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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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빠지는 꿈은 좋지 않은 꿈이라던데, 나는 종종 그런 꿈을 꾼다.
이빨이 썩다못해 빠지는 꿈,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이 하나가 없는 꿈, 이가 썩어 고통에 시달리는 꿈,
치과 의자에 누워 덜덜 떠는 꿈.
그런 꿈을 꾸고 깨어나면 멀쩡하던 이도 아픈 것처럼, 입안에서 녹슨 쇠맛이 느껴지곤 한다.
어릴적 부터 유난히 이가 잘 상하는 내 경우에서는
이가 빠지는 꿈은 좋지 않은 꿈이라는 해몽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공포심이 투영된 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꿈이 생각났다.
 
김종일의 공포소설 "몸"은 원한에 사뭍힌 귀신이 복수하는 동양적인 공포소설과는 많은 차이점을 지니면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승부보고 있는 소설이다.
엽기적인 몸의 변형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토 준지의 엽기공포 콜렉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점이 오히려 굉장한 신선함이 되었다.
 
어느날,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김종일이라는 남자(작가와 이름이 같다)가 전해주고간 "몸"이라는 소설.
작렬하다시시피 하는 피와 음습한 악취로 가득찬 소설을 만난 영화감독은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더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게 된다.
한쪽눈을 잃어버린 남자가 눈에 지배당하게 되는 "눈"을 시작으로,
다이어트에 관한 섬뜩한, 그러나 박진감마저 넘쳐버리는 "입",
극단의 외모를 가진 두 소녀의 이야기 "얼굴", 사고로 귀신을 들을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된 이야기 "귀"
머리카락의 복수 "머리카락", 결벽증인 여자가 산으로 가득찬 체액을 가지게 되는 "구토",
인터넷에 빠져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되돌아보며 섬?해지는 "몸",
하얗고 아름다운 손에 얽힌 피빛 과거 "손",
가도가도 같은 길을 계속 걸을수 밖에 없는 이야기 "링반데룽".
이 소설 "몸"은 온통 "몸"에 대한 공포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개인적인 공포심으로, 상처로, 오랫동안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트라우마로
패티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한가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광기로 물들어간다.
 
누구에게나 컴플렉스라던가, 트라우마는 있다.
그것이 자신의 신체 어느 부분에 속해있다면, 누구나 저런 끔찍한 상상은 해보지 않았을까.
김종일의 "몸"은 "한"에 얽혀 조금은 식상해져버린 동양의 공포를 재현하지 않는다.
현대인이 짊어지고 가는 자기폐쇄적인 습성에 기대어 자신도 타인도 그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섬뜩하면서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무척 인상깊었다.
이렇게 일그러져 버린 그로테스크함에서 카타르시스마저 느낀다면
이상한 이야기일까.
 
그러나 단점은 있다.
똑같은 서술의 반복- 모든 에피소드 초반부는 회상으로 시작되는 것이나,
과거 경험에 기대어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때의 그 섬?함과 다르지 않다"라는 식의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처음에는 다채로워보이던 그런 서술이 소설을 반쯤 지나고 나면,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책속의 책 "몸"을 만들어놓은 점 역시 후반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오히려 영화감독과 소설가 자신을 대치해놓은 듯한 공포소설가 "김종일"의 이야기는
안넣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경험을 쌓다보면, 이런 테크닉 부족의 단점은 점점 나아질 것이고,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속도감있게 치고나가는 점, 기발한 아이디어가
이런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는 생각이 드니,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소설속에서 김종일의 다음 작품 "손톱"의 그림자를 은근슬쩍 들이밀어보는 센스도 갖추고 있고,
작가가 여러모로 계획이 꽉차있는 의욕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공포감으로 물들여가는 "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자라 그런지, 얼굴의 변형보다 두 여자의 대결구도에서 리얼함을 느꼈던 "얼굴"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링반데룽", 왠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던 "몸"도
무척 마음에 드는 단편이었다.
무척 독특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고, 앞으로 나올 "손톱"도 기대해보고싶다.
오랜만에 놀라운 국내작가를 발견하게 되어서 반갑다.
 
