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파뜨리크 쥐스킨트 <좀머씨 이야기> 中...
 
 


읽을때 마다 느끼지만, 좀머씨 이야기는 슬프다.
이 동화같은 얘기는 묘하게 현실적이라 허무하다.
아마도 은둔자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습이 좀머씨로 비춰보여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그토록 유명한데도 불구하고
은둔을 고집하는 이유는 어느 쪽일까?
 
세상이 싫어서 일까?
아니면 세상이 두려워서 일까?
고립된 상태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고립된 상태가 안전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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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 밤이면 나는 집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나는 길을 달리며 어딘가로 떠나는 꿈을 꾸었다.

어렸을때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행복한 가족들,

아름다운 사람들과 멋진 차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지만 내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인 그런 꿈들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 꿈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

 

-피터 해지스 "누가 길버트 그레이프를 초조하게 하는가" 中...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의 꿈.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게 모두 바뀌어버린 꿈.

여전히 나는 나일뿐이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변해버린 꿈.

어른이 되자, 변화에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내게 이제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은

있던 것을 모두 바꿔야하는 피곤함과,

나 자신마저 바뀔거라는 불안함만 가득찰 뿐이다.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세상은 너무도 쉽게 변해버린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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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그 오후를 기억한다.
 
어머니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하우게고 부인과 아이작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
벽에서 따뜻하게 일렁이던 불빛과 군밤 냄새.
바싹 타 들어간 밤을 씹을 때 느껴지던 뜨거운 껍직과 달콤한 속알...
그 시간이 너무도 완벽하다고 느끼면서도
결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난 이미 그때부터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행복한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 수도 없었지만,
그 시간을 붙잡아 둘수도 없었다.
잘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볼수 있을 시간도 결코 아니었다.
잠시 후면 아이작과 하우게고 부인이 우리집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 쌍둥이들이 잠에서 깨어 울어댈 것이고,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없을 터였다.
결국엔 불빛도 사그러들 것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집안은 점점 냉랭해지고 음침해져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몰랐다.
 
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꽁꽁 묶어 그 자리에 가둬두고 싶었다.
모든것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때 까지,
난 그들을 그 시간의 감옥속에 가둬두고 싶었다.
 
-레슬리 글레이스터 "네번째 아이" 中...
 
 

 
누구에게나 저런 순간이 있을까?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 오히려 그게 깨질까봐 슬퍼지는 순간이....
 
행복의 핵에 있을 때는,
그 행복이 어색하고 깨질까봐 두렵고,
그 시간을 가둬두고 싶어서 마음속이 안달난다.
결코 그럴수 없다는 것을,
그저 단순히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중 하나 일뿐이라는 것을
자신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시간이 다시 돌아와주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기 때문에,
가슴 벅찰 정도로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바람이 불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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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시내에서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서까지도.

산보를 나갈 때마다 그는 마치 자신을 뒤에 남겨 두는 듯한 느낌이었고,

거리에서의 움직임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자신을 하나의 눈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생각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른 것은 몰라도 어느 정도 평화를 얻어 편안하게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세상은 그의 밖에, 주의에, 앞에 있었지만

그  세상이 계속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는 어느 한가지 사물에 오래도록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임, 한발을 다른 발 앞으로 내밀어

자신의 표류하는 육체를 따라가도록 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정처없이 배회하다보면

보든 장소들이 똑같아져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된다.

산보가 가장 잘될 때면 그는 자기가 아무데도 아닌 곳에 있다는 기분까지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아무데도 아닌 곳에 있다는 것이 그가 요구하는 전부였다.

뉴욕은 그가 자기 주위에 만들어 놓은 아무데도 아닌 곳이었고,

그는 두번 다시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폴오스터 "뉴욕 3부작"

 

 뉴욕뿐만이 아니라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 아닐까.

도시란 가장 화려하고 공허한 곳이니까.

 

가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보면 무한한 외로움을 느낀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끔씩 헤깔릴때가 있다.

