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미들
김도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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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고생이던 시절, 한 허풍쟁이 친구가 있었다.
도저히 믿을수 없을만큼 부풀려진 그 애의 거짓말을 믿는 아이들은 당연히 아무도 없어서
그애는 소위 말하던 "은따"였던 아이였다.
어떻게해서 그애와 어울리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나를 보고 자신과 같은 부류라 생각했던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애의 허풍을 들어주고 있었다.
비교적 눈치가 빠른 편이라, 그애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과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는
쉽게 알수 있었지만, 왜 그런 거짓말쟁이의 말을 내가 다 들어주고 있었을까 하고 곰곰히 되돌이켜보면,
솔직히 말해 나는 그애를 속으로 비웃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 뻥을 치나 두고보자.
언젠가 기회를 보다가 몇마디 말로 그 애의 환상을 깨어부수고 당혹함을 느끼게 하리라.
잔인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것 역시 악취미. 두고봤다가 언젠가는 뒷통수 치려는 악의에 가득찬 친절이었던 셈이다.
 
언젠가 한번쯤을 스치고 지나갔을 기이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언제인가는 내가 악의를 품었고, 언제인가는 상대방이 악의를 품었던,
감히 누구에게도 드러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마음속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감정들-
김도언의 <악취미들>은 그런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 마음속의 은밀한 욕망과 위악.
그리고 가끔은 살아가는 것이 사람을 망가뜨리고 자신이 쓰레기같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은 몹시 위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요절한 천재시인의 은밀한 변태적인 욕망을 다룬 <권태>
군대 시절에 이루어졌던 상사와의 동성애의 이야기, 사랑과 증오를 묶어버리는 
택시 운전을 하며 부부가 함께 매춘을 하는 <택시 드라이버>,
밤새 전화통을 붙잡고 모두를 괴롭게 만드는, 쓰레기같고 그러면서도 가련한 남자의 이야기 <고통의 관리>
열네살짜리 부잣집 삐뚤어진 도련님이 스물네살 짜리 식모여자에게 느끼는 욕망에 관한,
그리고 언젠가 터져버릴 듯한 긴장을 내제한 채 흘러나가는 <나쁜 교육>
한 때, 은밀히 누군가를 비웃었던 나를 떠올리게 해서 무척 부끄러워졌던 <너의 형에게 말해야겠다>
유사 수간, 근친상간에 대한 아주 위험한 이야기 <지붕 위의 날들>
찢어지고 망가지고 터져버린 것들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여자의 잔혹한 이야기 <잔혹>
오지랖이 너무 넓은, 그래서 기이하기까지한 여자의 이야기 <밤하늘은 호수다>
아들을 질투하는 아버지, 부정이 욕망을 이겨버리는 <톱스타 살인사건 전말기>까지,
"악취미들"에서 다루는 열가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삐뚤어지고, 내밀하며, 부끄럽다.
 
드러나있는 모습만 보았을 때는, 몹시 악의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변태적인 저런 행위들 역시
 "취미"중의 하나라 보고 "악취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왜 일까.
누가 누구를 처벌할수 없다는 듯이. 저런 행위를 "악행"이라 말하며 처단하고 욕할수 없다는 듯이.
아마도 누구에게나 그런 "악취미"는 하나쯤 있을 것이고,
책속의 주인공들처럼 누구나 잠재의식안의 악취미를 변호하려고 애쓰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이렇게 밖에 할수 없는 이유가 당연히 있다는 듯이 말이다.
꼭꼭 숨겨두었던 잠재의식을 들켜버린 듯이 책을 읽는 내내 당혹함과 부끄러움에 시달리면서 보면서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열가지 악취미에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름이 끼치고, 사람이 짜증스러워졌고, 그러면서도 입안이 쓴 것은 어쩔수 없었던 소설.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을 볼수 있다.
위악과 불안, 인간의 사악함과 나약함이 어울어진 우습고 잔인하고 씁쓸한 서커스.
책은 무척 재밌다. 잔인하지만, 무척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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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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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염불보다 잿밥이 먼저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이 책, "굽이치는 강가에서"가 그랬다.
 
