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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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도가와 란포의 미발표작처럼 등장한 <백골귀>라는 소설은,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경험담처럼 시작한다. 자신의 작가활동에 염증과 자괴감을 느낀 에도가와 란포는 가명으로 한 여관에 머물며 자살할 기회를 노리다가 자살의 순간, 자신을 구해준 다다시라는 소년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여관을 떠도는 기이한 소문의 주인공이 그 다다시라는 소년이라는 것도 알게된다.
월애병(月愛病). 달을 그리워하는 병에 걸렸다던 그 소년은 다소 추한 몰골로 허옇게 분을 칠하고 여자 기모노를 입고 밤마다 달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년은 자살해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그리고 얼마후 그 시체마저 사라져 이 자살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런 내용을 담은 <백골귀>라는 소설이 연재되고, 추리소설가인 호소미는 이 작자미상의 소설을 읽고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지은 미발표작인지, 그런 척 하며 나타난 소설인지 알수 없는데, 이 소설을 지었다던 청년을 출판사를 통해 소개받게 된다.

액자구성으로 들어가있는 소설 <백골귀>와 함께 이 소설의 근원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시체를 사는 남자>는 우타노 쇼고의 다른 소설보다 반전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가지 이야기의 접점이 기묘하게 겹치는 부분의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다.
물론 아주 충격적이거나, 아주 새롭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다분이 에도가와 란포스러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소설에서 발견하고 읽는 재미도 꽤 근사하고 말이다. 변태, 복장도착, 동성애에 관한 관심, 기괴한 것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미적 취향, 후일담으로 밝혀지는 이야기 등등, 읽다보면 란포적인 소설의 경향을 느낄수 있는 느낌들을 많이 느낄수 있어서 그런 점도 참 재밌는데, 막상 <백골귀>소설에서 대놓고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딱 한번 뿐이라는 점도 독특한 점이다. 성격이라던가, 어딘가 어눌하고 쭈뼛쭈뼛한 문체, 그간 지었던 소설들 -인간의자,  외딴 섬 악마, 지붕밑의 산책자, D언덕의 살인사건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삽입함으로써, 말하지 않아도 그가 에도가와 란포라는 사실을 짐작케 만든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야기가 반전되는 그 자체라면야, 이 소설은 어쩌면 실패작인지도 모른다.
다소 케케묵은, 약간은 촌스러운 구성을 취하며, 일본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략 눈치챌만한 이야기들도 많고.
그렇지만, 이야기의 완결성, 접점을 잇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괜찮아서 단 시간내에 즐겁게 읽었다.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것도 어쩐지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고....

에드거 엘런 포의 이름을 기묘하게 바꿔놓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풍은 확실히 에드거 엘런 포와 상당히 다르다.
(에도가와 란포가 에드거 엘런 포를 좋아하고 동경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쓴 건지, 일본의 에드거 엘런 포같은 작가가 되고싶은 마음으로 이런 이름을 쓴 것인지 나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전자의 이유이지 않았을까 싶다.)
기괴하고 악마적이며, 악몽같은 에드거 엘런 포의 작풍과는 다르게, 에도가와 란포의 작풍은 훨씬 아기자기하고, 어딘가 야한 악몽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읽었을 적에 느꼈던 느낌이 그랬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런 느낌이 느껴졌다.
기괴한 것이나 더러운 것, 뚜렷이 마주할수 없는 어떤 존재가 아름다움이나 색으로 이어지는- 그런 묘사들이 항상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드거 엘런 포는 굉장히 좋아하고, 에도가와 란포는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에도가와 란포식의 대부분은 기괴하지만, 약간은 가볍고, 약간은 색스러운 느낌이 지금의 일본 추리소설에서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일본식의 미적취향과 감성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것이 대표적으로 에도가와 란포라는 작가에게서 표출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에도가와 란포를 일본 추리소설계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다.

