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여자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4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 송홍빈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은 34살이야.
지위도 없고 미래도 없었어.
말해볼까?
그 나이에 아무것도 못했기 떄문에 언제까지 가도 건설적인 일은 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거야.
내가 없으면 당신은 그저 불쌍한 생활이나 계속하면서
나이를 먹어갔을 테지.
그러면서도 당신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그에 적합한 꿈을 꾸겠지?
어떻게도 되지 않지.
당신 같은 건 어떻게 될수도 없어.
당신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당신은 그저 머릿수로서만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그 이상의 아무것도 없지."

-카트린 아를레이 -지푸라기 여자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던 여자.
번역일을 하면서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먹고사는 이 여자에게는
어떤 꿈도 희망도 심지어는 그것을 위로해줄만한 친구나 친인척도 없다.
단 하나 이 짜증스러운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뿐.

매일 아침 신문에 난 구혼광고나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한심하고 무기력한 인생에서 벗어날 기회를 기다렸고,
어느 날 막대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 독일여자를 구하는 기적같은 구혼 광고를 본다.
그녀에게는 일생에 단하나뿐인 기회.
이 여자가 어떤 아부도 없이 솔직하게 돈이 필요하고, 한번 잘살아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지푸라기 여자"는 불어로 로봇이나 나무인형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말에도 자기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조종을 받아서 행동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허수아비"나 "꼭두각시"가 있듯이.
그저 한번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잘 살아보고싶은  주인공 "힐데가르데"가 딱 그런 역활이었다.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어마어마한 백만장자 노인과 결혼해서 그의 유산을 받아야하는 역활.
이  소설은 완벽한 완전범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소설이 막바지로 다르면서 점점 슬퍼졌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재산을 물려준다고 가정해보자.
1억?
10억?
100억?
이 정도는 완전 황홀한 인생 대 역전이겠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하기도 힘들 정도의 대 기업체규모의 재산을 물려준다면,
평범하게 자라온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다.

욕심많은 주인공은 가난하고 힘겹게 자라온 사람.
비교적 똑똑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누군가 그런 막대한 재산을 거저 준다고 해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렇게 많은 돈을 써본적이 없기 때문에, 관리하는 법을 모른다.
위에서 인용한 그녀에게 사기친 그 남자의 이야기는
그것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가 비난하는 그녀의 안에서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시민인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역전의 "부"라는 것은,
돼지목의 진주목걸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슬퍼졌다.
아무리 자존심을 드높이며 도도하게 굴어도,
우리는 그들을 이길수 없다.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모두 선대에 물려받아서가 아니라,
물려받은 재산을 굴릴줄 아는 머리 또한 물려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씁쓸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생각을 이  소설을 보면서 다시 했다.

이길수 없다고 가치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개가 매우 빠른 소설이었고, 또 그만큼 박진감도 넘친다.
뒤에 밝혀지는 완전범죄의 전모 또한 훌륭했고, 전체적으로 아주아주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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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의 일이다.
"그림 형제의 동화 <도둑신랑>을 읽어줄게."
토니가 양쪽에 쌍둥이들을 거느리고 책을 읽는다.
아름다운 처녀, 남편을 찾는 과정, 순진한 아가씨들을 숲속의 자기 성 안으로 유인해서
토막쳐 먹어버리는 부유하고 잘생긴 낯선 사람의 등장.

"어느날 한 구혼자가 나타났어요. 그는...."
"그녀는! 그녀는!!"
쌍둥이들이 떠들썩하게 외친다.
"좋아, 토니. 네가 이 난국을 어떻게 벗어나는지 좀 보자."
문가에 서서 로즈가 말한다.
"<도둑 신부>로 바꿀수도 있단다.그렇게 해도 괜찮을까?"
토니가 말하자 쌍둥이들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러면 되겠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신부 의상을 좋아해서 바비 인형들에게도 그 옷을 입힌다.
그리고 그 신부들을 층계 난간 너머로 내던지거나 욕조속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부가 누구를 죽였으면 좋겠니?
남자들을, 아니면 여자들을? 아니면 골고루 섞을까?"
쌍둥이들은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들의 원칙을 고수한다.
모든 등장인물에 여자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도둑신부라'. 하고 로즈는 생각한다.
하긴 그것도 안 될 까닭이 없지. 신랑들도 어디 한번 호되게 혼 좀 나보라지.
도둑 신부는 어두운 숲속의 저택에 숨어 살면서 순진한 자들을 노리고 청년들을 유혹하여
흉악한 가마솥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지니아처럼.