잠도 오지 않는 여름밤, 독특한 공포소설 하나로 여름밤의 지루함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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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의 새책 "아임소리 마마".
가식과 가면을 벗어던진 기리노 나쓰오의 여자들은, 치열하고 역겨우면서도
솔직하기 때문에 "여성 하드보일드"라는 말이 정말로 잘 어울린다.
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서,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가고 또다른 괴물을 낳는
기리노 나쓰오의 또다른 여성 보고록 "아임 소리 마마".
 
주인공 아이코는, 예쁘지도 잘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여자.
창녀촌에서 부모도 없는 채로 태어나 온갖 구박과 멸시를 받고 자라나,
아이의 탈을 쓴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코는 어디를 가나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다.
아이코에게 있어서 사람은 이용가치에 따라 판단되는 도구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절도, 방화를 서슴없이 헤치우고,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모멸감을 주었던 인간이나 이용가치가 떨어진 인간을 여러번 죽이기도 했다.
글자를 아예 쓰지 않으면, 공책의 내용을 지우개로 지우지 않아도 된다.
아이코의 인생은 그렇게 점철된다.
누구도 자기인생에 들여보내지 않고, 필요한 것을 얻어내고 도망가면 그걸로 끝이다.
그녀에게는 빼곡히 써내려간 공책의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써내려갈 만한 참을성도 없고,
다 차면 다른 공책으로 바꿀 여유도 없다.
영원히 어딘가에 소속될수 없는 사람. 방랑자.

 
이 아이코라는 여자의 이야기에서 느낄수 있는 것은,
단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채 살았고, 언제나 천덕꾸러기였기 때문에
주위를 파괴해버리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아이코가 아이러니 하게도
이용가치에 따라 사람을 고르는 매력적인 "팜므파탈"에 가까운 여자가 아니라,
남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의존적인 여자라는 점이다.
 
필요한 인간이다 싶으면 달라붙는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없애버린다.
그리고 또다른 인간을 찾아나선다.
어디서 많이 본 패턴 아닌가. 그렇다, 아이코는 기생충같은 여자이다.
이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독립적인 여자는 없다는 것처럼,
바람불면 날아갈 것같은 여자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버려진 개처럼 게걸스럽게 자라온 이런 괴물같은 여자도, 결국은 타인에게 의지해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이 시대에 여자들의 의존성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코는 악에서 태어나 악하게 자라났지만, 결국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아이에 불과하다.
마흔살이 넘었음에도 세살짜리 아이에게조차 질투를 느끼고,
"네 행복을 깨어주리라" 음흉한 마음을 품는 아이코의 모습은
남이 가진 것은 더 커보이고 뺏지 못해 안달인 어린아이와도 같다.
언제나 버려지고, 멸시당하는 아이코가 사회에서 배운 것은 타인을 향한 악의와 비열한 자기방어뿐.
책을 덮으며 처음으로 기리노 나쓰오의 히로인을 동정하게 되었던 것은,
그녀의 악은 인정할수 없지만, 그녀가 살아온 인생은 불쌍하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악하게 태어날수 밖에 없는 태생의 비밀보다도,
그녀가 만나온, 하나같이 몰인정한 사람들과 이기심에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이 사회가
그녀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형식이나 분위기를 따져서는 "그로테스크"와 가장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이야기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더럽고 냉혹하며 비열한 짐승의 냄새를 풍겨왔지만,
그들은 진실을 알게되어 후회하는 한이 있어도 "반성"이라던가 "회개"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임 소리 마마"의 주인공 아이코는 반성을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자기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잘못을 인정한다.
이 점은 다른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과의 커다란 차별성을 지니는 점이다.
속으로 끓어오르는 용암같은 분노를 잠재우는 용서와 회개.
공감은 가도, 용납은 할수 없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히로인들과 크게 다른 이유는
아이코는 잘못을 알고 반성을 하는, 적어도 "인간이 되고싶은" 괴물은 된다는 것이다.
 
