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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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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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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방 (양장)
앤절라 카터 지음, 이귀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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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김기영감독의 <하녀>를 어디선가 리메이크한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제 개봉하려나보다.
임상수 감독, 전도연 이정제 윤여정 서우가 연기한단다.
어릴 때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아마도 TV심야영화같은 걸로...-_-),
꽤 기괴하고 (당시로써는) 에로틱한 느낌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보면 너무나 뻔한 치정스릴러에 가까울 테지만, 만들어진 당시를 생각해보면 당시로써는 꽤 파격적이었을듯.)

암튼 티스토리 공지에서 발견한 반가운 <하녀>의 트레일러.
포스터도 기괴하면서 야시시하고, 트레일러도 끈끈하면서 야시시하다.
하악...좋다좋아...*-_-* 

 

*트레일러 배경음악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덧붙이면, Nichole ALDEN의 Baby Now라는 곡이다.

*요즘 <피로 물든 방>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소설이 너무 끈적대서 아침마다 기분이 몽환적이고 야시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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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고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어린이가 하나 살고 있었으니, 바로 나다.
고아에 대한 터무니 없는 환상을 길러준 것은 바로 이 소설 <소공녀> 그리고 <소공자>, <비밀의 화원>, 또는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인 <제인에어>를 비롯해 <빨강머리 앤>, <올리버 트위스트>, 심지어 <캔디캔디>까지 이어지는 여러 소설들과 만화들이었다.
이런 소설들과 만화를 보고 자란 나는 "너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식의 짓꿎은 농담에 눈도 꿈쩍하지 않는 맹랑하고 시크한 어린 아이였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 진지하게 내게 줏어온 자식이라 말하면, 이불에 누워 내 진짜 부모님은 어디 계실까 상상하다가 잠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상상들은 내가 책속에서 보아온 소년, 소녀들의 모험과 다름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줏어온 자식 내지는 고아라 해도 그닥 무섭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순진한 어린 아이의 망상속의 고아들에게 드라마틱한 모험이 필수 요소였던 것처럼, 현실의 나는 그 상상이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진짜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그들은 항상 마지막에는 공주 내지는 왕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고보니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에는 유독 고아가 많이 등장한다.
고아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를 떠나 냉랭하고 완고한 노인곁에서 살아가는 <소공자>의 세드릭이라던가, 인도에서 사는 영국귀족의 딸이었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그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고아가 되어 다락방 하녀로 전락하는 <소공녀>의 사라, 역시 인도에서 살다가 부모님의 죽음으로 영국의 친척집에 얹혀 살게되는 까칠하기 그지 없는 <비밀의 화원>의 메리까지, 프랜시스 버넷의 아동소설들에는 늘 고아가 주인공이다.
이 책 말미의 프랜시스 버넷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으려니, 왜 그녀가 이러한 주인공들을 아꼈는지 알게된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몰락 귀족신세로 살아가게 되었던 프랜시스 버넷.
영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그런 그녀와 그녀의 가문을 구해준 것이 바로 그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역경속에서 피어났던 상상력과 그래서 탄생한 소설들. 그것으로 일약 스타덤에 이르는 작가가 되었던 프랜시스 버넷은, 힘든 상황일수록 뛰어난 상상력과 긍지로 현실을 견뎌내는 아이들을 자신처럼 그려냈던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지만, 그건 어린 아이의 기준에서 멋대로 해석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았던지, 다시 읽은 <소공녀>는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라는 금발이 아니라 흑발이었고,(아마도 어디선가 금발머리 사라가 주인공인 소공녀 애니메이션을 봤던 듯.) 생각보다 훨씬 맹랑하고 성깔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밟으면 꿈틀하는 성질머리와 자긍심이 있고, 퇴락한 자존심을 상상으로 극복하는 듯 보이다가도, 혼자 남으면 여전히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인간다운 면도 발견할수 있어서  어린 시절보다 훨씬 사라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사라가 다락방에 갖힌 하녀가 되어서도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고, 여전히 "공주다운" 고고함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존심이고, 그 자존심이 그녀를 꿈꾸게 만든다. 충분히 울고불고 할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나쁜 것에 실망하기보다는 더 나쁜 상황이 오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여전히 꿈을 지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 힘든 상황을 극복할수 있었다.

