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눈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카파 노블스 50주년 기념으로 나온 50을 주제로한 이색적인 단편 모음집 <도박눈>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잘알려진 (적어도 책이 한권 이상은 출간된) 작가들의 50에대한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엿볼수 있는 책이다.
다나카 요시키(은하영웅전설 시리즈), 시마다 소지(점성술 살인사건 외 미타라이 시리즈), 오사와 아리마사(신주쿠 상어), 아야쓰지 유키토(십각관 살인등 관시리즈) 미야베 미유키(모방법, 화차 등등),요코야마 히데오(제3의 시효), 아리스가와 아리스(외딴섬즐), 미치오 슈스케(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모리무라 세이이치(고층의 사각)- 이상 9명의 저마다 빵빵한 이력을 가진 작가들이 뭉쳐 만든 50을 테마로한 이야기들은 어떤 것일까?
희한하게도 이야기의 주제가 한가지도 겹치는 점이 없었고, 저마다 작가색을 아주 잘 살린 단편들이었던 데다가, 무엇하나 딱히 굉장히 재밌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뒤떨어지는 단편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어느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단편들이라, 읽는데도 편하고 즐거웠다.

아야쓰지 유키토-<절단>
50번의 칼질, 그리고 50개의 절단난 사체.
여기서 수상한 점이 무엇인지 눈치 채셨는가?
아야쓰지 유키토가 보여주는 50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것인데, 끝까지 다 보고나서 굉장히 서늘한 느낌이 드는 단편으로, 꿈같은 몽환적인 느낌도 드는 단편이었다. 이런 느낌까지는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아야쓰지 유키토는 나와 잘 궁합이 맞지 않는 작가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녀의 이전작 <키리고에 살인사건>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지나치게 일본적인 어법들이 내게는 낯설고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진실을 알필요 없는 주인공에게 강매하듯 진실을 알고싶지 않냐고 되묻는 의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끝까지 알수 없었다. 나는 추리소설에서 이해할수 없는 행동들이 나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눈과 금혼식>
사이좋은 부부의 금혼식.
집에 더부살이하고 있던 홀아비 매제가 금혼식 이후로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탐정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나타나 그 미스테리를 푸는 내용으로, 쉽게 잘 읽히기는 하지만 이렇다할 트릭은 그닥 존재하지 않았다.
소품격의 단편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느낌인데, 개인적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장편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약간 지나치게 이야기스러운 면이 있다는 느낌이랄까.

미치오 슈스케-여름의 빛
감도 50의 필름에 담겨진 이야기.
어느날 동네 개가 사라지고, 그 개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초등학생이 있고, 들개의 죽음의 진실을 쫓는 이야기.
주제에 끼워맞춘듯한 작위적인 느낌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뒷마무리 스킬은 조금 더 늘었으면 싶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미치오 슈스케의 책을 읽어본 건 <섀도우>가 다 였는데, 다 좋다가 꼭 끝에서 망쳐버린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단편도 초중반은 괜찮다가 결말 부분으로 갈수록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사와 아리마사-50층에서 기다려라
도시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미스테리.
개인적으로 제목의 어감도 주제와 잘 어울리게 좋았고, 단편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이것밖에 읽어본적이 없긴 한데 <신주쿠 상어>도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표현력이나 주제 선정에 있어서 자기만의 코드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신주쿠+하드보일드+마초조폭+휘둘리는 청춘 이런것이 섞여있는 느낌이랄까.
하드보일드는 하드보일드인데, 다분히 일본적이고 적절히 경박하고 저속한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나름 매력적이었다.

시마다 소지-영국 셰필드
IQ 50의 감동적인 성공기.
시마다 소지의 책을 보다보면 영국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느껴진다. 전혀 필요없다 생각하는데 이야기를 영국 셰필드까지 끌고갈 필요가 있었을까?싶으니.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IQ가 50밖에 되지 않는 한 소년이 역도선수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야기자체는 그렇다 치고 이거, 미스테리 단편 모음집인데? 미타라이는 탐정이 왜 역도선수 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다나카 요시키-오래된 우물
50대를 이어온 거대한 가문의 마지막 미스테리.
독특하게도 19세기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오래된 우물>은 50대를 이어온 거대한 가문이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반부가 약간 질질끄는 면이 없지 않아있지만, 결말이 괜찮았다.