 
다른 기리노 나쓰오의 책보다 훨씬 미니멀하게 나온 책이라 그런지,
속 알맹이 역시 너무 미니멀해져버린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쉽다.
기리노 나쓰오의 특기중 하나인 잔혹하기 그지없는 여성이상심리의 해체가 다소 약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역시, 다른 기리노 나츠오의 책처럼 보고나서는 밤새 기분이 찝찝해진다.
"섹스를 하는 어린아이를 그리고 싶었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발상 자체가 무척 끔찍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나올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안보스 문도스"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2004년에 써낸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책 "잔혹기"가 우리나라에서 나올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책 역시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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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실은, 잠이오지 않아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읽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겠지..하는 희망으로 책을 펴들었는데,
책이 도무지 잠이 들 게 만들지 않아서 그후로 두시간을 읽고 억지로 잠을 잤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밥먹는 것도 잊고 불이나케 다시 책을 펴들었다.
하루종일 나를 설레이게 만든 무시무시하게 재밌는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리쿠. 삼월은 붉은 구렁을.
어쩐지 기묘한 느낌이 들게하는 작가의 이름에 일단 끌리고,
책 제목은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스테리하다.(아직까지 무슨 뜻인지 모른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단 200부만 자비출판으로 찍어서 그나마도 반이상 회수해가 버린
전설의 책이다.
 "걸작"은 아니지만, 묘하게 마음에 오래 남아
독서광들사이에서 전설로 남아 호기심을 부축이는 책이란다.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속의 전설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역시 4부작으로 되어있는 책이다.
책속의 네가지 에피소드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관한 각기 다른 단편이면서,
또 하나로 이어져있는 이야기들이다.

첫 번째 이야기 "기다리는 사람들"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에 취미가 독서인 정말로 평범한 남자가 그 취미덕에 회장의 집에서
집 어딘가 숨겨져있는 "삼월"을 찾는 네 노인과 2박 3일을 보내게 된다.
20개나 되는 서재에서 책 하나를 찾기란 모래속에서 바늘찾기.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차에는 역시 과자가 있어야한다며, 슈퍼에서 사온 싸구려 과자를 맛있게 먹는가 하면,
얘기가 한번 시작되면 도무지 끊길 생각도 않고 삼천포로 빠지는 유쾌하며 황당한 네 노인들.
원래 집주인이 "나도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라며,  책 "삼월" 이 있는 장소에 대한 힌트만 남기고 죽어 버린다.
과연, 네 노인과 한 젊은이는 집안에 숨겨진 "삼월"을 찾을 수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 "이즈모 야상곡"에서는
두 편집자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쓴 작가를 찾아나선다.
이즈모로 가는 기차를 타고 먹고 마시며 밤새 "삼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를 찾는 여정을 그린다.

세 번째 이야기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에서는
쌩뚱맞게 두 소녀의 죽음의 이유를 쫓는다.

네 번째 이야기 "회전 목마"에서야 우리는 이 책의 정체를 알 수가 있다.

이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는 전설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어디선가 보고 들었던 전설의 책으로,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삼월..."에는 "삼월..."이 들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이 책을 덮는 순간 느끼게 될 것이다.
"아, 내가 읽은게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었구나!!!"라고.