어른이 된 후 이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섬찟한 느낌도 들더라.
상상으로 도피하는 수 밖에는 아무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속에 어린 아이가 내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섬찟했다. (심지어는 <판의 미로>같은 암울한 영화도 겹쳐보이고...)
소설속에, 동화속에는 고달픈 현실에서 상상으로 도피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도 틈만 나면 몽상에 빠져 마릴라 아줌마에게 혼나기 일쑤이고, <소공녀>의 사라 역시 어떠한 순간에도 신비한 상상으로 도피함으로써 현실을 잊었다.
상상은 고달픈 현실을 잊게 해줄까?
어린 아이에게는 가능할지 몰라도, 동심을 잃은 어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마지막, 고생하던 사라가 다이아몬드 광산 실패로 도망쳤던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 다시 공주가 되는 드라마틱한 전개에 동심을 잃은 어른인 나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질수 밖에....
상상으로 즐거울 나이는 지났다는 것이, 그저 소설로써 고난을 딛고 성공하는 주인공을 박수치며 즐거워해줄수 없다는 것이, 이런 신데렐라 드라마가 이제는 터무니없는 환상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이 슬프다.

현실을 하루하루 견디며 지내는 어른이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소녀이고 싶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상으로 현실을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상함으로써 현실은 조금 더 나은 곳이 된다고.
아무 환상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가끔씩 백일몽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더 재밌다고.
적어도 나는 아직 공상의 힘을 잊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들과 작가들에게 감사한다.
어린 시절 나를 꿈꾸게 해주었고, 그 몽상들의 잔향을 아직도 간직하게 해주어서.

p.s 1.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책의 주인공을 "세라"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내게 "사라"라는 발음은 왠지 낯설었다.
왠지 세라가 더 고상해보이잖아.
아마 "메리"보다 "메어리"가 더 익숙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리라.

p.s 2. 표지도 예쁘고 다 좋은데, 오탈자 좀 어떻게 해주었으면.... 펭귄 클래식은 탈고에 신경을 좀 쓰시기 바란다. 이전에 읽었던 펭귄 클래식 책들에서도 잘못된 어미 사용이나 오탈자를 꽤 많이 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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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박스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반전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할수 있는 것은 장편보다는 오히려 단편인 것같다.
긴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 함축적인 이야기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뒤집어놓는 반전까지 마련한다는 것은 여간 글쓰기에 여유롭지 않는 이상 힘든 일 같다.
리처드 매드슨의 <더 박스>는 그런 느낌으로 재밌게 볼수 있는 단편집인데, 대부분의 단편들이 아주 짧은데 비해 임팩트도 확실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하다.
"어라?"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한번 생각해볼 여지까지 주는, 참 즐거운 반전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첫번째 짧은 단편 <버튼, 버튼>은 2009년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소식이 그닥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영화가 성공적이지는 못했나보다. 아주 짧으면서 임팩트 있는, 단편집의 섬문을 열기에 적절한 단편인데, 어디서 본 것같은 느낌은 왜일까. 이 비슷한 단편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이 단편을 다른 곳에서 읽었던 것만 같은데, 어디서 였을까...하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리처드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에서 읽었던 것을 간신히 떠올려냈다. 아...이제 내 기억력도 맛이 갔구나...허허...
<버튼, 버튼> 이외에도 기상천외하면서 환상특급같은 느낌의 단편들이 가득한데, 개인적으로는 <흡혈귀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 >, <특이한 생존 방식>, <매춘부 세상>같은 단편들이 재밌었다.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들은 소설자체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수 있다기보다는, 다분히 영화적인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리처드 매드슨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 드라마화 되었다고 한다.
무척 단순한 글쓰기임에도 그 한자 한자를 생각해내기 위해 분명 작가는 고심했을 터.(이래놓고, <버튼, 버튼>을 5분만에 썼소-라고 얘기하면 할 말 없지만....그럼 당신은 천재!)
줄줄히 늘여쓰지 않음에도, 대사 하나하나가 전달하는 의미는 정확히 전달되고,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신경질적인 문체는 스릴감을 더해준다.

