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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여자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4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 송홍빈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은 34살이야.
지위도 없고 미래도 없었어.
말해볼까?
그 나이에 아무것도 못했기 떄문에 언제까지 가도 건설적인 일은 할 수 없는 인간이었던 거야.
내가 없으면 당신은 그저 불쌍한 생활이나 계속하면서
나이를 먹어갔을 테지.
그러면서도 당신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그에 적합한 꿈을 꾸겠지?
어떻게도 되지 않지.
당신 같은 건 어떻게 될수도 없어.
당신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어.
당신은 그저 머릿수로서만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그 이상의 아무것도 없지."
-카트린 아를레이 -지푸라기 여자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던 여자.
번역일을 하면서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먹고사는 이 여자에게는
어떤 꿈도 희망도 심지어는 그것을 위로해줄만한 친구나 친인척도 없다.
단 하나 이 짜증스러운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뿐.
매일 아침 신문에 난 구혼광고나 들여다보면서,
그녀는 한심하고 무기력한 인생에서 벗어날 기회를 기다렸고,
어느 날 막대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 독일여자를 구하는 기적같은 구혼 광고를 본다.
그녀에게는 일생에 단하나뿐인 기회.
이 여자가 어떤 아부도 없이 솔직하게 돈이 필요하고, 한번 잘살아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지푸라기 여자"는 불어로 로봇이나 나무인형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말에도 자기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조종을 받아서 행동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허수아비"나 "꼭두각시"가 있듯이.
그저 한번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잘 살아보고싶은 주인공 "힐데가르데"가 딱 그런 역활이었다.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어마어마한 백만장자 노인과 결혼해서 그의 유산을 받아야하는 역활.
이 소설은 완벽한 완전범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소설이 막바지로 다르면서 점점 슬퍼졌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재산을 물려준다고 가정해보자.
1억?
10억?
100억?
이 정도는 완전 황홀한 인생 대 역전이겠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하기도 힘들 정도의 대 기업체규모의 재산을 물려준다면,
평범하게 자라온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다.
욕심많은 주인공은 가난하고 힘겹게 자라온 사람.
비교적 똑똑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누군가 그런 막대한 재산을 거저 준다고 해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렇게 많은 돈을 써본적이 없기 때문에, 관리하는 법을 모른다.
위에서 인용한 그녀에게 사기친 그 남자의 이야기는
그것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그가 비난하는 그녀의 안에서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시민인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역전의 "부"라는 것은,
돼지목의 진주목걸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슬퍼졌다.
아무리 자존심을 드높이며 도도하게 굴어도,
우리는 그들을 이길수 없다.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모두 선대에 물려받아서가 아니라,
물려받은 재산을 굴릴줄 아는 머리 또한 물려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씁쓸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생각을 이 소설을 보면서 다시 했다.
이길수 없다고 가치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개가 매우 빠른 소설이었고, 또 그만큼 박진감도 넘친다.
뒤에 밝혀지는 완전범죄의 전모 또한 훌륭했고, 전체적으로 아주아주 재밌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