온다리쿠의 작가로써의 가치관은 참 독특하다.
무슨 얘기인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던 "회전목마"에 가서야 그녀가 왜 이런 책을 썼는지 알게된다.
모든 책의 이야기는, 작가에게 종속되어있지 않다.
이야기는 이야기나름대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흘러나간다.
온다리쿠가 마치 작가후기라도 쓰는 듯이 시작되는 "회전 목마"에서는,
소설 취재차 여행을 떠난 "이즈모"에서 서성이는 온다리쿠를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것처럼 써내려가며,
액자속의 또 액자소설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사실 이거 소설아냐?"하고 의심을 품기도 한다.
작가는 책을 써내려 가고, 책을 써내려 가는 작가의 인생 역시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 역시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를 낳는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엄청 궁금한 전설속의 책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이책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것이다.
집안 어딘가에 존재하는 책을 찾는 네 노인들의 이야기 역시 찾고 있는 소설과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이고,
작가를 찾아 떠나며 끝없이 이야기를 하는 두 편집자의 여정 역시 또다른 하나의 이야기이고,
"이렇게 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세 번째 에피소드의 두 소녀의 죽음 역시
또다른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 엄청난,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를 온다리쿠는 등장하지도 않는 소설의 제목을 등장시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라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따뜻함을 느꼈다.
언젠가 내게 있었던 가슴 뛰는 순간을 떠올리며,
그 순간속의 환상을 찾아서 내가 세월을 뛰어넘어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그 아련함은 결코 슬픔이 아니다. 몽환적이며 따뜻하고 몽글몽글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미스테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가사 크리스티를 밤새워 읽고, 코난 도일에 푹 빠져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속의 주인공 얘기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 심란함에 잠 못든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속의 독서광들의 이야기를 단지 훔쳐보는 것이아니라
나와 내 어린시절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인상을 받았으리라.
밤을 세워 누군가와 정말로 좋아했던 책 이야기를 나누며
두근거리게 즐겁고도 아련한 시간을 보내는 듯한 노스텔지아를 자아내는 책이다.
하루동안 이 책은 내게 쉴세 없이 말을 걸어오는 다정한 친구였다.
이 책은 정말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같다.

온다리쿠의 책은 처음인데, 무척 마음에 든다.
나른하고 두근거리는 향수. 아, 정말 너무너무 멋지구나.
그러나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몽환적인 느낌이 섞인 미스테리는 무척 잘쓰는 듯 싶은데,
본격적으로 미스테리에 오면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로 오면, 두 소녀의 죽음을 파해치며 결론을 이르는 데에서는
설득력이 무척 떨어져서, 개인적으로는 제 3장이 가장 재미없었다.
(나른하고 귀여운 제 1장이 제일 재밌었다.)
하지만 전체가 마음에 들면 작은 티끌은 보이지 않는 법.

책을 쓰기 전에 혼자 책 예고편을 만들고 표지 그림도 그려보는 것을 즐긴다는 온다리쿠가 지은 이 책 자체가
어쩌면 앞으로 이어질 또다른 "3월..."의 예고편인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온다리쿠에 빠질 차례다. 밤의 피크닉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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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냥 - 하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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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일본을 침묵하게 만든 뉴스 하나.
아들이 부모가 자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의사인 아버지, 어머니 덕에 풍족하며 안정된 가정, 아들은 일류학교에 다니는
겉에서 보기엔 아무 문제 없는 모범생 집안이었다.
그러나 늘 1등만 하던 아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수재들만 있는 학교에서
부모의 기대에 못이기자, 아들이 급기야는 부모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 뉴스를 보지 않고, 이 소설을 보았더라면,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들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를 어쩌면 조금 오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현실이다.
침묵하는 가정속에서 모두 제살을 찢어놓으며 사는 현대의 불안정하고 섬뜩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여느 공포소설보다 끔찍하게 무서웠으며, 두들겨 맞는 것 처럼 아팠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봤지만,
훈육이든, 폭력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맞는 것은 당연히 굴욕적이다.
그렇다면 "체벌"로 인식되는 매를 드는 행위는 정당한가.
그 사랑 담뿍 담긴 매로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체벌"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말은 어떤가. 부모에게 전혀 맞지 않고 살았어도, 평생 "넌 안돼. 네 까짓게-"라는 말만 들어온 사람 역시
가정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것 아닌가.
책속의 모든 가정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폭력에 찌들어 병들어버렸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가정을 보는 것처럼 리얼하다.
 
어느 가정에서는 늘 1등만하고 살아온 학생이 일류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언제나 등수 끄트머리에 맴돌다가 급기야는 등교거부를 해버리고,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부모의 기대에 복수를 하듯, 부모에게 폭행을 가한다.
또 어느 가정에서는 자기 배로 나은 자식의 머리가 깨질 정도로 폭행을 가하는 아버지가 있다.
 