그나저나 제목의 <시체를 사는 남자>의 의미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역자후기에 역자가 제목을 추리해놓은 것을 읽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수 없다는 느낌만 남았다. 무슨 뜻이었을까.
어쩌면 제목자체에 트릭이 있다는 것보다는, 시체를 사는 남자의 시체가 죽어서 풍화되어버린 과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남몰래 끼워맞춰 보았지만,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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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의 우리 中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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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 <철서의 우리>를 이제서야 다 읽었다.
간간히, 교고쿠 나츠히코의 다른 책들 (교고쿠도 시리즈 외전이라고 할수 있는 백기도연대 시리즈라던가 항설백물어)같은 책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교고쿠 나츠히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교고쿠도 시리즈이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음양사가 초연히 나타날 때면 뭔지 모를 희열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뿐만이 아니리라.
오랜만에 그 냉정한 음양사를 만났다.
이번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에서-.

갑자기 고서적이 발견되었다는 말에 교고쿠도는 아내와 세키구치 내외를 대동하고 하코네로 떠난다.
그리고 하코네 산속에 깊이 묻혀 알려지지 않은 절 명혜사에 취재를 온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그녀의 동료 도리구치는 별안간 승려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좌선하는 자세로 굳은 채 죽어있는 스님.
경찰이 등장하고, 너무나 단순무식하게 이 살인사건을 목격한 모든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한편, 어딘지 비밀스러운 명혜사의 스님들이 하나둘씩 기묘한 모습으로 살해당한다.
늘 그렇듯 어쩌다보면 사건에 휘말려 있는 세키구치와는 다르게, 교고쿠도는 깊이 들어서지 말라는 차가운 말만 남기고 자신의 일을 하러 사라져버리고, 그야말로 이상한 탐정 에노키즈까지 호출당해 사건은 알수 없는 모습으로 증폭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 <철서의 우리>에서 장광설을 하는 것은 교고쿠도 뿐만이 아니다. 명혜사의 스님들, 각기 다른 종파를 가진 스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얘기해서 장광설은 다른 책들에 비해 더 증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주인공들의 장광설과 이번 시리즈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말을 흐릿하게 흐려버리는 사람들의 답답한 말투와,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는 알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에 나가 떨어질랑 말랑 할때에, 비로소 교고쿠도의 해설을 들을수가 있다! 이 비싼 남자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어서인지, 교고쿠도의 해설에서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아, 교고쿠도 시리즈가 이렇게 축축하고 불쾌한 소설이었던가?
맞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원래 그랬다.
후에 밝혀지는 이야기들을 이 리뷰에서 다 읊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참으로 불쾌한 사건의 연속이다.
아니, 뭐랄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참 불쾌할정도로 나른하고도 기묘한 사건이다.
이게 현실적인 이야기와 결국은 이어져 있다는 것 또한 무척 기묘하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일본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어김없이 든다.
결벽증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그 이면에는, 뭐라 말할수 없는 야성, 또는 짐승의 본능같은 것이 섞여있다.
가장 불쾌한 것은 그것이다.
이성적인 척 하면서, 한순간에 짐승으로 돌변하는 것.
이 소설이 주었던 가장 불쾌한 느낌은 거기서 오는 것인데, 이전 시리즈들에서 주구장창 나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데, 아마도 죄책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이 매우 희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떄문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에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은 결국 여자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그리고 한 여자의 인생을 남자에게 순종하다 망쳐버린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나, 막상 그 장본인은 그닥 큰 죄책감까지는 없다는 사실, 더 기가 막히게도 그런 여자를 또다른 여자가 질투하고 힐책한다는 사실이 여자로써는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이건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참 기묘한 감성이 아닐까 싶다.
스님들이 주구장창 등장해 한자를 읊어대고, 낭비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움직이고 자시고 해도,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
우리를 벗어날수 없는 쥐의 꼴을 하고, 그들은 그 긴긴 시간동안 각자 무엇을 품고 있었을까.
고인 물은 썩는다더니, 그 말이 딱 알맞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뭐에 씌인 것 뿐이다. 그 "씌인 것"은 언제나 욕망과 집착으로 귀결되게 되어있다.
집착의 정서에서 멀어져야할 스님들이 가지고 있던 욕망들은 인간이라 추했고, 인간이라 인간답기도 했다.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우부메의 여름>이나 <망량의 상자>가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했던 <광골의 꿈>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 이전작에 비해서 박력이 조금 약해진 것도 사실이고, 이야기의 유기성도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을 받기는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반가운 시리즈이고, 여전히 재밌었다.
가끔 교고쿠도 시리즈의 장광설을 읽다보면 고문당하는 기분이 들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또 스님들이 그렇게 장광설을 늘어놔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한시간 무릎꿇고 벌서다가 선생님이 이제 일어나라고 했을 때 느껴지는 감사함이나 구원같은 느낌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응? 나 교고쿠도에게 조련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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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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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꺼진 불도 다시보자. 책 출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왠지 읽고싶지 않은 책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미국식 크라임 스릴러중 하나일 거라고 짐작했고, 대부분의 인기 스릴러 소설들은 왠지 나와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어서, (그리고 이제쯤은 연쇄살인 얘기도 좀 식상하다 생각했고-)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이클 코넬리 소설은 평점이 늘 높더라.
그래.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자-하고 집은 것이 <시인>인데, 안읽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사실 그렇게 독특한 소설은 아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소설이고, 범죄자의 시선과 쫓는자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형식도 이제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보았고, 처음에는 작은 사건으로 시작하나 알고보니 아주 큰 사건이었다-같은 전개도 식상하기 그지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뭘까?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더불어 아무리 주인공이라도 추한 모습따위 가리지 않는 냉철함 같은 것이 내게는 가장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날 경찰인 쌍둥이 형을 잃은 잭 매커보이. 찝찝한 형의 자살사건에 드는 작은 의문들을 깨부수려고 경찰 자살사건 자료를 조사하다가 형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해왔다는 사실도...
경찰 자살사건뒤에 숨겨진 연쇄살인의 흔적들. 담당 경찰서를 전전하다가 FBI와 협력하게 된 잭 매커보이는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내게 되는데...

