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틈틈히 유럽영화제를 다녀왔다.
이틀에 나뉘어 세편을 보고 왔는데, 세개 다 나름대로의 재미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었고, 간간히 의도를 이해할수 없는 영화도 있었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살짝 졸게되었던 영화도 있었지만, 역시 보기 잘했다 싶었던 영화제였다.
짧막히 후기를 써볼까나?
리틀 애쉬
개인적으로 이번 유럽영화제에서 보았던 세개의 영화중에 최고였던 영화였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시인 페데리코 로르케의 애매모호한 애정전선과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 어떤 점이 가장 좋았냐면, 중간중간 정말 마음에 깊이 박혀버리는 완소씬들이 넋을 놓아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20세기초의 퇴폐적인 분위기들과 농염한 여자들, 우아한 신사이면서 한편으로는 짓꿎은 아이같았던 그 시대 남자들이 길을 걷고 떠드는 것만 바라봐도 마음이 흐뭇해지더라.
시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페데리코 로르케라는 시인이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처음 알게되었는데, 배역이 내게는 참으로 매혹적이라 다 끝나고 나도 머리속에는 살바도르 달리보다 페데리코 로르케가 더 남더라.
참 나약하면서도 이성적이고도 쓸쓸한 남자 주인공. 캬...내 취향이다.ㅠ ㅠ
영화의 초반은 두근거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가슴이 먹먹하다.
살바도르 달리와 페데리코 로르케 두 남자가 나누었던 것이 사랑이었는지는 알수 없다.
왜냐면, 그 시절의 남학생들에게는 그러한 동성애 또한 하나의 비밀스러운 유행이거나 바람처럼 훑고 지나가는 욕망의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영화속의 두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라기보다는 나르시즘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나더라.
페데리코와 살바도르는 거의 정반대라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상대방의 모습에서 찾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 내면에 있는 어떤 면, 또는 조금은 되고싶은 이상향적인 인간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페데리코는 살바도르의 열정이, 살바도르에게는 페데리코의 차분한 이성이 필요했을런지도 모른다.
극장을 나서면서 갈대밭에서 들리는 속삭이는 목소리 또한 영화를 보고나서도 계속 귀에 맴도는 듯 했고, 여러가지 아름다운 장면들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 듯 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정식으로 개봉하게 될지도 모르니,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다.
왜냐면, 주인공이 트왈라잇의 주인공이니까....-_-;
개인적으로는 달리 역으로 나온 로버트 패틴슨의 내공없는 연기가 이 영화의 유일한 오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너의 한마디
3시간 자고 영화를 보러갔기 때문에, 초반에 살짝 졸아버리는 실수를 해버린 영화 <너의 한마디>.
하지만 초반을 약간 놓쳤어도 어느 정도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따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로사리오와 밀라그로스 두 동창생이 만나 같이 일을 하게되고 일상을 나누게 되고, 어느 날 일터에서 발견한 아기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낳는다.
뭐랄까. 스페인 영화들 저변에 깔린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참 좋다.
몹시도 신파적이면서, 한편으로는 파격적인 느낌이랄까.
어떨 때는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포르노를 보고 있는 것 같고, 또 어떨 때는 공포 스릴러 영화를 보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
그리고 스페인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스토리를 조근 조근 풀어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다.
희한하게도 굉장히 뻔하고 흔하면서도 은근히 마음에 남는 대사들이 이 영화에도 존재한다.
바보같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여자 밀라그로스의 울부짖는 울음에 마음이 왜 섬뜩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푸른 수염
가장 보고싶었던 영화인데, 세편중에서 가장 별로였던 영화였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지루하거나 엄청나게 재미없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의도를 모르겠달까.
영화를 보고나서 집에와서 찾아보니, 이 영화 감독이 까트린느 브레이야였다.(어쩐지...)
까트린느 브레이야 영화는 <로망스>와 <팻걸> 두 영화밖에 보지 못했지만, 두 영화 다 의도를 알수 없었다.
심오한 척하는 엄청난 단순함과 느닷없는 불쾌한 반전이 특징이라면 특징일까..-_-;
이 영화 역시 그렇다. 두 자매가 동화 <푸른수염>을 읽으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두 자매의 이야기 하나, 푸른수염 이야기 하나.
잔혹동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당혹스러운 막판 반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푸른 수염 이야기는 "잔혹동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각색없이 원전과 거의 비슷한 상태대로 진행되고, (푸른 수염 이야기를 몰라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도 있겠는가?) 뜬금없는 마무리는 당혹스럽고 불쾌하다.
그나마 등장하는 꼬마아이들이 귀엽고, 소녀인 것도 같고, 소년인 것도 같은 묘한 느낌의 푸른 수염의 어린 아내 정도가 볼거리 였달까...(그러고보니 팻걸에서도 언니는 여신이었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