그 가정을 지켜주려는 경찰의 집도 나을 것은 전혀 없다.
아버지의 컴플렉스때문에 폭행을 당하며 자라나 경찰이 된 남자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거라며 다짐하면서, 엄하게 아들을 키운다.
남자는 울면 안돼. 남자는 어리광 부리는거 아니야. 라면서, 강하게 키운 아들은
대학입학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자살하고 만다.
그 아내는 아들의 죽음과 무관심한 남편 덕에 완전히 미친 상태에서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고,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고, 죽지 못해 안달인 아내를 두고도 일에만 미친 아버지를 증오하는 딸은
폭주족이 되어서 범죄를 일으키고 교도소까지 간다.
남의 가정을 지키는 경찰은, 자기 가정에 한없이 무관심하다.
썩어가는 줄 알면서도, 어떻게 되돌이켜야할지 몰라서 또다시 방관하는 주인공 마미하라를 보면서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또 어느 카운셀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한 폭력 때문에 평생 다리를 저는 신세가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어느 미술교사는 평생 가족을 갖는 것을 두려워 하며,
이도저도 아닌 우유부단하기 그지 없는 삶을 유지해나간다.

이 가정은 모두 극단적으로 비틀어지긴 했지만, 우리의 가정에서도 볼수 있는 형태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야 말로 잘사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진정 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이에게 부모의 기대는 트라우마까지 될수 있는 치명적인 부담이 되고 만다.
내 가족이 잘살려고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아이는 돈이나 던져줄뿐인 부모의 무관심에 치를 떤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처절하게 느꼈다.
너무도 귀해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은 부모의 지나친 애정에 몸서리를 치고,
내버려둬서 키운 자식은 부모의 무관심에 상처받는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게 제대로 키우는 것일까.
내가 아이를 갖는다는생각은 아직 해본적도 없지만,
이 소설을 보고 나니 내가 내 가정을 가지고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무서워질 정도였다.
 
모든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한가지도 없는 가정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문제를 언제나 은근슬쩍 흘겨버린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식은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우리는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는 당연히 사회에서도 적용되어 그것이 성격으로 굳어져버린다.
아이가 가정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가정은 붕괘되기 시작한다.
서로의 무관심으로, 서로의 지나친 기대로-
그렇다면, 앞으로의 가정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모두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가정이 아닌 곳에서 홀로 자라나는 형태가 되어버릴까.
앞으로의 모습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 과도기에 놓여있는 듯한 일본의 붕괘되어가는 가정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가정과 똑같은지...
앞으로의 우리의 가정도 살풍경한 불안정으로 물들여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텐도 아라타는 언제나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
"고독의 노랫소리"에서는 병적인 가족 유토피아가 등장하고,
"영원의 아이"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독의 노랫소리"와 "영원의 아이"의 중간쯤에 걸쳐있는 이 책 "가족사냥"에서는
잘해보려고 하면서도 서로가 어긋나 버리는 붕괘되어가는 가족을 이야기한다.
엽기적이기 그지 없는 부모 살인 사건속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공식적으로 묵과되어버리는 병든 가족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는 듯, 친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듯,
내 모습과 내 가정을 되돌이켜 보게되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전형적이긴 했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해볼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텐도 아라타의 초히트작 "영원의 아이"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당분간은 또 텐도 아라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요즘 일어난 교사 폭행 사건이라든지, 일본에서 일어난 부모살해사건이라든지,
그런 사건들과 맞물려 떠오르면서 읽는 내내 얼마나 무서워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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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7-0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이군요.
아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어떤 공포보다 무서운 그런 종류의 공포.

Apple 2006-07-0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왠지 현실이랑 연관지어서 생각되서 무섭다는...ㅠ ㅠ끔찍해요, 이런일...
 
그것 - 상 스티븐 킹 걸작선 7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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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일화 중 하나.
동네 언니를 따라서 가다가, 공터에 내버려진 반쯤 썩은 개를 발견하고 불이나케 집으로 도망쳤던 기억.
이것도 아주 오래된 일화 중 하나.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 아지트를 만들어놓았지만,
그후로도 종종, 악몽속에서 등장하는 그 산속의 아지트.
 