그래서 네 소녀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열 일곱 여덟살의 소녀, 소년들이 모여서 와인을 마시고, 자리를 피하며 "아, 그럼 실례-"하고 말하며,
등 뒤에서 날개를 보았다는 둥의 비현실적인 로망으로 가득찬 대사를 보며,
"난 뭔가를 알고 있어"라고 무언으로 말하듯, "후후..."하고 웃는 "성숙하다"는 소녀들을 바라보며,
나는 정작 이야기보다는 오로지 감상으로만 가득찬 비현실적인 글을 보았다.
(얘네들은 9일동안 합숙하면서, 잘도 차려먹더라...
보통 그 나이 아이들은 음식을 해본 경험이 적기도 하고, 음식을 한다는 것자체를 귀찮게 여기지 않나.)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좋아했던 것은 노스텔지아의 환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보며 아무리 그래도 참 너무 공주병이구나...하는 비비꼬인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그런 사소한 가식, 화장실도 가지 않을 것 같은 미소녀들에 대한 환상이
나를 짜증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좋았다면, 그런 점도 그냥 넘어갔을 터이지만,
여류작가들의 박력있는 글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는 달라서
(이런 태도는 별로 좋지 않지만) 하나하나 걸고 넘어지며 코웃음치며 보았다.
 
구성이나, 이야기나 그닥 독특할 것도, 그렇다고해서 밝혀지는 사실이 충격적이거나 마음 아플 것도,
심리묘사가 잘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부분, 비밀스러워 보이는 부분만 부곽시키려 한 점,
가장 예뻐보이는 장면만 엄선해서 고른 듯한 느낌이 강해서,
마치 예쁜 소녀가 자신의 인생에게 불행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은밀히 즐기며
"나는 보통 사람들과 달라"하는 듯한 가소로운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등장인물 모두가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초미소녀인데 누구도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온다리쿠가 만든 이 미소녀들에게는 인간적인 면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지.
이 소설이 "소녀적"이라기보다는, "비밀스럽다"기보다는,
소년이 짝사랑하는 옆집 누나를 바라보는 듯한 로망만 가득차 보이는 것은 또 왜일지.
 

책을 읽는 내내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의 작가가 맞는가 의심하면서 보았다.
너무나 실망적인 소설.  아니, 그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내용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별점을 주자면 1점 정도 나올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온다리쿠를 믿어보기에 두개 정도는 줘야지.

p.s 왜 이 소설이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와 겹쳐보일까?
백합물의 그림자가 스물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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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1983 2006-11-0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쓴 분 본인이 오히려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를 너무 의식하면서 보신 듯 하네요..

Apple 2006-11-0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닌데요..^^;;;마리아님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werpoll 2006-11-2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동감이에요. 저는 추천입니다 ^^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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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한다.
런던의 안개낀 어느 밤, 멀리로 일하러 가는 아버지와 헤어지며 세라가 아버지에게 받은 인형을.
울새를 따라 담쟁이 덩굴에 숨겨진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는 메리를.
구빈원에서 제발 죽 좀 더 달라고 빌던 불쌍한 올리버 트위스트를.
복수를 위해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 히드클리프 씨를.
아름답지도 상냥하지도 못하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길을 개척해나갔던 제인에어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빅토리아풍 소설속의 인물들에게 완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천성이 우울하고 음침한 건지,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음침함과 우울함을 오히려 편하게 여기며 빠져들었다.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고아가 되는 아이들, 출생의 비밀, 깍듯한 예의로 포장된 냉소와 교활함,
어둡고 비정한 런던 거리, 너무 어두워 으스스하기까지한 외딴 저택,
폐쇄, 음모, 배신, 복수,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사랑.
집 어디선가에서는 미치거나 아픈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백지장처럼 창백한 숙녀들은 어디에서든 충격적인 비밀에 노출되어있기 때문에 잘도 쓰러지고,
무뚝뚝한 얼굴로 냉소를 내뱉는 신사들에게는 반드시 출생의 비밀이라도 하나 감춰져 있어야 폼이 난다.
나는 빅토리아풍의 음침함을 너무나 사랑한다.
너무나. 너무나.
 