로즈는 또 울고 있다.
그녀가 슬퍼하고 있는 것은 잃어버린 착한 마음씨 때문이다.
힘껏 노력했었다.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언제나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고 정말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그러나 토니와 쌍둥이들이 옳았다.
무슨 일을 해도, 누군가는 꼭 끓는 물에 빠져야 한다.

-마가렛 애트우드 <도둑신부>




누군가에 대한 동경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적은 한번도 없다.

일방적인 동경의 감정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에 올라서서 마음대로 조종할수 있도록 허락하는 꼴이 되기도 하고,
동경했던 상대이기에 자신에게 배당되는 배신감과 상실감은
다른 누구에게 당하는 것보다 크다.
이책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같은 상처로 친해진 세명의 여자와
그들의 남자와 이 세쌍의 커플을 망가뜨려버린 마녀같은 지니아.
그들이 20대부터 중년에 이를때까지 상처를 주고 상처받는 이야기 "도둑 신부".

토니라는 여자가 있다.
마치 쥐와도 같은 작고 볼품없는 토니는, 보기와는 다르게 냉철하며 일면 차갑다.
일평생 누군가와 친해본 적이 없는 적막한 인생을 살아온 토니에게,
지니아가 찾아온다.
지니아는 토니가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는 남자의 여자친구.
감정적으로 싫어할수 밖에 없는 상대이지만,
자기보다 똑똑한 또래 여자아이를 만나본 적 없는 토니는 본능적으로 당당하고 똑똑한 지니아에게 끌린다
자신이 겪었던 불행보다 더한 지니아의 유년시절의 불행을 들으면서,
토니는 안도하면서도 그 불행을 흠모한다.
토니는 지성에서도, 불행에서도, 지니아에게 밀렸던 것이다.

그것이 토니의 눈을 멀게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사람이 친구가 되면서, 토니는 지니아에게 맞춰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니아의 남자친구 웨스트에 대한 짝사랑을 누를 정도로, 동경은 그녀를 지니아의 노예로 만든다.
지니아에게 버림받고 너덜너덜해진 웨스트를 받아들인 것은 토니.
그리고 수년후 웨스트와의 결혼을 앞두고 다시 나타난 지니아에게로 떠나버린
웨스트가 또다시 버림받고 돌아왔을때 받아들인 것도 토니다.
그는 그녀와 산 수년동안 한번도 그녀를 사랑한적이 없다.
마음은 지니아에게로 가있는 껍데기만 "보살피고" 살아온 것이다.
그에게 그녀는 단지 안식처일뿐, 평생을 믿고 사랑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토니 역시 알고 있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역전시킬 능력이 없다.


캐리스라는 여자가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죽은 후에는 이모의 집에서 기거한 캐리스는
여자가 되기 이전부터 이모부에게 강간을 당해왔다.
사실을 알면서도 캐리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짓는 이모때문에,
그녀는 더이상 갈곳도 없는 궁지에 몰린 어린시절을 보낸다.