스티븐 킹의 "그것"은 오래된 유년시절의 음울했던 기억 몇가지를 떠오르게 했다.
상큼 발랄한 유년시절이 아닌, 내 기억속에 어쩐지 으스스하게 존재하는 이상한 기억의 순간들.
아주 충격적이지는 않아도, 기억에 남아 종종 이상한 기분에 빨려들어가게 하는 음울한 기억들.
어린 시절의 회고가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나뿐일까.
책 속의 아이들처럼, 외면당하거나 크게 상처받은 기억도 없는 어린시절이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좋은 기억보다 으스스한 기억이 많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간단히 말하자면, 악마 페이와이스와 싸우는 어린아이들, 혹은 성장한 아이들의 이야기.
그 안에는 어린 시절 저마다 놀림당하고 괴롭힘당할만한 결점이 있는 아이들이
똑같이 괴롭힘당하는 아이들을 만나 서로 의지하며 성장해가고 강해지는 모습이 담겨있고,
폐쇄적인 마을 "데리"에서 눌러붙어, 아이들을 잡아가는 페니와이스와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담겨있다.
말을 더듬는 아이, 엄마의 과잉보호로 나약하게 자라날수 밖에 없었던 아이,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는 아이, 쉴세 없이 떠드는 아이, 흑인아이, 유대인 아이-
책속의 차별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미국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종차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결점있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헨리"로 대변되는 폭력을 되물림 받은 아이의 모습도,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볼수 있는 형태의 인간이다.
 
왕따클럽 7명의 아이들은 평생 씻을수 없는 데리에서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딛고,
저마다 성공을 이룬 성인이 되고, 어느 순간- 데리가 또다시 도살장으로 변하는 순간,
다시 데리로 돌아와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수 있는 악마 페니와이스를 쫓는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학살극. <그것> 페니와이스 자체가 데리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모든 어른들이 변하고, 페니와이스를 위한 어린이 살육장이 되어버린다.
27년동안 저마다 뿔뿔히 흩어져 있던 7명의 왕따클럽 아이들은 중년이 된 지금,
다시 페니와이스와 끝장을 보기위해 하나둘 데리로 몰려든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무섭지 않다.
공포 소설가인데도 무섭지 않다면 좀 아쉬운 얘기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동양과 서양의 공포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것이다.
지하실 냄새가 날것처럼,  오래된 물비린내가 날 것같은 음울하고 섬뜩한 공포가 저변에 깔려있을 뿐이다.
거의 1800페이지의 대용량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같은 이야기도 재밌게 풀어낼수 있는 작가의 역량.
그것이 스티븐 킹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이렇게나 길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세밀한 묘사는 후반부로 가면 맥이 빠진다 싶을 정도로 지나치다 싶어서,
이런 묘사를 조금만 더 줄였다면 좀더 밀도 높은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내 개인적인 취향인지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의 현재의 이야기보다는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훨씬 재밌었는데,
아마도 약한 존재인 어린아이와 공포라는 두가지 코드가 접합되는 순간,
좀더 아슬아슬한 스릴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스티븐킹은 심리묘사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을 보면서 유일한 여주인공인 비벌리에게 전혀 동질감도, 매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소설에서도 많이 느꼈지만, 여성심리에는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
여자는 남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성적인 호감으로 남자를 대하지 않는다.
또한, 비벌리의 친구 페미니스트 "케이"의 경우도, 페미니스트라는 명칭과 걸맞는 모습은
아무것도 없는 매력 0%의 등장인물이었다.
페미니스트의 전형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자 할렘을 만들어놓고 살고, 모든 남자를 성의 노리게로 보는 페미니스트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있다해도 꼴불견이다. 그래서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여성 심리에 섬세했더라면, 여주인공인 비벌리도, 중요한 등장인물인 케이도
매력적인 여자들로 다가왔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든다.
 
참 재밌는 소설임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600페이지 정도만 분량을 줄였더라면, 이런 단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분량이 긴 소설인만큼, 후반부의 기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래도, 딱 여름에 읽기 좋은 재밌는 공포소설.
주인공들의 회고를 통해 어린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나 역시 공포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렸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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