이런 내가 이 소설을 싫어할 이유가 단 한가지라도 있을까?
내 오랜 로망을 건드리고, 완벽히 매혹시켜버린 소설인데 말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핑거스미스는 도둑(소매치기)라는 은어이고,
이 소설은 빅토리아풍 레즈비언 스릴러 소설이다.
 
 
대저택에 사는 공주가 하나 있다.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하얗고, 실처럼 가는 금발머리에, 다소 백치미를 풍기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연약한 공주이다.
그러나 공주는 고아라 삼촌의 손에 엄격하게 격리되어 커서 친구 하나 없고,
시골에서 사는 공주라 촌스럽고, 도시를 동경하며, 도시속의 자유를 동경하지만,
절대로 이 견고한 성에서 빠져나갈수 없다는 체념에 빠져있다.
음침하고 고루한 저택에 갖혀사는 갈망으로 가득차있고 외로운 이 공주는
시골 대저택에 격리된 채 사는 핑거스미스의 주인공 모드이다.
동화에서는 기사라든지, 왕자님이라든지 뭐라도 나와서 잘도 공주를 구해주건만,
이 공주에게 꼬이는 남자는 오로지 사기꾼 리처드 리버스뿐이다.
 
리처드 리버스, 별명은 젠틀맨.
착한 구석이라고는 단 한구석도 찾아볼수 없는 원조 악당.
교활하고 치밀하고, 게다가 머리도 좋은 악마.
미남에, 멋쟁이에, 예술적인 소질이 있고, 여자가 줄줄 따라서,
외로운 상속녀 하나 물어 어떻게 사기를 칠까 밖에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제비.
이 교활한 여우 젠틀맨이 결혼하자마자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을 모드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모드를 속이기 위해 미끼로 던져놓은 수.
교수형당한 살인자인 엄마를 마음속의 긍지로 품고사는 핑거스미스.
밝고 순박하고 잘 웃으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고,
어머니처럼 여기며 자라온 석스비 부인을 사랑하는 착하고 순진한 열일곱살의 아이.
젠틀맨은 모드를 꼬득여 결혼해 상속을 가로채려는 야심에 수를 끌어들여
수를 모드의 하녀로 배치시켜 놓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친해지다 친해지다 못해 모드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핑거스미스는 1부 마지막을 꽤 충격적인 반전으로 마무리하고 부터는
소설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며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재조명하며 보게되는 소설이다.
사소하게 지나쳤던 것 하나부터 작고 큰 반전들이 뒤이어 줄줄 따라오기 시작하는데,
어느 정도 비극 드라마에 심취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번째 반전 이후의 반전들은 예측하기 쉽다.
그러나 반전의 묘미는 그것이 어떤 내용이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포장되어 등장하느냐에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측을 했음에도, 마음이 덜컹덜컹 내려 앉는다.
여는 순간 멈출 수가 없는 소설이라, 만 하루동안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주말 약속도 깼다.)
피곤에 지쳐 눈이 벌게질 때까지 책을 읽어내려갔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방대한 분량, 너무 빨리 읽어 버릴까봐 아껴서읽고 싶어도,
한번 열면 멈출수가 없기에 계속 물고 늘어져서 끝장을 봐야 속이 시원해지는 소설이다.
 
