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족사냥 - 하
텐도 아라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일본을 침묵하게 만든 뉴스 하나.
아들이 부모가 자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의사인 아버지, 어머니 덕에 풍족하며 안정된 가정, 아들은 일류학교에 다니는
겉에서 보기엔 아무 문제 없는 모범생 집안이었다.
그러나 늘 1등만 하던 아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수재들만 있는 학교에서
부모의 기대에 못이기자, 아들이 급기야는 부모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 뉴스를 보지 않고, 이 소설을 보았더라면,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들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를 어쩌면 조금 오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현실이다.
침묵하는 가정속에서 모두 제살을 찢어놓으며 사는 현대의 불안정하고 섬뜩한 가정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여느 공포소설보다 끔찍하게 무서웠으며, 두들겨 맞는 것 처럼 아팠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랑일까.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봤지만,
훈육이든, 폭력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맞는 것은 당연히 굴욕적이다.
그렇다면 "체벌"로 인식되는 매를 드는 행위는 정당한가.
그 사랑 담뿍 담긴 매로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체벌"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말은 어떤가. 부모에게 전혀 맞지 않고 살았어도, 평생 "넌 안돼. 네 까짓게-"라는 말만 들어온 사람 역시
가정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것 아닌가.
책속의 모든 가정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폭력에 찌들어 병들어버렸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가정을 보는 것처럼 리얼하다.
어느 가정에서는 늘 1등만하고 살아온 학생이 일류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언제나 등수 끄트머리에 맴돌다가 급기야는 등교거부를 해버리고,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부모의 기대에 복수를 하듯, 부모에게 폭행을 가한다.
또 어느 가정에서는 자기 배로 나은 자식의 머리가 깨질 정도로 폭행을 가하는 아버지가 있다.
그 가정을 지켜주려는 경찰의 집도 나을 것은 전혀 없다.
아버지의 컴플렉스때문에 폭행을 당하며 자라나 경찰이 된 남자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을거라며 다짐하면서, 엄하게 아들을 키운다.
남자는 울면 안돼. 남자는 어리광 부리는거 아니야. 라면서, 강하게 키운 아들은
대학입학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자살하고 만다.
그 아내는 아들의 죽음과 무관심한 남편 덕에 완전히 미친 상태에서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고,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가고, 죽지 못해 안달인 아내를 두고도 일에만 미친 아버지를 증오하는 딸은
폭주족이 되어서 범죄를 일으키고 교도소까지 간다.
남의 가정을 지키는 경찰은, 자기 가정에 한없이 무관심하다.
썩어가는 줄 알면서도, 어떻게 되돌이켜야할지 몰라서 또다시 방관하는 주인공 마미하라를 보면서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또 어느 카운셀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한 폭력 때문에 평생 다리를 저는 신세가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어느 미술교사는 평생 가족을 갖는 것을 두려워 하며,
이도저도 아닌 우유부단하기 그지 없는 삶을 유지해나간다.
이 가정은 모두 극단적으로 비틀어지긴 했지만, 우리의 가정에서도 볼수 있는 형태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야 말로 잘사는 방법이라 생각했고, 진정 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이에게 부모의 기대는 트라우마까지 될수 있는 치명적인 부담이 되고 만다.
내 가족이 잘살려고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아이는 돈이나 던져줄뿐인 부모의 무관심에 치를 떤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처절하게 느꼈다.
너무도 귀해서,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은 부모의 지나친 애정에 몸서리를 치고,
내버려둬서 키운 자식은 부모의 무관심에 상처받는다.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게 제대로 키우는 것일까.
내가 아이를 갖는다는생각은 아직 해본적도 없지만,
이 소설을 보고 나니 내가 내 가정을 가지고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무서워질 정도였다.
모든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한가지도 없는 가정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문제를 언제나 은근슬쩍 흘겨버린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자식은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우리는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는 당연히 사회에서도 적용되어 그것이 성격으로 굳어져버린다.
아이가 가정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가정은 붕괘되기 시작한다.
서로의 무관심으로, 서로의 지나친 기대로-
그렇다면, 앞으로의 가정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모두 어딘가에서 태어나고, 가정이 아닌 곳에서 홀로 자라나는 형태가 되어버릴까.
앞으로의 모습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 과도기에 놓여있는 듯한 일본의 붕괘되어가는 가정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가정과 똑같은지...
앞으로의 우리의 가정도 살풍경한 불안정으로 물들여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텐도 아라타는 언제나 가족의 이야기를 한다.
"고독의 노랫소리"에서는 병적인 가족 유토피아가 등장하고,
"영원의 아이"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독의 노랫소리"와 "영원의 아이"의 중간쯤에 걸쳐있는 이 책 "가족사냥"에서는
잘해보려고 하면서도 서로가 어긋나 버리는 붕괘되어가는 가족을 이야기한다.
엽기적이기 그지 없는 부모 살인 사건속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공식적으로 묵과되어버리는 병든 가족의 모습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는 듯, 친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듯,
내 모습과 내 가정을 되돌이켜 보게되는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전형적이긴 했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해볼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텐도 아라타의 초히트작 "영원의 아이"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당분간은 또 텐도 아라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요즘 일어난 교사 폭행 사건이라든지, 일본에서 일어난 부모살해사건이라든지,
그런 사건들과 맞물려 떠오르면서 읽는 내내 얼마나 무서워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