캐리스는 지극히 여리고, 소심하며, 자연주의자이다.
그녀가 육식을 하지 않는것도, 남자들과의 섹스에서 흥미를 찾지 못하는 것도,
그런 억압적인 어린시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캐리스에게, 병역기피자인 빌리가 찾아온다.
그저 그를 숨겨주는 것이 일이었지만, 캐리스는 자신의 일상으로 "침입"해온 빌리를 사랑하게 된다.
결혼과 아이와 안정을 꿈꾸는 캐리스와는 달리 빌리에게 그녀는 단지 아쉬워서 어쩔수 없는 분출구일뿐이다.
그는 캐리스에게 언제나 원치않는 것을 강요하고, 캐리스는 받아들인다.
그녀는 순종적인 여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앞에 상처입고 병든 지니아가 찾아온다.
암에 걸려있는 여자를 도저히 모르는 척 할수 없는 캐리스는 지니아를 보살피며,
건강을 되찾아가는 그녀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도 원하던 아이가 생겼고.
그러나 빌리는 아이가 생긴 캐리스를 두고 지니아와 떠나버린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녀의 닭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로즈라는 여자가 있다.
어린시절 어느날 갑자기 갑부가 되었다.
누군가와 섞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광대가 될수 밖에 없는 사실을 알고난후에,
로즈는 애써 쾌활한 척 했고, 그것이 성격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녀에게 나타난 잘생긴 변호사 미치가 그녀의 돈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믿고 싶어한다.
그가 그녀의 돈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수많은 매력중에 존재하는 "돈"이라는 일부분 역시 사랑한거라고.
바람둥이인 남편과 살면서, 그녀는 그가 헌신짝 처럼 내다버리는 소모품인 여자들을 정리해야만 했고,
가난하게 살아온 남편이 기가죽을까봐, 자신의 성공을 남편에게 부끄러워해야한다.
그의 여성편력을 그녀가 견뎌내야했던 이유는, 그녀가 그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앞에 지니아가 나타난다.
로즈에게는 자신의 부와 명성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사실 아버지는 더러운 방식으로 돈을 벌었고,
그것을 견딜수 없는 로즈는 아버지의 잘못을 사죄받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에 환원하려 한다.
지니아는 로즈의 이런 컴플렉스를 파고 들어온다.
사실은 비열한 밀수업자였던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을 상쇄시킬 기발한 기획을 가지고.
지니아의 계략에 넘어가 다시한번 아버지를 믿을 용기가 생긴 로즈는,
지니아에게 자신의 회사에 일자리를 구해주고, 아낌없는 애정을 준다.

그러나 결국 로즈의 바람둥이 남편은 지니아와 떠나버린다.
로즈는 그가 다시 돌아올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걸려버린 것이다.
지니아의 가짜 죽음 소식을 들은 남편은 자살을 하고 만다.



대학시절 동기였으나 전혀 친하지 않았던 세명의 여자는,
지니아에게 당한 "피해자"로써의 동류의식으로 서로를 대한다.
우정이라기보다는 알콜중독자 모임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듯이,
그들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고,
죽을듯이 무너지고 있을때 묵묵히 나타나서 상처받은 서로의 뒷치닥거리를 해주면서,
위로한다.
여자들이 가장 쉽게 친해지는 법은,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누군가를 욕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자기와 똑같은 사람인 것처럼
상대방을 어루만지고 돌봐주고싶다.
이 세명의 여자는 서로에게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친해지고 있었고,
그런 방식으로 지니아에게 당했다.

마치 질병처럼 토니, 캐리스,로즈의 가장 약한 면을 파고들어와 그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지니아.
목적이 뭔지도 모르고, 정체로 모르고, 과거도 모른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이기 때문에.
남자를 홀리는 매력적인 외모와 더불어, 간교한 잔머리와 대담성까지 갖춘 지니아.
토니, 캐리스,로즈는 그녀를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한다.
그들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도 지니아였지만,
그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믿고 받아줄수 밖에 없는 그녀들의 남자를
그녀들 대신 뻥 차주고 괴롭히고, 혼내주고, 상처받게 만든 것도 지니아였다.
그들은 그녀를 증오하는 동시에 동경한다.
언젠가  단 한 순간쯤은 자신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며 애정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지니아가 되길 바라면서.