<시인>을 읽으면서 독특하다 싶었던 점은 잭 매커보이를 전혀 미화시키지 않는 점이었다.
의례 주인공은 현명하고 똑똑하며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여타 다른 스릴러와는 다르게, 잭 매커보이는 어딘가 야비하다. 그가 기자이기 때문에 이런 설정은 무척 현실감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죽음에 얽힌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자적인 욕심에 가득차서 이 사건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 줄수 있는지 계산하고 있는 남자.
완벽하게 계산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적절히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뒷통수 맞고 뒤늦게 후회하는 남자.
이런 남자가 잭 매커보이인데, 여타 다른 크라임 스릴러들에서 주인공을 미화시켜 초인적 존재로 만드는 것과 달라서 오히려 이런 야비하고 냉정한 현실감이 나는 마음에 들더라.
이런 식으로 나왔던 수많은 다른 스릴러들에 비해서 캐릭터적인 매력은 떨어지는 편이고 등장인물들이  딱히 별다른 개성이랄 것이 없는 편인데, 아예 캐릭터 개개인의 매력 자체를 설정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풍긴다. 캐릭터의 매력으로 이끌어나가는 시리즈가 아니라, 사건자체의 매력으로 이끌어나가면서 캐릭터는 사건에 융화시켜버리는 시리즈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 위주로 사건을 벌이지도 않고, 꽤 차분하고 냉철하며, 소설 전반적으로 흐르는 음울하고 습한 느낌도 마음에 든다.

1권에서 많은 것이 비밀에 붙여진 채 끝나버려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어차피 시리즈라서 3권까지 있던데 3권까지 읽다보면 뭔가 나오겠지...하며 기다리고 있다.
"시인"이라 불뤼우는 이 살인자는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건을 벌이려고 작가는 3권까지 이 "시인"의 존재를 보일듯 말듯 감추어 둔 것일까.
더 보고싶어서 <시인>을 덮자마자 2,3권 한꺼번에 다 주문해버렸다.
쉴틈없이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연속되어서 꽤 많은 분량에도 부담스럽게 읽지 않을수 있을 책이지만, 최근 시간이 없는 관계로 많이 끊어서 읽게 되어서 굉장히 아쉽다. 이제 읽을 <시인의 계곡>과 <허수아비>는 좀더 푹 빠져서 볼수 있기를 바라지만, 여름은 항상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이제 추리,스릴러 소설은 왠만큼은 읽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즐거운 스릴러 작가들이 계속 등장하니 추리, 스릴러 쪽으로 편식하는 나란 인간은 기쁨의 비명을 지른다. 악!!!!!