살짝 잠에 들었다가 깨어났을때, 버스에 사람들이 거의 내리고 몇명만 앉아있을때,

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같은 공허함을 느낀다.

 

아무데도 아닌 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주인공과 다르게,

가끔은 아무데도 아닌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한히 외로워진다.

그래도 도시에서 살아갈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떠날 마음이 없는 이유는

나 역시 그 소음과 화려한 네온사인이 주는 공허함을 즐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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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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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이다.
그런데 사실은 죽음도 중요하지 않다."

라는 말로 이책의 1부가 시작되는데, 이 말하나로도 나는 이책을 사랑하게되었다.


"기발한"이라는 단어가 주는 엉뚱하고 유쾌한 이미지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슬프고 음울하고 섬뜩한 이미지와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슴설레이는 감동같은 이미지.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이책의 정체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죽음중에서도 가장 섬뜩하고도 비극적인 죽음의 이름인 "자살"을
작가 특유의 유머와 해학으로 무척이나 귀여운 소설을 만들어냈다.

핀란드에 가본적도 없고, 다른 매체에서 그다지 접해볼 기회도 그닥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핀란드가 어떤 나라인지 알지 못하지만,
이 나무로 뒤덮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은 음흉하고 베베꼬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져 햇빛을 받지 못하는 핀란드 사람들은
남을 비웃기 좋아하고, 냉소적이며, 극단적인 비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이런 시점에서, 사업을 네 번이나 말아먹고 가족들까지 등을 돌려버린 중년의 남자는,
핀란드에서 가장 눈부시게 화려한 햇빛이 비추는 축제기간에,
옷속에 권총을 숨기고 자살 장소를 물색하고 있던 도중에,
자기와 똑같이 자살을 꾀하는 중년의 남자를 만난다.
얼떨결에 밧줄에 목매려는 남자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낸후에,
그들은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깊은 동질감을 느껴 눈깜짝할 사이에 베스트 프랜드가 된다.
그들이 자살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


그들은 생각한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자기들처럼 사회에 도태되고 죽음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을 찾는 일은 분명 근사할거라고.
그래서 신문에 자살자 모집을 하고, 몇 명이든 모이면 동반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똑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죽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는,
나름대로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을테니까.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놀랍게도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오고,
얼떨결에 부랴부랴 자살자 세미나를 가지고,
이런 저런 사건으로 추려져, 결국 남은 자살자는 33명.
그들은 초호화 버스를 타고 유럽전역을 여행하며 자살장소를 물색한다.

어찌된 일인지, 이 동반자살자들에게는 더이상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살하기위한 모임"이라는 자체를 매우 즐기고 있었고,
늘 동반자가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며,
마음먹지 않으면 하기 힘든 유럽일주까지 해 버린다.
초호화버스, 멋진 음식들, 근사한 풍경.
그들에게 내일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오늘을 멋지게 즐겨 버리는 것이다.

죽음으로 다가갈수록 그들은 삶의 열정을 불태운다.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상처가 너무 커다라서 자기자신을 먹어 버리기도 한다.
도저히 자기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고독감이 한때는 행복했을지 모를 순간들조차 불행으로 퇴색시킨다.
그러나 한발짝 물러나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그런 고통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사건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사람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남아
언젠가는 사진첩의 사진처럼 가끔씩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되는 것이다.


이 동반자살자들의 여행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고 하는 것은,
삶이 그대를 속이고 아프게 할지라도,
그래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라는게 아닐까.
똑같은 상처를 함께 극복해나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책은 책일뿐, 현실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렇게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함께 나눌
나와 똑같은 사람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에는 그런 것도 포함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반자살"이라는 섬뜩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순간순간 허를 찌르는 이 블랙코미디는 유쾌하고 즐거운 바이러스같다.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으면서 보게되는 흐뭇한 소설이었다.
새드 엔딩으로 인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의 동화적인 해피엔딩.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나온 핀란드 소설이라는데,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제발 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감정을 이끌어내는 정말 멋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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