미야베 미유키-도박눈
50개의 눈을 가진 도박눈을 50개의 강아지동상으로 무찌르다.
<50층에서 기다려라><절단>과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주제를 잘 살리고 있는 단편이 아닐까 싶다. 최근 이어져 오는 미야베 미유키의 기담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도박눈>은 작품 자체에서 대단한 미스테리를 찾을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옛날에 있었던 기담을 듣는듯한 재미를 안겨주는 단편으로, 역시 괜히 미야베 미유키가 아니군!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괜찮은 단편이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하늘이 보낸 고양이
50엔짜리 우표가 알려주는 진실.
50과는 그닥 상관없지만, 모리무라 세이치의 소설을 참으로 오랜만에 읽어본 것 같다.
돈을 벌러 상경했다가 짐을 도둑맞고 갈데없는 청년, 페티시즘에 대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속옷 도둑, 우연히 줏어기른 고양이를 주인에게 돌려주어야하는 노숙자. 세명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한 여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해지는 내용인데, 결말이 너무나 작위적이라 실망했다. 개인적으로 모리무라 세이치를 좋아하는데도, 초반, 중반까지 긴장감넘치게 이끌고 나가던 기괴한 인연의 곡선들이 결말에 와버리면 뚝 끊겨버린 느낌이다. 으아..중반까지는 진짜 재밌었는데....아쉽다.

요코야마 히데오-미래의 꽃
다가올 50년에도 축복을!
참 안정적인 필체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가이다. 이 단편집을 마무리 짓는 단편으로 제격인 단편이 아니었을까?
나이 50이 된 검시관과 그에게 붙은 고쥬(50)라는 별명. 경찰이 건네준 자료를 받아들고 미스테리한 사건을 밝혀내는 검시관이 등장하는데, 이런 코드는 뻔한데도 불구하고 뭔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단서들만으로 추적하는 본격추리소설과는 달리, 인물의 마음과 그에 따른 행동을 예측하며 결론을 내놓는 검시관의 태도가 참 따뜻하게 느껴지면서도 설득력있었다.

개인적으로 <미래의 꽃><50층에서 기다려라><도박눈>이 이 책에서 가장 재밌었던 단편들이다.
단편들마다 호불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뒤떨어지는 면은 없는 단편들이었고, 기본적으로 편안하게 읽을수 있는 가독성의 갖춘 단편들이었기 때문에 이 책 자체의 느낌은 무척 좋았다.
이런 깜찍한 기획 단편집이 또 있을라나. 잘 만들어진 기획물을 읽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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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레오라는 청년이 있었다.
자신의 동성애 성향때문에 청년은 자유를 찾아 그 골무같은 소도시를 언제든 떠나고 싶었단다.
그리고 그는 떠나게 되었다. 소련으로. 강제노역을 하러.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자유를 갈구하던 한 청년이 강제수용소에 들어가면서 눈으로, 감각으로 적어내려가는 일기이다.
이차대전 이후 황폐해진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 소수민족들을 잡아들여 동물만도 못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시키다니,  악행에 악행으로 답하는 참 유치하고 추악하기 짝이 없는 역사에 휘말린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고픔에 지고 만다.
먹기전에도 배고프고, 먹어도 배고프고, 다 먹고 나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 책의 수많은 단어들은 어쩌면 그 "배고픔"을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언젠가의 희망을 품기전에 살아있어야하고, 살아있기 위해서는 먹어야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누군가의 죽음이 더이상 슬픔이 아니게 될 때에도 배고픔은 여전히 함께 있고, 배고픈 천사는 그들을 조롱한다. 공기속에 배고픔이 머물고, 그들은 그 배고픔을 매일같이 들이마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이성과 한조각의 희망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게 의미 있을지 없을지, 수없이 번민하고 고민하면서도.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받은 레이스 손수건. 다시 돌아오게 될거라는 할머니의 말.
그런것들에 기대어, 레오는 배고픔의 연속이던 5년간의 수용소생활을 마치고 돌아온다.

