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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9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세기말은 지났는데, 세기말적인 작품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옛날 어린이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이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면, 2000년이 벌써 10년가까이 지나버린 지금 사람들에게 무서운건 호환, 마마, 전쟁이 아니라, 테러와 실체없는 바이러스, 확인된 바 없는 질병들일것이다. 중요한 것은 "확인되지 않은"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것에 공포와 긴장을 느끼기 마련이다.
다분히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좀비문학, 종말문학이 늘어나게 된 것에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암묵적인 공포가 한몫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최근 몇년간 나온 종말, 좀비 관련 소설들을 많이 보아왔던 것같고, 이 작품 <스트레인>도 그런 의미에서 볼수있을 듯 싶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새롭게 등장한 바이러스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이어져온, 그러나 인간은 알지 못했던 종족들에게서 파생되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뱀파이어 물이라고는 하지만, 로맨틱한 고딕소설인 <뱀파이어 연대기>와도 다르고, 최근에 인기있었던 <트왈라잇>시리즈와도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이것은 스티븐킹의 <셀>이라던가 (종말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코맥 맥카시의 <로드>같은 작품과 비견될수도 있겠다.
밀랍처럼 흰 피부를 가지고 다크서클에는 낭만적인 우울증을 달고다니는, 그런 류의 뱀파이어는 아니라는 말씀.
그래서 뱀파이어물이라기보다는 좀비물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책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보자.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고, 추락된 비행기는 너무나 안전하게 안착되어있으나 승객들은 모두 죽었다.
죽음의 원인을 알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가 지나자 죽었던 비행기안의 승객들이 하나둘씩 살아나기 시작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가며, 죽었다 살아난 산송장들은 본능적인 욕망으로 피를 원한다.
의사인 주인공 에프는 이 비상사태 책임자로 추락된 비행기 승객들의 사망원인을 조사하던 중,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승객들이 공격을 받게되고, 오랜 세월 뱀파이어들을 쫓아다닌 세트라키안이라는 노인이 나타나 에프와 그의 직장동료 노라와 함께 뱀파이어들의 존재를 찾으러 다니게 된다.
다른 뱀파이어물들과 다른 점이라면 "블레이드와 CSI의 결합"이라는 광고문구처럼, 이 책에서는 뱀파이어를 해부해보았다는 점으로, 책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의 외적, 내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가 고심한 듯한 흔적을 엿볼수 있다.
그러나 무작정 이 책이 재밌었다는 말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책의 가장 좋은 홍보는 작가 자신이 될텐데, <판의 미로><악마의 등뼈>를 만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지은 소설이라는 그 타이틀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가장 좋은 광고가 되기도 하지만, 소설다운 소설이 되지 못한다는 단점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참 희한하게도 기예르모 델토로의 영화들에서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 소설만은 전형적으로 헐리우드스럽다. 그 점 역시 이 소설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일수도 있겠다.
비슷한 문학들에서 뻔할 뻔자로 수도 없이 등장하는 클리쉐들. 게임을 클리어하기전에 꼭 마왕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하는 것처럼 더 우월하며 더 악랄한 존재가 존재하고, 그 '마왕'을 헤치우기 위해 원정대를 만들게 되고 다음편을 기약하며 꼭 그 마왕은 도망가야하고, 주인공이 이 전쟁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꼭 그 가족이라던지 소중한 사람을 담보잡혀야하고.... 이 얼마나 뻔할 뻔자의 이야기들인지, 읽으면서 작가가 조금 뻔뻔스러운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익숙함을 선호하는 독자를 현혹하는 작가의 영악함일수도 있지만.)
공포, 스릴러 소설들의 작가들이 대단히 글을 잘쓴다는 느낌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여타 다른 장르문학 소설가들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문장력이라던가, 지나치게 영화적이라서 거부감마저 드는 소설의 서사(이 작품이 10년 이내에 영화화 되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이고 아예 영화를 노리고 등장한 듯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어쩌면 작가 본인이 만들게 될지도.), 몰입을 방해할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들이라던가(그중의 대부분은 뱀파이어가 되고 곧 죽는다.) 그에따라 내용성에 비해서 소설이 지나치게 길어진 점등,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나마 볼만한 점이라면, 다른 뱀파이어 소설들과는 무척 다른 뱀파이어의 모습, 3중으로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될만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같은 것이 독특하긴 했으나, 그 점을 빼놓고는 모든 부분에서 특별함이나 비슷한 종류의 소설들과의 차별점이 거의 없는 책이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뱀파이어 3부작은 <스트레인>으로 첫번째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음편들에서는 실망했던 부분들을 충족시켜줄수 있을까.
이왕 읽은 거 끝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마 다음편에서 실망하게 되면 마지막까지 보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저 시간떼우기 괜찮은 소설. 여름에 걸맞는 호러환타지. 별 기대없이 딱 그정도로 본다면 그럭저럭 볼 수 있을 법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