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에도가와 란포의 미발표작처럼 등장한 <백골귀>라는 소설은,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경험담처럼 시작한다. 자신의 작가활동에 염증과 자괴감을 느낀 에도가와 란포는 가명으로 한 여관에 머물며 자살할 기회를 노리다가 자살의 순간, 자신을 구해준 다다시라는 소년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곧, 여관을 떠도는 기이한 소문의 주인공이 그 다다시라는 소년이라는 것도 알게된다.
월애병(月愛病). 달을 그리워하는 병에 걸렸다던 그 소년은 다소 추한 몰골로 허옇게 분을 칠하고 여자 기모노를 입고 밤마다 달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년은 자살해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그리고 얼마후 그 시체마저 사라져 이 자살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런 내용을 담은 <백골귀>라는 소설이 연재되고, 추리소설가인 호소미는 이 작자미상의 소설을 읽고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지은 미발표작인지, 그런 척 하며 나타난 소설인지 알수 없는데, 이 소설을 지었다던 청년을 출판사를 통해 소개받게 된다.

액자구성으로 들어가있는 소설 <백골귀>와 함께 이 소설의 근원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시체를 사는 남자>는 우타노 쇼고의 다른 소설보다 반전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가지 이야기의 접점이 기묘하게 겹치는 부분의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다.
물론 아주 충격적이거나, 아주 새롭다고 말할수는 없지만, 다분이 에도가와 란포스러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소설에서 발견하고 읽는 재미도 꽤 근사하고 말이다. 변태, 복장도착, 동성애에 관한 관심, 기괴한 것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미적 취향, 후일담으로 밝혀지는 이야기 등등, 읽다보면 란포적인 소설의 경향을 느낄수 있는 느낌들을 많이 느낄수 있어서 그런 점도 참 재밌는데, 막상 <백골귀>소설에서 대놓고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딱 한번 뿐이라는 점도 독특한 점이다. 성격이라던가, 어딘가 어눌하고 쭈뼛쭈뼛한 문체, 그간 지었던 소설들 -인간의자,  외딴 섬 악마, 지붕밑의 산책자, D언덕의 살인사건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삽입함으로써, 말하지 않아도 그가 에도가와 란포라는 사실을 짐작케 만든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야기가 반전되는 그 자체라면야, 이 소설은 어쩌면 실패작인지도 모른다.
다소 케케묵은, 약간은 촌스러운 구성을 취하며, 일본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략 눈치챌만한 이야기들도 많고.
그렇지만, 이야기의 완결성, 접점을 잇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괜찮아서 단 시간내에 즐겁게 읽었다.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것도 어쩐지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고....

에드거 엘런 포의 이름을 기묘하게 바꿔놓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풍은 확실히 에드거 엘런 포와 상당히 다르다.
(에도가와 란포가 에드거 엘런 포를 좋아하고 동경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쓴 건지, 일본의 에드거 엘런 포같은 작가가 되고싶은 마음으로 이런 이름을 쓴 것인지 나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전자의 이유이지 않았을까 싶다.)
기괴하고 악마적이며, 악몽같은 에드거 엘런 포의 작풍과는 다르게, 에도가와 란포의 작풍은 훨씬 아기자기하고, 어딘가 야한 악몽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 에도가와 란포 소설을 읽었을 적에 느꼈던 느낌이 그랬는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런 느낌이 느껴졌다.
기괴한 것이나 더러운 것, 뚜렷이 마주할수 없는 어떤 존재가 아름다움이나 색으로 이어지는- 그런 묘사들이 항상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드거 엘런 포는 굉장히 좋아하고, 에도가와 란포는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하는데, 에도가와 란포식의 대부분은 기괴하지만, 약간은 가볍고, 약간은 색스러운 느낌이 지금의 일본 추리소설에서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일본식의 미적취향과 감성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것이 대표적으로 에도가와 란포라는 작가에게서 표출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에도가와 란포를 일본 추리소설계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다.

그나저나 제목의 <시체를 사는 남자>의 의미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역자후기에 역자가 제목을 추리해놓은 것을 읽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알수 없다는 느낌만 남았다. 무슨 뜻이었을까.
어쩌면 제목자체에 트릭이 있다는 것보다는, 시체를 사는 남자의 시체가 죽어서 풍화되어버린 과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남몰래 끼워맞춰 보았지만,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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