강제수용소를 다룬 책들은 참 많았고, 저마다 비극적이고, 괴롭고, 잔인하기 그지 없지만, 이 책은 그 수많은 괴로움들을 현실로 이끌어오고 있다.  어쩌면 단지 5년뿐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청년은 수용소에서 젊음을 빼앗기고 평생을 굶주림속에서 헤메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가 고프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무엇에 굶주려있는지 알수 없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괴롭고 배고프던 상황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사악하게도 길들여져 또 다른 추억처럼 기억되는 것이다.
늘 허겁지겁 먹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레오를 보며, 그의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을 느끼면서 레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돌아온 고향은 또다른 의미로 낯설고 고통스러운 곳이 되어버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 레오는 또다른 굶주림에 시달리며 또다른 향수를 놓치 못한다.
참으로 참혹한 일이다. 지옥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지옥을 추억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과거에서도 존재할수 없는 슬픈 존재감과 돌아갈 곳이 없어진 비참한 현실속에 놓인 한 인간의 끝을 알수 없는 영혼의 굶주림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진짜 주제였다. 그래서 수용소생활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 현실의 연장선으로 끌고 와 한없는 고독과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어버린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자유롭게 변형되고 엉기는 단어들을 통해 수용소의 참상과 그로인한 평생의 상실감과 갈망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들숨과 날숨이 오르락 내리는 숨그네(숨+그네)처럼 몇가지 단어를 엮어서 함축적이고 개성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겉돌지 않고, 글에 착 달라붙어 고통스러운 비극을 아름답게 장식해준다.
아름답기 떄문에 더 비참하다. 자유는 빼앗기고 옷은 비루하고 배가 고파서 아무 생각도 할수 없는 현실은 감옥인데, 그 감옥마저 추억처럼 되뇌이며 자신을 그 감옥속에 가둬버리는 남자는 슬프고 가여운데, 단어는 아름답고 문장은 우아하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참혹하다.

인간이란 참 기묘한 존재이다.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는 겁에 질리고 숨이 막혀서 살아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는데, 그 지옥같은 시간들 마저 시간이 흐른후에는 추억하게 된다. 언젠가 꾸었던 기분나쁜 꿈들, 가지고 있던 아픈 순간들, 나를 지배하고 있던 나쁜 트라우마들이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일까. 잊어버려야 마땅한 것들을 왜 의도적으로 떠올려 자신을 기억의 감옥에 가둬버리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은 내게 그런 고독한 내면의 감옥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감히 그 누가 그걸 알수 있으랴.
삶이 대체 뭐예요? 라고 물어봐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써는 명쾌히 밝혀낼수 없는 이유없는 마음의 숨그네들을 감히 누가 규정할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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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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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시리즈는 현실적인 사건에 기반을 두고 쓰여진 시리즈 소설인데, 이번 <실종자>에는 소년 범죄를 모티브로 오리하라 이치 특유의 서술 트릭을 위한 떡밥을 계속 던지면서 진행된다.
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가면, 소년의 앞으로의 인생을 배려해 소년 A라고 칭하고, 성년이 될때까지 그의 모든 범죄들은 눈감아주는 것이 소년법의 정체.
15년전에 일어난 여성실종사건. 그리고 15년후에 비슷한 연쇄실종사건들이 겹치고, 15년전에 실종된 여성들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현재, 여성실종사건의 범인인 소년 A는 소년원에 들어가있고, 어느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편지와 소년 A범죄와 더불어 소년범죄에 대한 책을 내 크게 이슈화된 논픽션라이터의 시선을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느순간 접점을 맞이하고, 오리하라 이치의 특출한 개인기라 할수 있는 서술 트릭으로 마지막을 마무리 하게되는 소설이다.

<원죄좌>를 재밌게 읽어서 기대해서 일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닥 재미를 느낄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아니, 분명히 재미는 있지만, 무리수를 던져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서술 트릭을 위한 떡밥은 지나치게 늘어지고, 서술 트릭은 공감도 납득도 가지 않으며, 스릴은 훨씬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산만한 <행방불명자>와는 또다르게 곁가지 이야기가 너무 많고, 트릭자체가 기발하다거나 또는 감각적이라는 느낌 또한 받을수 없다.
특히 재미없었던 이유중 하나는 메인 주인공이라고 할수 있는 주인공들에게서 도무지 애정을 느낄수 없었던 탓도 큰 것 같은데,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에서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번만큼 비호감인적도 없었던 것 같다.
소년 A사건을 남몰래 쫓게된 여성 르포라이터 지망생은 그야말로 능력치 제로에, 괜히 오지랖과 자신감만 쩌는 민폐쟁이에다가, 게다가 무슨 운은 그렇게 좋은건지 길가는 사람한테 물어봐도 모든 것을 답해주고 마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저 얼굴이 예쁘다고만 나오는데, 그 이상의 어떤 캐릭터도 찾을수 없는 여자주인공이라 보는 내내 좀 짜증이 났다.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면 더 노골적이어야했고, 여주인공을 그리려 했다면 좀더 매력적이어야 했다.

