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녀 이야기 ㅣ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재닌이 일어나 열네 살 때 집단 강간당하고 낙태를 해야했던 경험을 간증한다.
지난 주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심지어 그런 경험이 자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애초에 꾸며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간증 시간에는 털어놓을 얘기가 하나도 없는 것 보다
차라리 없는 일을 꾸며내는편이 안전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재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어느 정도 사실일 터이다.
하지만 그게 누구의 잘못이었지요?
헬레나 <아주머니>가 통통한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며 말한다.
그녀의 잘못입니다. 그녀의 잘못입니다.그녀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제창한다.
그들을 부추긴 게 누구지요?
헬레나 <아주머니>는 우리가 대견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걸까요?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시녀이야기 中...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요즘 여자라면,
저런 대답을 강요받으면 입으로 쌍시옷 발음을 14쌍정도는 내뱉었겠지만,
이 소설이 주는 공포와 슬픔은 저런 사건이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 소설은 가상의 국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sf는 아니며,
충분히 공포스러우나 공포소설은 아니다.
환경오염과 불임바이러스, 전쟁으로 인해서 황폐해진 북미지역에,
길리아드라는 독재 정부가 성립한다.
마치 중세시대로 돌아간 냥, 철저히 금욕적이며 엄숙한 국가 길리아드.
그곳에서 남자들은 권력으로 나뉘며,
여자들에게도 종류별 직책이 있다.
<아내>등급은 말 그대로 아내라는 뜻인데,
아마도 대충 고위관리의 아내를 그렇게 부르는듯 싶다.
불임여성이 급증함으로써 아내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되는 경우도 많아서,
아내들이 하는 일은 집안의 가장 윗어른으로(여자중에) 총체적으로 명령하고
거드름피우는게 일이다.
<하녀>등급은 집안일을 하는 여자들로,
아이도 도맡아키운다.
그리고 마지막 <시녀>등급의 여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이만 낳는 여자, 이른바 씨받이 또는 대리모이다.
그들은 함부로 다뤄서는 안될 국가의 자원이면서,
아내와 하녀들의 미움을 도맡아 받기도 한다.
그들은 수녀복을 연상시키는 듯한 의상을, 그것도 빨간색으로 맞춰입고 다니며,
누군가에게 얼굴을 보여서도 안되고,
술도, 담배도, 초콜렛도 안되고,
웃어서도 울어서도 안되고,
대답이외의 불필요한 말을 해서도 안되고,
글을 읽어서도 안되며, 남자와 눈이 마주쳐서도 안되고,
옷도, 화장품도, 그외 여타 모든 것을 금지당한채,
3번정도 써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쓰레기와 함께 소각당하는
그저 아이만 낳는, "걸어다니는 자궁"일뿐이다.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살밖에 없지만,
자살자들도 꽤 많아서 막으려고 자살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은 모두 치워버린다.
그들은 이름을 빼앗기고 가족을 빼앗기고,
발령받은 집에 들어가서 이름을 받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오브프레드>.
그러나 이것은 프레드의 소유물(시녀들 이름은 주인이름앞에 Of를 붙인다)이라는 뜻을
내포한 말이다.
<아주머니>등급의 여자들은
이런 시녀들을 가르치는 교육관으로써,
주로 나이든 불임 독신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각하게 일그러진 포르노 따위를 보여주면서,
길리아드 이전의 시대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기억하라며 그들을 교육시킨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시녀들을 "배급"받아서,
아이를 낳는다.
참 보기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
"패미니즘 문학"이라고 이름은 붙여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패미니즘보다도, 인간존엄성의 문제가 더더욱 생각났던 이유는,
이런 사회에서 여자도, 남자도 행복하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소설속의 딱딱한 공산주의 사회의 남자들도,
사랑이나 로맨스를 바라고 있었으며,
진심이 포함되지 않은 비인간적인 수태행위에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남편의 아이를 가져야하는 시녀에 대한 질투심을 표출하지 못하는 <아내>나,
기계처럼 아이만 낳을수 있는 <시녀>나,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하지 못하다.
소설속에서 특히 인상적이며 잔인한 부분은
수태행위(섹스나 강간도 아니라고 하니까-)부분과,
아이를 낳는 부분이었는데,
그 차가운 비인간성에 소름마저 끼쳤다.
이를테면 1대 시녀가 된 주인공 <오브프레드>에게,
자신을 둘러싼 이 악몽같은 세계속에서,
과거의 남편과 아이와 친구에대한 기억들이 슬프게 맞부딪혀온다.
패미니스트였던 엄마가 끌려간 세상과,
종적도 없이 사라진 남편과 자신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딸과,
친구중 가장 똑똑하며 용감했던 레즈비언 친구의 씁쓸한 행로들...
사랑하던 사람들은 쓸쓸하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악몽같은 하루하루안에서 차라리 나의 가족이 죽었기를 바라는 심정.
공포스러운 사회 분위기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녀>의 담담한 이야기는
소름끼치게 무서우면서도 슬프다.
책 뒷편에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길리어드의 통치자들이 모여
그들의 만족스러운 통치방식을 찬양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소름끼치도록 어이없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좋은 책이었다.
허구의 충격적인 디스토피아 이야기같지만,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지 모르고, 현재에도 충분히 있는 일들이다.
분명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저 위에 인용한 글같은 말을
누군가가 내뱉는 것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저런 관점들은 두려워하며 반드시 변해야하지 않나
다시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