문학적인 즐거움보다는, 단순한 일상에 단순히 표현되되, 기이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오랜만에 한큐에 책을 다 읽는 즐거움을 또 느껴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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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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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휴일 낮,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잠을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왜 였을까. 제목에서 오는 느낌탓인지, 나는 이 책을 "트릭깨기" 위주로 흘러가는 다소 가벼운 두뇌놀이 스타일의 소설일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니 왠걸? 반쯤 읽어가다보니 트릭이고 나발이고,  이 미스테리한 일련의 사건들의 배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못참게 될 지경이라, 꽤 두꺼운 분량에도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었다.
작가와 동명의 이름의 주인공을 탐정격 인물로 내세운 것이라던가, 탐정격인물과 함께 아버지가 보조 탐정격으로 등장하는 점이라던가, 작품의 스타일도 엘러리 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노리즈키 린타로는 솔직히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앞으로는 가장 기다리는 작가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천재 조각가가 오랜 슬럼프를 극복하며, 투병생활 중에서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딸을 주인공으로 한 석고상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세상에 선보이기 전, 조각가는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조각가의 장례식 후 그 마지막 작품의 머리가 사라진다. 조각가의 회고전을 준비중이던 미술 평론가는 이 사건을 경찰에게 알리기보다는 조용히 해결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추리소설가가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사람을 모델로 해 만들어진 석고상의 머리가 잘려나갔다는 것은 일련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고장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조각가의 딸 에치카의 주변인물들을 조사하던 중, 예전에 그녀를 스토킹해왔던 질나쁜 사진가 도모토 슌의 존재를 알게되고, 사건이 점점 알수없는 미궁에 빠져들어가는 새에, 에치카가 실종된다.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들 가운데 가장 꼼꼼한 소설이 아니었나 싶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제목만큼 사건이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그 사건들의 내막에 깔린 이야기의 충격과 무게감에서 깊이를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추리소설가이기 이전에, 추리소설 평론가라고 하던데 이러한 내력 때문인지, 간간히 일본 추리소설에서 느낄수 있었던 얄팍한 깊이감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 자체가 갖가지 예술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고 느꼈고, 그로써 무척 지적인 소설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반면, 탐정격으로 등장하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존재는 여타 다른 소설들의 탐정격 존재들과는 다른 무척 평이하고 다소 어리석은(탐정이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캐릭터로 만들었는데, 이 점 또한 현실적이고 신선했다.
또, 여타 다른 일본 추리소설처럼 굳이 잔혹성을 필두에 세우지 않고, 다소 냉정하고 담담하게 사건의 내막을 파고들어가는데도, 소설속 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탄탄히 만들어놓았기 때문인지 내내 긴장감을 가지고 볼수 있었다.
전형적인 트릭깨기 스타일의 추리소설처럼 시작해 소설 중반을 지나면 질펀한 악연들과 그 악연들이 펼쳐내는 끔찍한 인간의 모습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의심과 오해, 오랜 증오와 잔혹한 이기심.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수 있는 이런 감정적인 문제들이 꼼꼼하게 만들어진 인물들의 관계성과 공정하게 주어지는 복선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초반부의 이야기들이 다소 늘어지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흩뿌려 놓기만 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책의 마지막을 다 확인하고 나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필요했던 과정임을 알게되었다.

나는 일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할 뿐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좋아하는 일본 추리 소설도 무척 한정적이다.
몇년간 읽었던 일본 소설들의 대부분이 다소 가벼운데다가, 언어적 유희나 사고방식의 전환을 통한 막판 반전 한방을 노린 소설이 많았었는데, 그런 소설은 킬링타임으로 읽기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고는 말할수 없겠더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 눈을 쏙 잡아끌었던 무척 즐거운 소설이었다.
이 책의 주요 사건의 내막들은 유행하는 반전 소설들처럼 한방에 속아넘어가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않는데, 차분히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간의 모든 복선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지나갔던 말한마디들이 꼭 들어맞는 퍼즐처럼 맞춰져서 책의 마지막 한장까지도 버릴 이야기가 없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의 시초이자, 마지막이 되는 결말부분의 론도 형식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작가 자신이 흥분하지 않되, 세련되고 차분하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매력을 가졌던 소설인데, 아마도 이런 건 재작년에 읽었던 <제물의 야회>이후로 처음으로 느끼는 흥분감이었던 것 같다.

이 대단한 소설을 덮으면서 나 역시 기시 유스케의 찬탄에 동감할수 밖에 없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라고.
노리즈키 린타로의 다른 소설들이 또 언제 출간 될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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