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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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고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어린이가 하나 살고 있었으니, 바로 나다.
고아에 대한 터무니 없는 환상을 길러준 것은 바로 이 소설 <소공녀> 그리고 <소공자>, <비밀의 화원>, 또는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인 <제인에어>를 비롯해 <빨강머리 앤>, <올리버 트위스트>, 심지어 <캔디캔디>까지 이어지는 여러 소설들과 만화들이었다.
이런 소설들과 만화를 보고 자란 나는 "너 다리 밑에서 줏어왔어."식의 짓꿎은 농담에 눈도 꿈쩍하지 않는 맹랑하고 시크한 어린 아이였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 진지하게 내게 줏어온 자식이라 말하면, 이불에 누워 내 진짜 부모님은 어디 계실까 상상하다가 잠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상상들은 내가 책속에서 보아온 소년, 소녀들의 모험과 다름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줏어온 자식 내지는 고아라 해도 그닥 무섭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순진한 어린 아이의 망상속의 고아들에게 드라마틱한 모험이 필수 요소였던 것처럼, 현실의 나는 그 상상이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진짜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그들은 항상 마지막에는 공주 내지는 왕자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고보니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에는 유독 고아가 많이 등장한다.
고아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를 떠나 냉랭하고 완고한 노인곁에서 살아가는 <소공자>의 세드릭이라던가, 인도에서 사는 영국귀족의 딸이었으나,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그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고아가 되어 다락방 하녀로 전락하는 <소공녀>의 사라, 역시 인도에서 살다가 부모님의 죽음으로 영국의 친척집에 얹혀 살게되는 까칠하기 그지 없는 <비밀의 화원>의 메리까지, 프랜시스 버넷의 아동소설들에는 늘 고아가 주인공이다.
이 책 말미의 프랜시스 버넷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으려니, 왜 그녀가 이러한 주인공들을 아꼈는지 알게된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몰락 귀족신세로 살아가게 되었던 프랜시스 버넷.
영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고, 그런 그녀와 그녀의 가문을 구해준 것이 바로 그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역경속에서 피어났던 상상력과 그래서 탄생한 소설들. 그것으로 일약 스타덤에 이르는 작가가 되었던 프랜시스 버넷은, 힘든 상황일수록 뛰어난 상상력과 긍지로 현실을 견뎌내는 아이들을 자신처럼 그려냈던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지만, 그건 어린 아이의 기준에서 멋대로 해석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았던지, 다시 읽은 <소공녀>는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라는 금발이 아니라 흑발이었고,(아마도 어디선가 금발머리 사라가 주인공인 소공녀 애니메이션을 봤던 듯.) 생각보다 훨씬 맹랑하고 성깔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밟으면 꿈틀하는 성질머리와 자긍심이 있고, 퇴락한 자존심을 상상으로 극복하는 듯 보이다가도, 혼자 남으면 여전히 비참한 기분을 느끼는 인간다운 면도 발견할수 있어서  어린 시절보다 훨씬 사라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사라가 다락방에 갖힌 하녀가 되어서도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고, 여전히 "공주다운" 고고함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존심이고, 그 자존심이 그녀를 꿈꾸게 만든다. 충분히 울고불고 할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나쁜 것에 실망하기보다는 더 나쁜 상황이 오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여전히 꿈을 지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 힘든 상황을 극복할수 있었다.

어른이 된 후 이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섬찟한 느낌도 들더라.
상상으로 도피하는 수 밖에는 아무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속에 어린 아이가 내버려져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섬찟했다. (심지어는 <판의 미로>같은 암울한 영화도 겹쳐보이고...)
소설속에, 동화속에는 고달픈 현실에서 상상으로 도피하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도 틈만 나면 몽상에 빠져 마릴라 아줌마에게 혼나기 일쑤이고, <소공녀>의 사라 역시 어떠한 순간에도 신비한 상상으로 도피함으로써 현실을 잊었다.
상상은 고달픈 현실을 잊게 해줄까?
어린 아이에게는 가능할지 몰라도, 동심을 잃은 어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마지막, 고생하던 사라가 다이아몬드 광산 실패로 도망쳤던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 다시 공주가 되는 드라마틱한 전개에 동심을 잃은 어른인 나는 씁쓸한 미소가 지어질수 밖에....
상상으로 즐거울 나이는 지났다는 것이, 그저 소설로써 고난을 딛고 성공하는 주인공을 박수치며 즐거워해줄수 없다는 것이, 이런 신데렐라 드라마가 이제는 터무니없는 환상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이 슬프다.

현실을 하루하루 견디며 지내는 어른이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소녀이고 싶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상으로 현실을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상함으로써 현실은 조금 더 나은 곳이 된다고.
아무 환상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가끔씩 백일몽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더 재밌다고.
적어도 나는 아직 공상의 힘을 잊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소설들과 작가들에게 감사한다.
어린 시절 나를 꿈꾸게 해주었고, 그 몽상들의 잔향을 아직도 간직하게 해주어서.

p.s 1.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책의 주인공을 "세라"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내게 "사라"라는 발음은 왠지 낯설었다.
왠지 세라가 더 고상해보이잖아.
아마 "메리"보다 "메어리"가 더 익숙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리라.

p.s 2. 표지도 예쁘고 다 좋은데, 오탈자 좀 어떻게 해주었으면.... 펭귄 클래식은 탈고에 신경을 좀 쓰시기 바란다. 이전에 읽었던 펭귄 클래식 책들에서도 잘못된 어미 사용이나 오탈자를 꽤 많이 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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