지니아 자신이 왜 그렇게 악행을 저지르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괴롭혀야하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역시 컴플렉스의 일종은 아니었을까.
지독히 외로운 인생에, 내가 보기에 별것도 아닌 일들로 고민하고 있는
착하고 평탄한 인생을 사는 여자들을 발견했을때, 배알이 뒤틀리고 괴롭혀주고 망가뜨리고 싶은.
사실은, 나도 외롭다고, 나도 괴롭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흔히 그런 얘기를 접할때가 있다.
어떤 아줌마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때,
바람피운 남편보다, 상대방 여자를 더더욱 증오하는 얘기를.
마치, 순진한 남편을 사악한 상대방여자가 억지로 꼬득여낸 것처럼.
그것이 여자이다.
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이다.
내 옆에 있다면 정말 죽여버렸을 얄미운 지니아지만,
그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약삭빠름과 사랑에 휘둘리지 않는 강한 정신은,
모든 여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상향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면서, 나는 토니이기도 했고, 캐리스나 로즈이기도했고, 지니아이기도 했다.
어떤 여자의 마음속에나 다 들어있는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또 나오는 다중성.
어떤 때는 연약했다가, 어떤 때는 독했다가, 어떤 때는 죽을듯이 슬프다가도,
어떤때는 사악한.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를 알수 없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세계 공통의 여자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는 마가렛 애트우드의 아주 치밀하고 정확한 단어로 표현된다.
그녀는 여자에 대해서 너무나 빠삭히 알고 있고,
여자들이 가진 복잡다난한 감정을 아주 정확히 표현할 줄 안다.
마가렛 애트우드의 책을 읽으면서 이 여자가 얼마나 단어의 정의에 명확한지 경탄하게 되었다.
누구도 뭐라 부를수 없는 감정상의 문제를,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비유로 얘기한다.
전혀 성격이 다른 세 주인공에 맞춰져서 문체조차 성격에 맞게 바뀌어지는 구성도 참 마음에 들었다.
책이 꽤 옛날 책으로, 내가 고등학교때 초판이 나온 것 같은데,
영어와 한글에서 오는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매모호한 문장에 역주를 달아 뜻을 풀어놓은 섬세한 번역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녀이야기"는 올해 읽은 가장 재밌는 책중 하나였고,
이 책으로 나는 마가렛 애트우드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재밌는 소설 Best 10"을 뽑는다면,
이 책을 당연히 끼워넣을 것이다.
패미니즘 소설이라는 꼬릿표를 달고 있지만, 꼭 그런 수식을 붙이지 않아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있다.


비슷한 소재의 여자와 여자끼리의 전쟁을 다룬 아멜리 노통의 "앙테크리스타"와 비교했을때,
더더욱 심도깊고, 더더욱 우아하고, 자극적인 독설을 빼고 진실을 건조하게 풀어놓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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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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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지주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몇대에 걸친 가족사의 이야기인데,
후반에 정치얘기쪽으로 빠지면서 어쩐지 탄력을 잃은 느낌이 든 것을 빼면
재밌는 책이었다.
이 소설 원작의 영화 "영혼의 집"도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얼굴이 떠올라 재밌기도 했다.
(다행히도 전 등장인물이 유명한 배우들이었던 영화라..)
 
만약 내가 에스테반 트루에바였더라도,
자식들이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 였을 것이다.
어찌보면 고정관념과 보수주의에 가득찬 이 마초 노친네가
이집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자식들이고 마누라고 그래도 가장인데 말을 제대로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_-;
 
신비스러운 여인으로 등장하는 에스테반의 아내 클라라 역시,
이 소설에서는 온화하며 마술적인 여인으로 표현되어서 그렇지,
다른 소설에서 표현만 좀 바꾼다면 비정한 어머니상이다.
무슨 엄마가 셋밖에 없는 자식들 이름도 헤깔리고,
자식들이 몇살이고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도통 관심을 둘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식들 이름 지을때도 남편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집안 살림 모두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을 좋아하고-
 
속물적인 에스테반 트루에바와 비교하여
이사벨 아옌대는 클라라를 마치 여신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달라서 일지, 이 여자의 관점은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여자는 속물도 아니고, 후에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매정하며 게으르고 이기적인 여자이다.
 
또 자식들은 어떤가.
특히 짜증나는 인물은
남자 이상의 그 어떤 것에도 가치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용기없는 속물에, 무능력한 첫째딸 블랑카였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을 여성주의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 클라라와 딸 블랑카는 정말 싫은 여자 부류였었다.
 
 
 
영혼의 집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상향이 공산주의이다.
지난번에 읽었던 시녀이야기와는 상반된 입장이라
보면서 비교하면서 나는 어느쪽이 좋은가...하고 생각 해볼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나는 역시 민주주의 체제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느사회에나 불공평한것은 있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조차
계급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적어도 말하는 자유조차 빼앗긴다는 것은
내게는 그야말로 꺼지지 않는 불지옥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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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재닌이 일어나 열네 살 때 집단 강간당하고 낙태를 해야했던 경험을 간증한다.
지난 주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심지어 그런 경험이 자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애초에 꾸며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간증 시간에는 털어놓을 얘기가 하나도 없는 것 보다
차라리 없는 일을 꾸며내는편이 안전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재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어느 정도 사실일 터이다.

