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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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고백>을 처음 읽었을 때, 무척 독특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광기의 한가운데에 조용히 서서 그 광경을 이야기 해주는 듯한 놀라울 정도의 초연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초연함이라면 오츠이치의 소설에서도 느낄수 있지만, 오츠이치의 소설속의 초연함이 "당연함, 어쩔수 없으니 내버려둘 수 밖에 없는 것"같은 느낌이라면,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소설속의 초연함은 "관망"같은 느낌이다.
그런 관망하는 시선과 딱 잘 어울리는 제목 "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는 <유니버셜...>에서보다 더 미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결코 흥분하거나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그 점이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남의 일처럼 읽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읽어야 다 읽어내려갈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 단편 두개쯤 읽어봤을때 나는 인간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할지 잘 모르겠었다. 악취미적으로 구경하는 듯 봐야하는지, 아니면 감정이입해서 나쁜 놈, 이런 무서운 일이 세상에! 하면서 봐야하는지, 작가는 뭘 의도하면서 이 책을 썼는지,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남의 일처럼 읽기로 했다. 어디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데,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그 끔찍함도 잘 모르겠고, 어렴풋이 공포가 느껴지긴 하지만 몇일후면 잊어버릴- 그런 남의 일처럼.
그랬더니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얘기자체의 독특함에 취하게 되더라.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단편들을 모은 <남의 일>은 기본적으로 공포를 깔고 이야기들은 진행된다.
존속살해, 이지매 이야기, 자살소동, 유괴, 폭력 그리고 또 폭력, 폭력.
얘기만 들어도 끔찍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작가가 초연하듯, 주인공들 역시 초연하기 그지 없고, 상황은 불쾌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도 남의 일처럼 읽기로 했으니 남의 일처럼 읽어져서 광고에 써있듯이 "이 책을 읽으면 모든 희망을 잃게된다" 정도의 느낌은 아니고, 소재나 표현방식이 독특해서 불쾌하면서도 재밌었던 단편집 같다.
말 그대로 타인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관망하는 <남의 일>, 힘들여 낳아놓았더니 히키코모리가 되어서 골치만 썩이는 거구이 아들을 살해하려는 부모가 등장하는 <자식해체>, 이 단편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마지막 한마디에 몸이 차게 식어버리는 <딱 한입에>, 어느 날 고양이가 물어온 손가락에서 "살려줘!"라는 기묘한 말을 발견하게 되는 <전서묘>, 이지메에 대한 나름 독특한 해석과 발상의 전환을 하게만들었던 <레제데는 무서워>, 자살하는 여자의 앞에 나타나서 자살을 막으려는 남자가 등장하는, 그러나 막판의 어이없고 화나는 반전이 존재하는 <인간 실격> 정도가 재밌게 보았던 단편이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어머니와 톱니바퀴>이다.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여자친구의 손을 이끌고 같이 바다를 보러가게된 주인공. 그러나 함께 도피한 여자친구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매시간 썩어가는 그녀를 데리고 그는 여자친구에게 자신도 죽어가고 있다고, 너만 시체일리는 없다고 그렇게 되뇌여도, 자신은 살아있고, 그녀는 사그라 들어져간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떠올리면 무척 끔찍하고 징그럽고 혐오스러울수 없는 상황이 떠올려지는데, 희한하게 애달프고 아련한 기분이 든다. <유니버셜...>에 실린 단편 "Ω의 성찬"과는 소재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유독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나보다.
공포속에 존재하는 쓸쓸함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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