봐야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나저나 책 표지 좀.....어떻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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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가끔 골때리는 소설을 만날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정말 글자를 읽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미쳐버리겠다. 그래서 그런 소설들은 왠만하면 아껴 읽으려고 하지. 추리적 요소가 가미되면 그 즐거움은 한층 더 음흉해진다.
어쩌면 이 소설도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이 빗나가는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책을 처음 펴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동화책을 손에 들고 있는지 알아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은 롤러코스터같다."라는 누군가의 평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그정도로 이 소설은 참으로.............글자가 적다..................정말 신속히 읽을수 있는 책이다.......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깨어난다. 오기와라는 이 남자, 28살의 말끔하게 생긴 유부남. 어쩌일인지 자신은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져 누워있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뚱뚱한 아저씨 하나, 메뚜기같이 생겼고 오타쿠로 예상되는 젊은이 하나, 나이를 알수없는 검은옷의 여자 하나.
그리고 오기와까지 네명은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갖히고 말았다.
아내의 진통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봉변을 당해버렸는데, 자신을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참 태연하기 그지 없다.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태연히 자기소개나 하자고 하고.... 오기와의 속은 타들어가고, 하나는 전직 밤도둑에, 하나는 자신을 초능력자라고 얘기하는 니트족에(직업을 구하려 하지 않는 젊은이), 하나는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하려고 올라가는 길이었다질 않나.
이 이상한 밤은 언제쯤 끝날까?

우선 작가가 극작가 출신이라는 점을 밝혀두어야 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연극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폐쇄된 공간에, 제한된 등장인물, 다소 과장스럽다 생각되는 성격들까지 딱 연극 스타일인데,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조금 아쉽다.
큰 기대하지 않고 머리나 식힐 겸 가볍게 본다면 목적에 딱 알맞는 독서를 할수 있을만한 책이다.
추리소설로 보자면, 한없이 모자라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이야기도 작위적이다. 이 작위적임은 보통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소위 "괴담"이라는 것의 반전과도 비슷한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어떤 부분에서 놀라야하고, 어떤 부분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을 느껴야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냥 재밌는 괴담하나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재미를 보장받을 수 있을 책 같다.
중반부 이 사람들이 만드려는 밀실이야기는 추리소설로 치자면 어설프기 짝이 없고,(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어설픈 점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얘기가 가벼워서 기승전결을 제대로 갖춘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느 하룻밤의 소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마무리 시키는 반전이 아까도 말했듯이 작위적이고 다소 유치하다.

왜일까.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지만 정작 나는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할지도 모르겠고, 이라부라는 캐릭터에 불쾌감만 느껴졌던 <공중그네>와 이 소설이 겹치는 것은...(물론 이 소설은 불쾌하지 않다.)
나는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이 책에 딸린 호평 일색인 서평들을 보면, 나만 이 책이 그저 그랬고, 내가 재밌는 포인트를 잡아내지 못한 건지, 단지 취향일 뿐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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