세라 워터스는 빅토리아시대의 레즈비언의 성에 대해 연구하다가
이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시리즈를 쓰게되었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기준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피해자이고 가해자인 동시에, 교활하고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데도,
빨려들어갈 듯이 매력적이고, 생생하다.
순진한 수, 교활한 모드, 악마적인 젠틀맨 이외에도,
비정하나 애틋한 석스비부인, 멍청하지만 착해빠진 데인티, 멍청하고 무식한 존,
장물아비인 주제에 정도 많은 입스씨, 병적일정도로 결벽스러우면서 외설소설에 빠져있는 릴리씨.
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매력적이라, 보는 내내 그들을 좋아하면서도 미워했다.
 
모드와 수, 두 아가씨의의 로맨스 또한 애틋한 동시에 긴박감 넘치기 이를데 없어서
뭔가 이루어지려면 오해가 첩첩산중으로 쌓여 독자를 한시도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적제적소에 터지는 작고 큰 반전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성력,
누구의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사랑과 미움과 모성에 대한 갈망을 마음에 와닿게 드러내놓는 표현력.
까도 까도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빅토리아풍 소설에 매혹되어있었다고 하고,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위대한 유산>과 <제인에어>라고 한다.(어쩜 취향이 나랑 똑같으셔!)
그래서 이 소설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비정한 런던 거리와 <제인에어>의 음침한 저택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 소설들처럼, <핑거스미스> 역시 정말로 매력적이다.
책을 보면서 절대로 끊어 읽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조마조마하며 두근댔던 감정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올해 읽은 가장 재밌는 소설이 되어버렸다.
 
 
당신은 빅토리아풍의 음침함을 사랑하는가.
혹은 스릴러나 고딕풍 추리소설을 사랑하는가.
퀴어를 좋아하고, 음모와 비밀을 사랑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절대로 놓치 말기를 바란다.
무엇을 바라든, 그 이상의 것을 얻게 될테니.
 

p.s 1. 열린책들에서 세라 워터스의 소설을 앞으로도 계속 출간한단다. 야호!!!ㅠ ㅠ
티핑더 벨벳과 어피니티, 최근작인 나이트워치도 볼수 있게 생겼다!!! 좀 많이 기다려야하겠지만.........
좀 더 기다려서, 티핑더벨벳의 소설부터 보고싶으나, 참을성이 없어서 드라마부터 봐야하는 이 현실......
아아아악............ㅠ ㅠ
 
p.s 2. 젠틀맨을 보면서 게이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나뿐일까?
잠옷을 입고 누워있는 여자를 보고도, 심지어는 오늘 결혼한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돈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 심리는 무엇일까.......=_=
성에 대해 엄격했던 그 시절에 레즈비언을 보고도 별생각하지 않는 그 심리는 또 무엇......?
BBC 드라마판 "핑거스미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더욱 드는데,
순진한 찰스를 바라보며 던지던 그 시선, 나른한 몸짓, 다정한 말투.....
나만 그런 의혹이 들었나....
어쨌거나, 책속에서도 미남인 젠틀맨은 영화에서도 초미남이다.ㅠ ㅠ으윽....
 
p.s 3. 궁금한 것 하나. 시골에서 올라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수를 도와주었던
착하고 멍청하며 세상물정 모르는 찰스의 미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제일 불쌍하다.
뒷이야기가 언급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천대받고 있다.ㅠ ㅠ
 
p.s 4. 책을 보자마자 드라마판 핑거스미스를 봐서 그런지, 하나 하나 다른 점을 집어가며 보게되었다.
TV 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까지가 나올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놀라우며,
드라마도 꽤 잘 만들어진 것 같지만, 책이 주는 재미에 비해서 드라마판은 좀 많이 실망스럽다.
책 전반에 흐르는 긴박감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줄거리 요약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책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3부작으로는 디테일을 표현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좋아하는 대목의 대사가 다른 것도 불만의 요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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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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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로 앨리스가 빠지듯,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오즈로 빨려 들어가듯,
수많은 소설과 만화는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로 빠지는 설정을 갖고 있다.
현실의 무료함에 대한 일탈적인 공상일까.
다른 세계로 빠져들어간다는 설정은 아직도 즐겁게 인용되고 있다.
 