오리하라 이치의 잘쓰여진 소설들은 소설을 마무리 하면서 열려있던 모든 가능성과 복선들이 한가지 사실로 연관되어 닫히는 느낌을 받는데, 이번만큼은 그 방식에도, 그 결말에도 동조할수 없었다.
소설이 이렇게 긴데도, 설명은 부족하게 느껴져서 결말은 어이없어지고, 트릭들은 감각이 떨어지고, 이야기는 밀도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오리하라 이치는 놓칠수 없는 작가.
소설마다 퀄리티의 갭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퀄리티 좋을 때는 정말 좋은, 그리고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을 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자>시리즈는 <도망자>를 남겨두고 있는데, 요건 조금 있다가 아껴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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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을 보다보면, 가끔은 작가의 성격을 알수 있을 것만 같을때가 있다.
어떤 작가는 이 사람은 천재구나-느낄수 있는 반면, 작가의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행간에서 읽어낼수 있는 소설가도 있다.
내게 오리하라 이치는 후자쪽의 모습이며, 왠지 이 사람은 호기심많고 이야기하기를 즐기며,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할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일본 작가들중에서 다음권을 기다리는 작가는 몇 안되어서 손에 꼽을만한데,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도 나오는 대로 눈여겨 보게된다.
오리하라 이치의 책은 도착시리즈와 <행방불명자>를 읽었는데, 그 중에서 <행방불명자>쪽이 약간 실망적이었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읽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내 실수 였나보다. 이제부터 <-자>를 모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치밀하고, 서술트릭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멋진 소설이었다.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교살하여 불에 태우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다리를 타고 2층창으로 들어와 그런 잔학행위를 했다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이 사건에는 증거가 없다. 이 연쇄살인을 기사로 쓰려던 기자 이가라시 도모야는 사건을 쫓던중,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약혼녀인 마이를 이 연쇄살인범의 피해자로 잃게 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가와하라 데루오. 그러나 명확한 증거물이 없기 때문에 경찰은 오랜 심문 끝에 자백을 받아내고, 가와하라 데루오는 무기징역에 처해지게 된다.
그 사건 후 12년이 흐른다. 이가라시 도모야는 어느날 살인범 가와하라의 편지를 받는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고백과 함께 자신의 무죄를 위해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해주길 바라는 가와하라의 말에 기가 막히지만,
이미 시간이 흘러서인지, 오래전 연인의 죽음에 대한 분노보다 기자로써의 호기심이 더 먼저 움직여버린다.
그렇게 여러사람의 도움을 받아 가와하라는 무죄판결을 받고 세상에 나온다.
감옥에서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한 아내는 막상 그의 출옥후, 그를 증오가 섞인 눈길로 처다보고, 가와하라는 늘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쫓기는 느낌을 받게된다.
그리고 알수 없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또다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사회파 소설의 포장을 두르고, "오리하라 매직"이라 불뤼우는 현란한 서술트릭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이 소설은 좋은 평가를 받는 동시에 사회파 소설인척 하면서 말장난이나 늘어놓는다는 악평도 함께 들었다고 한다.
아마 이 악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의 매력을 잘 간파하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치밀하고 현란한 서술트릭 자체가 오리하라 이치 소설의 커다란 장점이고 매력인데 말이다.
이 소설이 도착시리즈와 다른 점이라면 사회파 추리소설로 서술 트릭을 교묘히 감추고 있다는 점으로, 책이 두꺼운 것도, 이야기가 방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것이다.
가혹한 살인마가 죄를 뒤집어쓴 원죄자인가, 아니면 진짜 파렴치한 살인마인가.
그를 둘러싸고 팽팽하게 맞부딪힌 가와하라를 옹호하는 사람과 피해자의 가족들의 말중 어떤 것이 더 정당한가.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누구의 말이 거짓이며, 어떤 쪽에 서야 진실을 알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이 어울어져 혼란스러운 지도를 그려내는데, 기나긴 이야기를 모두 읽어내어 마지막에서야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을 느낄수 있다.  정말 희한하게도 마지막 한줄까지 다 읽어야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수가 있다. 미스테리가 풀린 후에도 나는 그간 읽었던 방대한 양의 이야기중 모순되는 점이 있어서 께름칙한 기분에 시달렸지만, 막판의 문장 몇개로 완벽히 설득당하고 정말 개운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이처럼 치밀하게 이야기를 짜는 것도 쉽지 않겠다.
그리고 그 치밀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리하라 이치가 보여준 서스펜스는 그야말로 미스테리이며, 그 자체가 스릴러이다.
