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서의 우리 中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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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 <철서의 우리>를 이제서야 다 읽었다.
간간히, 교고쿠 나츠히코의 다른 책들 (교고쿠도 시리즈 외전이라고 할수 있는 백기도연대 시리즈라던가 항설백물어)같은 책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교고쿠 나츠히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가장 기대되는 것은 역시 교고쿠도 시리즈이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한 음양사가 초연히 나타날 때면 뭔지 모를 희열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뿐만이 아니리라.
오랜만에 그 냉정한 음양사를 만났다.
이번에는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에서-.

갑자기 고서적이 발견되었다는 말에 교고쿠도는 아내와 세키구치 내외를 대동하고 하코네로 떠난다.
그리고 하코네 산속에 깊이 묻혀 알려지지 않은 절 명혜사에 취재를 온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그녀의 동료 도리구치는 별안간 승려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좌선하는 자세로 굳은 채 죽어있는 스님.
경찰이 등장하고, 너무나 단순무식하게 이 살인사건을 목격한 모든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한편, 어딘지 비밀스러운 명혜사의 스님들이 하나둘씩 기묘한 모습으로 살해당한다.
늘 그렇듯 어쩌다보면 사건에 휘말려 있는 세키구치와는 다르게, 교고쿠도는 깊이 들어서지 말라는 차가운 말만 남기고 자신의 일을 하러 사라져버리고, 그야말로 이상한 탐정 에노키즈까지 호출당해 사건은 알수 없는 모습으로 증폭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 <철서의 우리>에서 장광설을 하는 것은 교고쿠도 뿐만이 아니다. 명혜사의 스님들, 각기 다른 종파를 가진 스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얘기해서 장광설은 다른 책들에 비해 더 증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주인공들의 장광설과 이번 시리즈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 말을 흐릿하게 흐려버리는 사람들의 답답한 말투와,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는 알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에 나가 떨어질랑 말랑 할때에, 비로소 교고쿠도의 해설을 들을수가 있다! 이 비싼 남자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어서인지, 교고쿠도의 해설에서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아, 교고쿠도 시리즈가 이렇게 축축하고 불쾌한 소설이었던가?
맞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원래 그랬다.
후에 밝혀지는 이야기들을 이 리뷰에서 다 읊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참으로 불쾌한 사건의 연속이다.
아니, 뭐랄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참 불쾌할정도로 나른하고도 기묘한 사건이다.
이게 현실적인 이야기와 결국은 이어져 있다는 것 또한 무척 기묘하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일본사람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어김없이 든다.
결벽증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그 이면에는, 뭐라 말할수 없는 야성, 또는 짐승의 본능같은 것이 섞여있다.
가장 불쾌한 것은 그것이다.
이성적인 척 하면서, 한순간에 짐승으로 돌변하는 것.
이 소설이 주었던 가장 불쾌한 느낌은 거기서 오는 것인데, 이전 시리즈들에서 주구장창 나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데, 아마도 죄책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이 매우 희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떄문에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에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은 결국 여자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그리고 한 여자의 인생을 남자에게 순종하다 망쳐버린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나, 막상 그 장본인은 그닥 큰 죄책감까지는 없다는 사실, 더 기가 막히게도 그런 여자를 또다른 여자가 질투하고 힐책한다는 사실이 여자로써는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다.
이건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참 기묘한 감성이 아닐까 싶다.
스님들이 주구장창 등장해 한자를 읊어대고, 낭비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움직이고 자시고 해도, 결국 인간은 거기서 거기.
우리를 벗어날수 없는 쥐의 꼴을 하고, 그들은 그 긴긴 시간동안 각자 무엇을 품고 있었을까.
고인 물은 썩는다더니, 그 말이 딱 알맞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뭐에 씌인 것 뿐이다. 그 "씌인 것"은 언제나 욕망과 집착으로 귀결되게 되어있다.
집착의 정서에서 멀어져야할 스님들이 가지고 있던 욕망들은 인간이라 추했고, 인간이라 인간답기도 했다.

비교를 안할래야 안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우부메의 여름>이나 <망량의 상자>가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했던 <광골의 꿈>만큼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 이전작에 비해서 박력이 조금 약해진 것도 사실이고, 이야기의 유기성도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을 받기는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반가운 시리즈이고, 여전히 재밌었다.
가끔 교고쿠도 시리즈의 장광설을 읽다보면 고문당하는 기분이 들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또 스님들이 그렇게 장광설을 늘어놔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한시간 무릎꿇고 벌서다가 선생님이 이제 일어나라고 했을 때 느껴지는 감사함이나 구원같은 느낌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응? 나 교고쿠도에게 조련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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