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악몽을 꾼다.
기괴한 이미지들이 가득차고, 알수 없는 장소에서 불안감에 벌벌 떨며 헤메이고,
꿈속의 꿈을 또 꾸기도 하고, 꿈속에서 나는 다른 여자가 되어있기도 한다.
이런 악몽들을 해몽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런 악몽들은 그저 단지, 불안과 몽상과 스트레스의 발로가 아닐까.
교고쿠 나츠히코의 "광골의 꿈"에 등장하는 아케미 역시 악몽을 꾼다.
기이하고, 도무지 의미를 알수가 없고, 불안정하며,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나와 같은 악몽을.
하반신은 피로 물든채 아이를 안고 있는 우부메를 지나,
순간의 광기로 사람을 유혹하는 망량을 지나,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번에는 광골- 우물속의 해골 이야기로 도달한다.
소심한 우울증 환자 세키구치가 동료 작가 구보 코의 장례식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교고쿠도가 우편사고가 두려워 직접 원하던 고서적을 찾으러 가고 있을 때,
기바슈가 망량사건때 멋대로 행동한 것에 대한 죄를 받으며, 뭔가 터프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에노키즈가 여전히 탐정사무소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작은 해변마을 즈시에서는 아케미라는 여자가 적막한 해명속에 꿈을 꾸고 있다.
해변가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꿈. 친구와 달아난 전남편에 대한 꿈.
교살하여 목을 잘라버린 전남편의 기억들을 꿈도 생시도 아닌 도중에 괴롭게 되풀이하고 있다.
나의 기억인지, 다른 사람의 기억인지 도무지 알수 없는 비틀린 악몽의 세계를 되풀이 한다.
강가에 쓰러져있는 아케미를 구하고 남편이 된 소설가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아케미는 그런 백일몽을 꾸며 공포에 시달리고, 설상가상으로 목이 잘려죽었던 전남편이 살아돌아온다.
공포속에서 죽은 남편을 다시 한번 교살하고 목을 자르고,
그리고 몇일후에 두번죽인 남편은 또 돌아오고, 또다시 죽이고, 또다시 돌아오고....
아케미의 끔찍한 경험담은, 해안에 떠도는 금색 해골에 대한 소문과 맞물리고,
그 금색해골의 소문을 추적하고자 찾아간 기바앞에는 해골이 아닌 멀쩡한 인간의 머리가 발견된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사건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이어진 모자이크를 만드는 <우부메의 여름>과,
관련있으면서도 서로 관련되어있지 않은 사건들이 연속되는 <망량의 상자>와 다르게,
교고쿠도 시리즈 3편인 <광골의 꿈>의 사건들은 "확산되어 감으로써 윤곽이 명료해지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만큼 방대하고. 더더욱 어렵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간의 시리즈에 비해서 훨씬 산만하고, 지루하게 보았다.
교고쿠도 시리즈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할수 있을, 교고쿠도의 해설 부분에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 역사와 심지어는 종교의 역사까지 들먹이며 설명해야하는 부분에서
도저히 이해를 할수가 없어서 한없이 늘어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개인 용량 부족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에비해, 사건의 윤곽은 훨씬 단순한 편이라,
이 우물속의 해골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명쾌하게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장황한 설명에 비해 진실은 단순해서 약간 시시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독특한 점이라면,
<우부메의 여름>에서는 세키구치가, <망량의 상자>에서는 기바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데 비해,
<광골의 꿈>에서는 약 550페이지가 지나야 우리의 해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약 700페이지는 지나야 교고쿠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점이 책이 지루해지는데도 한몫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사건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던 교고쿠도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사건이 해결되어버리는 것도 다소 억지스럽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기분이 참 찝찝해져 버리는 소설이다.
돌고 돌며 물고 물며, 착각과 아집에 빠져 바보같은 일을 저질러버리는 <광골>속의 사람들도 찝찝하고,
엄청난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또 찝찝하다.
다소 실망적인 <광골의 꿈>이었지만, 다른 추리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교고쿠도만의 매력,
괴담이라는 미스테리한 소재와 명쾌하고 이성적인 해결을 가미한 독특한 구성덕에
아마도 이번에는 실망했을지 몰라도 다른 시리즈를 또다시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교고쿠도가 말하듯,
가끔은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알수 없는 사건들의 조각을 기워 맞추어 주었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