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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 ㅣ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의 새책 "아임소리 마마".
가식과 가면을 벗어던진 기리노 나쓰오의 여자들은, 치열하고 역겨우면서도
솔직하기 때문에 "여성 하드보일드"라는 말이 정말로 잘 어울린다.
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에 던져져서,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가고 또다른 괴물을 낳는
기리노 나쓰오의 또다른 여성 보고록 "아임 소리 마마".
주인공 아이코는, 예쁘지도 잘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여자.
창녀촌에서 부모도 없는 채로 태어나 온갖 구박과 멸시를 받고 자라나,
아이의 탈을 쓴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코는 어디를 가나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다.
아이코에게 있어서 사람은 이용가치에 따라 판단되는 도구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절도, 방화를 서슴없이 헤치우고,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모멸감을 주었던 인간이나 이용가치가 떨어진 인간을 여러번 죽이기도 했다.
글자를 아예 쓰지 않으면, 공책의 내용을 지우개로 지우지 않아도 된다.
아이코의 인생은 그렇게 점철된다.
누구도 자기인생에 들여보내지 않고, 필요한 것을 얻어내고 도망가면 그걸로 끝이다.
그녀에게는 빼곡히 써내려간 공책의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써내려갈 만한 참을성도 없고,
다 차면 다른 공책으로 바꿀 여유도 없다.
영원히 어딘가에 소속될수 없는 사람. 방랑자.
이 아이코라는 여자의 이야기에서 느낄수 있는 것은,
단 한번도 사랑받지 못한채 살았고, 언제나 천덕꾸러기였기 때문에
주위를 파괴해버리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아이코가 아이러니 하게도
이용가치에 따라 사람을 고르는 매력적인 "팜므파탈"에 가까운 여자가 아니라,
남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의존적인 여자라는 점이다.
필요한 인간이다 싶으면 달라붙는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없애버린다.
그리고 또다른 인간을 찾아나선다.
어디서 많이 본 패턴 아닌가. 그렇다, 아이코는 기생충같은 여자이다.
이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독립적인 여자는 없다는 것처럼,
바람불면 날아갈 것같은 여자도 타인에게 의지하고,
버려진 개처럼 게걸스럽게 자라온 이런 괴물같은 여자도, 결국은 타인에게 의지해서 살아갈수 밖에 없는
이 시대에 여자들의 의존성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코는 악에서 태어나 악하게 자라났지만, 결국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아이에 불과하다.
마흔살이 넘었음에도 세살짜리 아이에게조차 질투를 느끼고,
"네 행복을 깨어주리라" 음흉한 마음을 품는 아이코의 모습은
남이 가진 것은 더 커보이고 뺏지 못해 안달인 어린아이와도 같다.
언제나 버려지고, 멸시당하는 아이코가 사회에서 배운 것은 타인을 향한 악의와 비열한 자기방어뿐.
책을 덮으며 처음으로 기리노 나쓰오의 히로인을 동정하게 되었던 것은,
그녀의 악은 인정할수 없지만, 그녀가 살아온 인생은 불쌍하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악하게 태어날수 밖에 없는 태생의 비밀보다도,
그녀가 만나온, 하나같이 몰인정한 사람들과 이기심에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이 사회가
그녀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형식이나 분위기를 따져서는 "그로테스크"와 가장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이야기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더럽고 냉혹하며 비열한 짐승의 냄새를 풍겨왔지만,
그들은 진실을 알게되어 후회하는 한이 있어도 "반성"이라던가 "회개"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임 소리 마마"의 주인공 아이코는 반성을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자기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잘못을 인정한다.
이 점은 다른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과의 커다란 차별성을 지니는 점이다.
속으로 끓어오르는 용암같은 분노를 잠재우는 용서와 회개.
공감은 가도, 용납은 할수 없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히로인들과 크게 다른 이유는
아이코는 잘못을 알고 반성을 하는, 적어도 "인간이 되고싶은" 괴물은 된다는 것이다.
다른 기리노 나쓰오의 책보다 훨씬 미니멀하게 나온 책이라 그런지,
속 알맹이 역시 너무 미니멀해져버린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쉽다.
기리노 나쓰오의 특기중 하나인 잔혹하기 그지없는 여성이상심리의 해체가 다소 약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역시, 다른 기리노 나츠오의 책처럼 보고나서는 밤새 기분이 찝찝해진다.
"섹스를 하는 어린아이를 그리고 싶었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발상 자체가 무척 끔찍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나올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안보스 문도스"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2004년에 써낸 기리노 나쓰오의 다른 책 "잔혹기"가 우리나라에서 나올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책 역시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