p.s 찾아보니 2권 <시인의 계곡>에서는 마이클 코넬리 소설의 가장 유명한 주인공이라는 해리 보슈가 등장한다던데,
해리 보슈 시리즈와 시인 시리즈의 접점을 엮어놓은 유기적인 설정도 참 재밌다.
이건 뭐, 크라임 스릴러에도 세계관이 등장할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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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모리스 - I Love You Phillip Morri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올해 그닥 재밌는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그러다 드디어 굉장히 재밌는 영화를 하나 만났다.
제목하여 <필립 모리스>.
짐캐리와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코믹물 정도로만 알고 있어서, 궁금하기는 했으나 꼭 보러가야한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안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딱 내 취향의 개그코드와 내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랑스러움.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귀뜸하자면, 포스터의 "코믹 탈옥기"쪽에 초점을 맞추면 황당하거나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특히 남자들!) 이 영화는 애초부터 게이의 사랑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스티븐.
어른이 되어서 성실한 경찰이자, 한 여자의 다정한 남편이자, 한 아이의 듬직한 아버지로 엄청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날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이 남자, 게이였다.
엄청 성실하고 착한 남자처럼 보이지만, 몰래몰래 남자들과 원나잇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생각한 것은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편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살려고 가정을 떠나와서 하고싶은대로 남자친구와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게이로 사는게 돈이 한두푼 드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딱히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직장에서 일하자니, 게이스러운 사치욕구는 조금도 충족되지 않고....
이렇게 사기행각에 빠지게 되는데, 하다보니 이게 천직인듯 싶다.
그렇게 사기행각을 벌이고 다니다가 결국 감옥에 가게된 스티븐.
그리고 감옥에서 드디어 필립 모리스를 만난다. 금발머리에 파란색눈, 어딘가 조신한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영화의 제목 "필립 모리스"는 짐캐리가 연기한 주인공 스티븐의 연인 이완맥그리거의 이름이다.
따라서 두 남자는 이 영화에서 감옥동지로 나오는게 아니라 감옥에서 만난 천생연분으로 나온다.
두 남자의 탈옥기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두 남자가 "함꼐 살려고" 탈옥하려고 하는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베드씬까지는 없지만 키스씬 정도는 있다고 미리 귀뜸해둔다. 이만큼 유명한 배우들이 게이 키스씬을 연기하다니 그 점이 조금 놀랍기는 했다.)
기묘하게도 영화가 온통 사랑타령으로 발려 있는데, 이게 느끼하지 않고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등장인물이 거의 남자들이니 만큼 대사도 상당히 거칠고 19금 발언으로 도배되어 있는데도, 왠지모르게 굉장히 귀엽다.
영화 초반에 이 영화는 실화다, 진짜다-이렇게 나오던데 진짜라면 정말 놀라울 일이다.
세상이 이렇게 헐거운 곳이었나-싶기도 한데,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사기사건들을 보고 있다보면, 있을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사기는 얼마나 그럴듯한 사기를 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을 홀려낼수 있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영화속 스티븐-짐캐리의 캐릭터를 보면, 유수한 언변+사람 좋은 인상+잡지식 많음+탁월한 잔머리로 점철되어있는데,
아마 이미 어딘가에서 뒷통수 한번 까여보지 않고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이라면 의례 그렇듯 그런 사람의 말이 진실이려니-믿게 될수도 있겠다 싶다.