최근 한달간, 이데아의 동굴-13번째 마을-광골의 꿈으로 이어지는 다소 머리아픈 이야기에
살짝 지쳐있어서 가볍게 읽어보려고 펼쳐든 책인 바로 <야시>.
가벼운 두께만큼 가볍게 읽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다 읽고나서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에 빠져 우울해지는 건 왜 일까.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이 책은 공포소설이 아니다.
김빠지는 환타지나 우울한 동화처럼,
다 읽고 난 사람에게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와 공허함을 느끼게한다.
 
<야시>속의 두가지 단편, <바람의 도시>와 <야시>는 둘다 비슷한 설정, 다른 세계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야시>의 주인공 유지처럼, 뭔가를 사지 않고서는 빠져나올수 없는 '야시'에서
철없는 마음에 야구를 잘할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함께 있던 어린 동생을 팔아 버린다던가,
<바람의 도시>의 주인공처럼 죽은자들의 세계 '고도'에 함께 간 친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어버린다던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는 결국, 어딘가에 두고온, 나에게 소중했을지 모를 무엇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잃어버린 무언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엄마의 손을 놓아버리고 길을 잃은 아이에게 세상은 갑자기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엄마를 만날수 없다는 불안감에 울게 될 것이고, 엄마와 함께 있을 때는 친숙했던 이 세계가
갑자기 무서운 공포의 구렁텅이가 된다.
길을 잃고 어쩔줄 몰라하며 엄마를 찾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작가 쓰레카와 고타로가 <야시>를 짓게된 배경에는 그런 어린 시절 길 잃는 공포가 저변에 깔려있다.
이 책이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어딘지 생경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리워지는 이유는
누구나에게나 다 있을, 긿잃음에 대한 낯선 감정과 어린 시절 놓아버렸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소모전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버린다. 그것이 감정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사람의 판단력이라는 것이 정확하지 않듯이, 그때 그 나이에 맞춰지는 사고방식에 따라서
우리는 간혹 실수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리고 만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도 모르고,
시간이 흘러 후회하게 되거나, 또는 그런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바보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망각은 인간에게 있어서 훌륭한 선물임과 동시에, 참 바보같은 일이기도 하다.
시간은 정직하게도 흘러가고, 끝없이 소모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또다시 잊어버리고.....
시간을 되돌이킬수 없듯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수는 없다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씁쓸한 진리일까.
지난 밤의 꿈처럼 한때 소중했을 것들도 점점 가물가물해지며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책을 펼쳐들었던 나를 낯설고 안타까운 감정에 휩쌓이게한 이 책, 훌륭하다.
책을 덮고나니, 뭔가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슬프다.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미아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 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p124 <바람의 도시>中에서...
 
 
p.s 귀여워서 무척 마음에 들었으나 글씨가 너무 작아서 어디다가 쓸까 고민했던 미니북도
막상 읽어보니 글씨가 그다지 작지 않아서 읽을만하다.
출퇴근하거나 통학하는 사람들은 손에 쥐고 지하철에서 읽어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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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10-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네요. ^^

Apple 2006-10-2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의 말쌈...^^

로드무비 2006-10-2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이랑 함께 별 다섯 개를 주셨군요.^^

Apple 2006-10-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예상치못하게(?) 꽤 재밌었어요..^^
 
광골의 꿈 - 전2권 세트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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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몽을 꾼다.
기괴한 이미지들이 가득차고, 알수 없는 장소에서 불안감에 벌벌 떨며 헤메이고,
꿈속의 꿈을 또 꾸기도 하고, 꿈속에서 나는 다른 여자가 되어있기도 한다.
이런 악몽들을 해몽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런 악몽들은 그저 단지, 불안과 몽상과 스트레스의 발로가 아닐까.
교고쿠 나츠히코의 "광골의 꿈"에 등장하는 아케미 역시 악몽을 꾼다.
기이하고,  도무지 의미를 알수가 없고, 불안정하며,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나와 같은 악몽을.
 
