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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
데릭 펠 지음, 최일성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버림받은 천재 예술가, 자신을 귀를 잘라낸 정신착란증 환자, 태양처럼 불타는 노란색-
이 말들은 생전에는 인정받지도 못하던 화가 빈센트 반고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되어버렸다.
37년 평생 "붉은 포도밭" 한점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그림을 전혀 팔지 못했던 이 무명작가는 죽고나서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예술가로써 작품으로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올수 없는 크나큰 영광이지만, 감히 누가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할까. 평생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여 남루한 인생을 이어나가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하는 그런 삶을 누가 살고 싶어할까.
<반고흐, 사랑과 광기의 나날>은 그가 대체된 아이로 태어나 37세에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위장을 쏠때까지의 짧고 아쉬운 인생 여정을 존경과 연민이 어린 어조로 풀어나가고 있는 책이다.
빈센트 반고흐가 태어나기 딱 1년전, 어머니가 유산한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채 빈센트는 대체된 아이로써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환상속의 죽은 아들은 신화처럼 존재하며 어머니를, 그리고 빈센트를 따라다니는 망령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해도, 환상속의 아이처럼 완벽할수 없는 것이 당연한 사실.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아이는 자라서도 사랑에 대해 집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했던 애정에 대한 결핍은 그로 하여금 어머니와 비슷한 여자들, 죽은 사람의 망령을 달고 살아가거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던 여자들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열정적이다못해 광적으로 보이던 빈센트의 사랑들, 짝사랑을 하는 여자와 사귀고 있다고, 결혼할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착각, 사랑과 사랑이 주는 안정감을 도가 지나치게 맹신해 버리는 반고흐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광적으로, 참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나 역시 주위에 이런 사람이 내게 끊임없이 구애를 해오고 자신의 감정을 착각하다가 실연하려는 순간이면 자신의 자책하다못해 자해까지 저지르는 사람을 지긋지긋한 스토커 내지는 정신병자로 생각했을 듯 싶다.
어눌하고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던 반고흐는 생전, 주위 사람들에게도 평판이 그닥 좋지 못했고, 그의 넘치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담과 혐오를 주거나, 불쾌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했다. 그의 사랑은 언제나 실패작이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선심을 베풀었건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똑같이 인정받지 못하던 인상파 화가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빈센트 반고흐는 조금 더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물랑루즈의 난쟁이 화가 로트레크처럼 타고난 부가 있지도 않았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고갱처럼 카리스마를 타고나지도 못해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편도 아니었다.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자였지만 타고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고갱과의 우정은 마치 빈센트의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짝사랑처럼 보인다. 반고흐는 고갱을 동경했다. 그의 그림도, 그라는 사람도.
자신과 닮아있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완성된 소울메이트를 보듯이.
고갱과 싸우고 돌아서서 칼로 그를 위협하고, 자신의 귀를 잘라 창녀에게 주었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지만,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빈센트 역시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오랜 상처가 고갱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폭팔했던 것일까.
그 사건으로 그는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갖히게 된다.
빈센트에게는 헌신적인 동생이 있었다. 평생 가난하나마 예술가로써 살아갈수 있었던 건 동생 테오의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화상이었던 테오 반고흐는 형의 그림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으로 평생 빈센트를 부양하게 된다. 화상으로써, 예술가인 빈센트를 인정하고 존경했던 동생 테오는 그가 살아 생전 인정받지 못할 것임을, 그리고 언젠가는 그의 그림이 전설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 역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빈센트의 그림에 매혹되어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고흐에게 애정어린 편지와 관심을 보내주었다.
테오와 요한나. 세상에 보낸 사랑에 응답받지 못했던 빈센트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그들이 아이가 아프자 빈센트에게 늘 보내주던 용돈을 보내주지 않겠다 통보하자, 빈센트는 크게 절망한다. 비록 곧바로 그들의 사과를 받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었을 것이다.
빈센트의 마지막 사랑, 그가 세들어 살고 있는 가셰의사의 딸과의 로맨스는 어쩌면 영원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질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딸과 빈센트의 사랑을 눈치 챈 가셰의사는 그 사랑에 반기를 든다.
세상 어느 부모가 정신병 경력이 있는 남자에게 딸을 맡길수가 있을까.
이 모든 거부된 사랑을 포기하고 빈센트는 결국 37세의 나이에 밀밭에서 자신을 총으로 쏘아버린다.
피흐르는 위장을 부여잡고 빈센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도하게 넘쳐서 언제나 거부당하기만 하는 그의 마음과 세상에 짐이 되기만 하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끊임없는 좌절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죽고나서야 평가받는 천재 예술가, 지금에 와서야 많은 사람들이 반고흐의 예술과 그의 인생을 사랑하지만, 과연 그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모두들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반고흐의 일생을 통틀어 본인 자신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행복했던 시절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세상에게, 사람에게 거부당하는 존재-이 얼마나 쓸쓸한 인생인지..
"멀쩡한 세상이 나를 미치게 한다." 반고흐는 이렇게 말했다지.
다르다는 것이 때로는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대부분은 이해받지 못하는 쓸쓸함을 자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다른 이 세상에서, 반고흐는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감성과 재능이 아무리 부럽더라도 감히 반고흐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테오 부부에게 자신이 짐이 될까봐 두려웠다 편지를 보낸 반고흐의 위태위태한 마음은 기분을 뭐라 말할수 없이 슬프게 만들었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애처롭고 안타까워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빈센트 반고흐의 인생은 찬란한 태양빛이면서도, 쓸쓸한 밤빛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이 아름다우면서도 우울한 기분을 자아내나 보다. 반고흐에 대한 책은 예전에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책보다 주관에 치우치지 않고, 비교적 반고흐라는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 있던 책이었다.
지난 겨울, 반고흐전을 다녀와 반고흐에 관한 책을 보고 싶어서 샀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밤의 테라스에서 그 사람과 이야기 해보고싶구나. 그의 열정에 대해, 그의 버림받은 사랑에 대해.
어쩐지 손을 꼭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