두 배우 짐 캐리와 이완맥그리거의 연기도 훌륭했다.
사랑에 빠져 사랑에 올인하는 로맨틱한 탈옥수 짐캐리는 의례 그렇듯이 말많고 유머스러운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옛날의 짐캐리처럼 마냥 가볍지만은 않더라. (아마도 몸개그에서 벗어나 말개그를 시작하면서 부터 짐캐리가 조금씩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기꾼인데도 마냥 미워할수만은 없는 것은 그의 사기들이 모두 사랑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었고,(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탄탄한 삶을 버리고 위태로운 범죄자의 삶을 택했는데도 한번도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참 싫다. 어찌됐든 자신이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지고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된 인간 아닌가?)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필립 모리스는 게이계의 현모양처쯤 되려나. (아니면 게이계의 청순섹시?????)
어찌나 조신하고 수줍음이 많고, 심약하던지 이완 맥그리거가 이렇게 귀여운지 난생 처음 알았다. 너무 귀여워서 보다가 기절할뻔...!!!!!!!!!!!
얼마전 원작 소설도 출간되었는데, 소설도 보고싶다.
아 오랜만에 쌍큼한 느낌!!! 이렇게 유쾌한 영화는 또 정말 오랜만인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을까-하는 의구심으로 가면 기분이 살짝 멜랑콜리해지긴 한다. (물론 이런 약간 더러운 뒷끝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누가뭐래도 올해 최고로 유쾌한 영화.
게이만 나오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유쾌함과 사랑스러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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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10-07-1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봐야겠군요. 저도 예고편 보고 끌렸는데 어쩐지 직접 보는 걸로 연결이 안 되고 있었거든요.^^

Apple 2010-07-12 22:40   좋아요 0 | URL
꼭 보세요.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여워요.ㅠ ㅠ ㅠ ㅠ ㅠ ㅠ
 
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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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려고 벼르고 있던 <500일의 썸머>를 이제서야 보았다. (내 생전 그럴 일은 별로 생기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요즘 너무너무 바쁜 관계로....)
어느날, 회사에서 만난 썸머라는 여자에게 한눈에 반하고 그녀의 취향이 맘에 들기 시작하고, 그녀의 사소한 버릇들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남자는 썸머와 사랑에 빠진다. 남들 다 하는 만큼 연애하고 그리고 헤어지고, 이별후에 망가지고, 다시 일어서고.... 이 영화는 너무나 평범해서 다시 얘기하면 구차해지는 그런 모든 연애를 보여준다.
따라서 무척 심심할 수 있다. 간간히 코믹한 장면들이 나오긴 하지만, 전체의 줄거리가 딱히 별거 없기 때문에 나도 보면서 나쁘진 않지만 밍숭맹숭하다고 생각하면서 보았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헤어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중, 느닷없이 이 영화가 좋아져버렸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그녀 썸머. 그러나 운명을 믿지 않는다던 썸머.
매몰차게 떠나가고 쿨하게 친구로 남자며 염장을 질러놓는 얄미운 그녀 썸머.
썸머를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여겼었던 남자주인공을 운명따위 믿지 않는 시니컬한 남자로 만든 그녀 썸머가
운명이 있다고 말한다.
어느 날 커피를 마시던 중 갑자기 운명이 찾아왔다고- 그렇게 말한다.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치는 남자에게 매정하게 네 말이 맞았다고, 운명은 있었다고 말한다.

이 장면이 왜 그렇게 씁쓸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누구나 누구가를 사귀면서 겪어봤던 감정의 무게에 관한 이야기여서 공감이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과 네 마음의 무게가 다르고,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엇갈리는 건 너무 당연해서 쓰라리지 않은가...
아무리 사랑해도, 결코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은 참 서글프지 않은가.
그렇게 서글프고 쓰라린 사실을 자꾸만 확인하려고 하는 것 또한 바보같지 않은가.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죽어있지 않은 것이리라.

계절처럼 사랑이 왔다가는 것처럼, 남자가 만나는 여자들의 이름이 계절에 빗대어 진 것도 마음에 들었고, 씁쓸하게 끝나는 마지막도 마음에 들었던 영화. 현실적이라면 아주 현실적일 수 있겠다.
두근거리고, 사랑스럽고, 지겹고, 징글맞게 절망적이고, 배신감넘치고 씁쓸해지는 500일이 지난 후에, 새로운 1일이 찾아온다.
살아잇는 모든 것이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듯이.

p.s 마성의 주이 드샤넬. 딱히 미인형이라기보다는 헐리우드배우로써는 독특한 스타일의 배우인데, 아주 예쁘지는 않은데 영화에서 볼 때마다 참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내가 남자라면 이런 여자를 좋아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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