하반신은 피로 물든채 아이를 안고 있는 우부메를 지나,
순간의 광기로 사람을 유혹하는 망량을 지나,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번에는 광골- 우물속의 해골 이야기로 도달한다.
소심한 우울증 환자 세키구치가 동료 작가 구보 šœ코의 장례식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교고쿠도가 우편사고가 두려워 직접 원하던 고서적을 찾으러 가고 있을 때,
기바슈가 망량사건때 멋대로 행동한 것에 대한 죄를 받으며, 뭔가 터프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에노키즈가 여전히 탐정사무소에서 빈둥거리고 있을 때-
 
작은 해변마을 즈시에서는 아케미라는 여자가 적막한 해명속에 꿈을 꾸고 있다.
해변가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꿈. 친구와 달아난 전남편에 대한 꿈.
교살하여 목을 잘라버린 전남편의 기억들을 꿈도 생시도 아닌 도중에 괴롭게 되풀이하고 있다.
나의 기억인지, 다른 사람의 기억인지 도무지 알수 없는 비틀린 악몽의 세계를 되풀이 한다.
강가에 쓰러져있는 아케미를 구하고 남편이 된 소설가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아케미는 그런 백일몽을 꾸며 공포에 시달리고, 설상가상으로 목이 잘려죽었던 전남편이 살아돌아온다.
공포속에서 죽은 남편을 다시 한번 교살하고 목을 자르고,
그리고 몇일후에 두번죽인 남편은 또 돌아오고, 또다시 죽이고, 또다시 돌아오고....
 
아케미의 끔찍한 경험담은, 해안에 떠도는 금색 해골에 대한 소문과 맞물리고,
그 금색해골의 소문을 추적하고자 찾아간 기바앞에는 해골이 아닌 멀쩡한 인간의 머리가 발견된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사건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이어진 모자이크를 만드는 <우부메의 여름>과,
관련있으면서도 서로 관련되어있지 않은 사건들이 연속되는 <망량의 상자>와 다르게,
교고쿠도 시리즈 3편인 <광골의 꿈>의 사건들은 "확산되어 감으로써 윤곽이 명료해지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만큼 방대하고. 더더욱 어렵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간의 시리즈에 비해서 훨씬 산만하고, 지루하게 보았다.
교고쿠도 시리즈의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할수 있을, 교고쿠도의 해설 부분에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 역사와 심지어는 종교의 역사까지 들먹이며 설명해야하는 부분에서
도저히 이해를 할수가 없어서 한없이 늘어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개인 용량 부족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에비해, 사건의 윤곽은 훨씬 단순한 편이라,
이 우물속의 해골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명쾌하게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장황한 설명에 비해 진실은 단순해서 약간 시시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독특한 점이라면,
<우부메의 여름>에서는 세키구치가, <망량의 상자>에서는 기바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흘러간데 비해,
<광골의 꿈>에서는 약 550페이지가 지나야 우리의 해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약 700페이지는 지나야 교고쿠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점이 책이 지루해지는데도 한몫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사건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던 교고쿠도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사건이 해결되어버리는 것도 다소 억지스럽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기분이 참 찝찝해져 버리는 소설이다.
돌고 돌며 물고 물며, 착각과 아집에 빠져 바보같은 일을 저질러버리는 <광골>속의 사람들도 찝찝하고,
엄청난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또 찝찝하다.
 
다소 실망적인 <광골의 꿈>이었지만, 다른 추리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교고쿠도만의 매력,
괴담이라는 미스테리한 소재와 명쾌하고 이성적인 해결을 가미한 독특한 구성덕에
아마도 이번에는 실망했을지 몰라도 다른 시리즈를 또다시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교고쿠도가 말하듯,
가끔은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알수 없는 사건들의 조각을 기워 맞추어 주었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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