막상 이야기의 정체는 매우 간단하고 단조로운 것으로, 자칫 잘못하면 도가 지나친 단순함이라 생각될수 있는데도, 그것을 퍼즐처럼 조각내어 재미나게 포장하는데 대단한 재능이 있는 작가이고, 이런 사람을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나보다.
그간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코드들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히 많이 등장한다.
비틀린 이상 심리와 관음증, 스토커와 강간범, 가학적인 성욕, 우연한 계기로 죄를 뒤집어쓸 위기에 처하는 사람, 묘하게 정신이 비틀어진채 시간을 잃어버리는 행위, 다소 얄팍한 깊이의 그로테스크 등, 비슷한 코드가 많이 등장하는데도 지루하거나 뻔해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코드를 등장시키는데도, 오리하라 이치는 언제나 "마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너무 퍼즐같아서 다소 장난스럽다 느껴지는 <도착>시리즈에 비해, <-자>시리즈는 약간은 더 어둡고 무섭지만, 오리하라 이치가 암흑계 작가는 분명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회파 추리소설로 갈려다가 다시 그의 본연의 모습으로 싹 탈바꿈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가물가물하게 <행방불명자>에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중 한명의 존재를 발견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역자후기를 보니 <-자>시리즈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지는 않지만, 간간히 이 소설의 등장인물을 다른 소설에 등장시키기도 한단다.
<행방불명자>같은 경우는 반전에 반전이 너무 심한 나머지 서술 트릭에 너무 집착하고 있고, 감정적으로 억지스러운 느낌을 지울수 없었지만, <원죄자>에서 다시 오리하라이치와 "노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으니, <-자>시리즈도 모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종자>와 <도망자>.
자, 오리하라 매직에 빠져보자.
오리하라 이치의 장난질에 깜빡 속아넘어가는 기쁨을 또 누려보자!
이런 사기라면 언제든지 당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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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달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야간여행>으로 나를 매료시킨 작가 얀 코스틴 바그너의 <차가운 달>이 발간되었다.
책소개에 나온대로 치밀한 구성과 메스로 해부한듯한 섬뜩한 심리묘사를 기대할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이 책은 추리, 스릴러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추리, 스릴러로 분류하기보다는 순소설에 가까워 보인다.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은 형사 킴모. 상처에서 헤어나오기도전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잠자는 듯 여인은 죽어있고, 아내를 잃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잊기 위해 킴모는 자진해서 이 사건을 맡게 된다.
배게로 여인의 숨통을 막아버려 죽게하는 살인범. 이 비슷한 사건이 두건이 일어날 때까지 범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킴모는 어쩐지 이 살인범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살인자를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 살인자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모습을 보게주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수 있는 것은 주인공 킴모의 공황상태에 가까운 상실감이었다.
소설 내내 마음이 싸하게 식어나가는 문장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아득한 상실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우울하고, 구슬프다. 살인범도, 킴모도 그렇다.
이 남자는 어째서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을까.
킴모와 살인범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길래, 만나지도 못한채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참으로 비밀스러운 소설이라 독자는 그 감정의 정체를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다. 그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한편으로는 이 소설을 참 신비롭게 보이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소설 내내 죽음이 맴돌고 있다.
형사 킴모에게 일어난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색체를 잃어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있고, 죽음의 아득한 심연에 매료되고 집착하는 살인범의 주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죽음의 불안과 안식이 맴도는 듯한 감성도 몽환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사람 모두 죽음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붙들려있다.
이 소설에서 매력적이었던 것은 치밀한 구성과 섬뜩한 심리묘사라기보다는 죽음의 상실감과 불안과 묘하게 안락한 느낌, 그것뿐이었다.
냉정하게 아주 재밌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뭔가 문장에 매료되는 소설이기는 했던 것 같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최근 얀 코스틴 바그너의 소설이 이 책을 포함해 세권째 나왔는데, 다른 소설도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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