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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평점 :
이가 빠지는 꿈은 좋지 않은 꿈이라던데, 나는 종종 그런 꿈을 꾼다.
이빨이 썩다못해 빠지는 꿈,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이 하나가 없는 꿈, 이가 썩어 고통에 시달리는 꿈,
치과 의자에 누워 덜덜 떠는 꿈.
그런 꿈을 꾸고 깨어나면 멀쩡하던 이도 아픈 것처럼, 입안에서 녹슨 쇠맛이 느껴지곤 한다.
어릴적 부터 유난히 이가 잘 상하는 내 경우에서는
이가 빠지는 꿈은 좋지 않은 꿈이라는 해몽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공포심이 투영된 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꿈이 생각났다.
김종일의 공포소설 "몸"은 원한에 사뭍힌 귀신이 복수하는 동양적인 공포소설과는 많은 차이점을 지니면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승부보고 있는 소설이다.
엽기적인 몸의 변형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토 준지의 엽기공포 콜렉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점이 오히려 굉장한 신선함이 되었다.
어느날,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김종일이라는 남자(작가와 이름이 같다)가 전해주고간 "몸"이라는 소설.
작렬하다시시피 하는 피와 음습한 악취로 가득찬 소설을 만난 영화감독은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더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게 된다.
한쪽눈을 잃어버린 남자가 눈에 지배당하게 되는 "눈"을 시작으로,
다이어트에 관한 섬뜩한, 그러나 박진감마저 넘쳐버리는 "입",
극단의 외모를 가진 두 소녀의 이야기 "얼굴", 사고로 귀신을 들을수 있는 귀를 가지게 된 이야기 "귀"
머리카락의 복수 "머리카락", 결벽증인 여자가 산으로 가득찬 체액을 가지게 되는 "구토",
인터넷에 빠져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되돌아보며 섬?해지는 "몸",
하얗고 아름다운 손에 얽힌 피빛 과거 "손",
가도가도 같은 길을 계속 걸을수 밖에 없는 이야기 "링반데룽".
이 소설 "몸"은 온통 "몸"에 대한 공포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개인적인 공포심으로, 상처로, 오랫동안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트라우마로
패티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한가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광기로 물들어간다.
누구에게나 컴플렉스라던가, 트라우마는 있다.
그것이 자신의 신체 어느 부분에 속해있다면, 누구나 저런 끔찍한 상상은 해보지 않았을까.
김종일의 "몸"은 "한"에 얽혀 조금은 식상해져버린 동양의 공포를 재현하지 않는다.
현대인이 짊어지고 가는 자기폐쇄적인 습성에 기대어 자신도 타인도 그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섬뜩하면서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무척 인상깊었다.
이렇게 일그러져 버린 그로테스크함에서 카타르시스마저 느낀다면
이상한 이야기일까.
그러나 단점은 있다.
똑같은 서술의 반복- 모든 에피소드 초반부는 회상으로 시작되는 것이나,
과거 경험에 기대어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때의 그 섬?함과 다르지 않다"라는 식의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처음에는 다채로워보이던 그런 서술이 소설을 반쯤 지나고 나면,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책속의 책 "몸"을 만들어놓은 점 역시 후반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오히려 영화감독과 소설가 자신을 대치해놓은 듯한 공포소설가 "김종일"의 이야기는
안넣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경험을 쌓다보면, 이런 테크닉 부족의 단점은 점점 나아질 것이고,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속도감있게 치고나가는 점, 기발한 아이디어가
이런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는 생각이 드니,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소설속에서 김종일의 다음 작품 "손톱"의 그림자를 은근슬쩍 들이밀어보는 센스도 갖추고 있고,
작가가 여러모로 계획이 꽉차있는 의욕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공포감으로 물들여가는 "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자라 그런지, 얼굴의 변형보다 두 여자의 대결구도에서 리얼함을 느꼈던 "얼굴"도 무척 마음에 들었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링반데룽", 왠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던 "몸"도
무척 마음에 드는 단편이었다.
무척 독특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고, 앞으로 나올 "손톱"도 기대해보고싶다.
오랜만에 놀라운 국내작가를 발견하게 되어서 반갑다.
잠도 오지 않는 여름밤, 독특한 공포소설 하나로 여름밤의 지루함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