하지만 그게 누구의 잘못이었지요?
헬레나 <아주머니>가 통통한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며 말한다.
그녀의 잘못입니다.  그녀의 잘못입니다.그녀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제창한다.
그들을 부추긴 게 누구지요?
헬레나 <아주머니>는 우리가 대견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걸까요?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시녀이야기 中...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요즘 여자라면,
저런 대답을 강요받으면 입으로 쌍시옷 발음을 14쌍정도는 내뱉었겠지만,
이 소설이 주는 공포와 슬픔은 저런 사건이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가상의 국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sf는 아니며,
충분히 공포스러우나 공포소설은 아니다.

환경오염과 불임바이러스, 전쟁으로 인해서 황폐해진 북미지역에,
길리아드라는 독재 정부가 성립한다.
마치 중세시대로 돌아간 냥, 철저히 금욕적이며 엄숙한 국가 길리아드.

그곳에서 남자들은 권력으로 나뉘며,
여자들에게도 종류별 직책이 있다.
<아내>등급은 말 그대로 아내라는 뜻인데,
아마도 대충 고위관리의 아내를 그렇게 부르는듯 싶다.
불임여성이 급증함으로써 아내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되는 경우도 많아서,
아내들이 하는 일은 집안의 가장 윗어른으로(여자중에) 총체적으로 명령하고
거드름피우는게 일이다.

<하녀>등급은 집안일을 하는 여자들로,
아이도 도맡아키운다.

그리고 마지막 <시녀>등급의 여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이만 낳는 여자, 이른바 씨받이 또는 대리모이다.
그들은 함부로 다뤄서는 안될 국가의 자원이면서,
아내와 하녀들의 미움을 도맡아 받기도 한다.
그들은 수녀복을 연상시키는 듯한 의상을, 그것도 빨간색으로 맞춰입고 다니며,
누군가에게 얼굴을 보여서도 안되고,
술도, 담배도, 초콜렛도 안되고,
웃어서도 울어서도 안되고,
대답이외의 불필요한 말을 해서도 안되고,
글을 읽어서도 안되며, 남자와 눈이 마주쳐서도 안되고,
옷도, 화장품도, 그외 여타 모든 것을 금지당한채,
3번정도 써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쓰레기와 함께 소각당하는
그저 아이만 낳는, "걸어다니는 자궁"일뿐이다.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살밖에 없지만,
자살자들도 꽤 많아서 막으려고 자살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은 모두 치워버린다.
그들은 이름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기고,
발령받은 집에 들어가서 이름을 받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오브프레드>.
그러나 이것은 프레드의 소유물(시녀들 이름은 주인이름앞에 Of를 붙인다)이라는 뜻을
내포한 말이다.

<아주머니>등급의 여자들은
이런 시녀들을 가르치는 교육관으로써,
주로 나이든 불임 독신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각하게 일그러진 포르노 따위를 보여주면서,
길리아드 이전의 시대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기억하라며 그들을 교육시킨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시녀들을 "배급"받아서,
아이를 낳는다.

참 보기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
"패미니즘 문학"이라고 이름은 붙여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패미니즘보다도, 인간존엄성의 문제가 더더욱 생각났던 이유는,
이런 사회에서 여자도, 남자도 행복하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속의 딱딱한 공산주의 사회의 남자들도,
사랑이나 로맨스를 바라고 있었으며,
진심이 포함되지 않은 비인간적인 수태행위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남편의 아이를 가져야하는 시녀에 대한 질투심을 표출하지 못하는 <아내>나,
기계처럼 아이만 낳을수 있는 <시녀>나,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하지 못하다.

소설속에서 특히 인상적이며 잔인한 부분은
수태행위(섹스나 강간도 아니라고 하니까-)부분과,
아이를 낳는 부분이었는데,
그 차가운 비인간성에 소름마저 끼쳤다.

