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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아이
레슬리 글레이스터 지음, 조미현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폭풍이 오거나, 거친 바람이 주위를 포효하다 집에 부딪쳐올때면,
난 집이 무너져 우리를 묻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깔끔하고 단정한 종말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할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폐허위로 찔레꽃과 들장미가 자랄 것이다.
집의 주축대와 골격, 낡은 가구의 뼈대, 그리고 우리 네명의 해골 위로.
고양이들이 먹이를 찾아 배회하다가 우리의 살을 뜯어먹거나,
우리 뼈를 갉아대던 쥐들을 잡아 먹을지 모른다.
난 애거서처럼 고양이에게 환상같은 건 품지 않는다.
-레슬리 글레이스터 "네번째 아이" 中...
네 자매가 있다.
허영심과 자만심으로 가득찬 미녀 언니 애거서,
가장 평범하고 강인하며 자유롭고 싶어하는 둘째이자 주인공 밀리,
천사같은 외향을 하고 떨어져서는 절대로 다니지 못하는,
마치 한몸같은 자폐아쌍동이 앨렌과 에스더.(엘레네스더)
잘생긴데다가 멋지고 우아하기만 아버지와,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더이상 바랄것 없이 풍족하고 행복하던 어린 시절,
밀리는 우연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어머니가 그렇게 정숙한 여자는 아니라는 것과
그동안 이해할수 없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알게되고,
그 순간부터 그들의 평온한 집은 지옥으로 변한다.
사육소의 돼지같은 너무나 평온하고 부족할 것 없는 권태로운 삶.
어머니를 자살로까지 몰고간 차가운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네 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집에 묶어놓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집착,
밀리는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딸로,
아버지 몰래 남자친구 아이작과 도망칠 거라는 희망을 품지만,
그 계획이 좌절된 이후부터는,
이 집은 미치지 않고는 못배길 지옥이 되어버린다.
집밖을 빠져나가고 싶어서 늘 안달이었던 밀리도,
과거의 기억을 자기 좋을 대로만 재편집하던 언니 애거서도,
공허하게 자기들끼리의 대화만을 나눌뿐인 살인자 쌍동이 앨렌에스더도,
결국은 그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과 함께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맺기로 한다.
조용하게 시작했다가 지루한듯 느릿느릿 전개되고,
속력이 마치 자로잰듯이 조금씩 빨라져서,
마지막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재밌던 소설이었다.
무시무시한 책평론글만 봐서는 괴물이나 등장할 법한 공포물이 떠오르지만,
막상 책을 펼쳐놓고 보면, 기이한 가족사를 다룬 슬픈 소설이었다.
집과 함께 인생을 마감하기로 하는 네 노인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슬프게 다가와서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집에 갖혀 있을수 밖에 없는 폐쇄공포와 폐륜적인 소재들에서,
일면 V.C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훨씬 우아하며 수준있다.
문장력이 매우 세련되고 우아해서,
보면서 "와...이사람 글 진짜 잘쓰는 사람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절로 든다.
"독특한 분위기의 책.
이 작품에는 태양빛에서뿐만 아니라 시체에서조차
영양분을 가져올 줄 아는 격렬한 우아함이 있다.
그 결과물은 실로 섬뜩하고 만족스럽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공포물."
-Sunday Times
...라고 평론글에 써있는데, 읽는 동안 나도 저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덕분에 상도 몇개 받은것 같다.
아...우연히 산 책이 기대하지 않고도
너무나 마음에 들때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뿌듯하다.
내게는 이책이 그랬고,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꼭 읽어보라고 강추하고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