이를테면 1대 시녀가 된 주인공 <오브프레드>에게,
자신을 둘러싼 이 악몽같은 세계속에서,
과거의 남편과 아이와 친구에대한 기억들이 슬프게 맞부딪혀온다.
패미니스트였던 엄마가 끌려간 세상과,
종적도 없이 사라진 남편과 자신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딸과,
친구중 가장 똑똑하며 용감했던 레즈비언 친구의 씁쓸한 행로들...
사랑하던 사람들은 쓸쓸하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악몽같은 하루하루안에서 차라리 나의 가족이 죽었기를 바라는 심정.
공포스러운 사회 분위기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녀>의 담담한 이야기는
소름끼치게 무서우면서도 슬프다.
책 뒷편에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길리어드의 통치자들이 모여
그들의 만족스러운 통치방식을 찬양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소름끼치도록 어이없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책이었다.
허구의 충격적인 디스토피아 이야기같지만,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지 모르고, 현재에도 충분히 있는 일들이다.
분명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저 위에 인용한 글같은 말을
누군가가 내뱉는 것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저런 관점들은 두려워하며 반드시 변해야하지 않나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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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아이
레슬리 글레이스터 지음, 조미현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폭풍이 오거나, 거친 바람이 주위를 포효하다 집에 부딪쳐올때면,
난 집이 무너져 우리를 묻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깔끔하고 단정한 종말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할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폐허위로 찔레꽃과 들장미가 자랄 것이다.
집의 주축대와 골격, 낡은 가구의 뼈대, 그리고 우리 네명의 해골 위로.
고양이들이 먹이를 찾아 배회하다가 우리의 살을 뜯어먹거나,
우리 뼈를 갉아대던 쥐들을 잡아 먹을지 모른다.
난 애거서처럼 고양이에게 환상같은 건 품지 않는다.

-레슬리 글레이스터 "네번째 아이" 中...


네 자매가 있다.
허영심과 자만심으로 가득찬 미녀 언니 애거서,
가장 평범하고 강인하며 자유롭고 싶어하는 둘째이자 주인공 밀리,
천사같은 외향을 하고 떨어져서는 절대로 다니지 못하는,
마치 한몸같은 자폐아쌍동이 앨렌과 에스더.(엘레네스더)

잘생긴데다가 멋지고 우아하기만 아버지와,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더이상 바랄것 없이 풍족하고 행복하던 어린 시절,
밀리는 우연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어머니가 그렇게 정숙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과
그동안 이해할수 없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알게되고,

그 순간부터 그들의 평온한 집은 지옥으로 변한다.

사육소의 돼지같은 너무나 평온하고 부족할 것 없는 권태로운 삶.
어머니를 자살로까지 몰고간 차가운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네 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집에 묶어놓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집착,
밀리는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딸로,
아버지 몰래 남자친구 아이작과 도망칠 거라는 희망을 품지만,

그 계획이 좌절된 이후부터는,
이 집은 미치지 않고는 못배길 지옥이 되어버린다.

집밖을 빠져나가고 싶어서 늘 안달이었던 밀리도,
과거의 기억을 자기 좋을 대로만 재편집하던 언니 애거서도,
공허하게 자기들끼리의 대화만을 나눌뿐인 살인자 쌍동이 앨렌에스더도,

결국은 그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과 함께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맺기로 한다.

조용하게 시작했다가 지루한듯 느릿느릿 전개되고,
속력이 마치 자로잰듯이 조금씩 빨라져서,
마지막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재밌던 소설이었다.
무시무시한 책평론글만 봐서는 괴물이나 등장할 법한 공포물이 떠오르지만,
막상 책을 펼쳐놓고 보면, 기이한 가족사를 다룬 슬픈 소설이었다.
집과 함께 인생을 마감하기로 하는 네 노인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슬프게 다가와서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집에 갖혀 있을수 밖에 없는 폐쇄공포와 폐륜적인 소재들에서,
일면 V.C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훨씬 우아하며 수준있다.
문장력이 매우 세련되고 우아해서,
보면서 "와...이사람 글 진짜 잘쓰는 사람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절로 든다.

"독특한 분위기의 책.
이 작품에는 태양빛에서뿐만 아니라 시체에서조차
영양분을 가져올 줄 아는 격렬한 우아함이 있다.
그 결과물은 실로 섬뜩하고 만족스럽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공포물."
-Sunday Times

...라고 평론글에 써있는데, 읽는 동안 나도 저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덕분에 상도 몇개 받은것 같다.

아...우연히 산 책이 기대하지 않고도
너무나 마음에 들때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뿌듯하다.
내게는 이책이 그랬고,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꼭 읽어보라고 강추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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