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달까지 -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 즐거운상상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참 이상한 나라이다.
운동하러 수영장에 갔더니, 사람들은 수영은 안하고 앉아서 다리만 물에 담그고 수다를 떨고 있고, 헬스클럽에 갔는데 아무도 격렬히 운동하는 사람이 없어서, 헬스클럽에 수건 한장 구비되어있지 않단다. 서류 하나 떼려는데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하나 더 떼어야하는 황당함, 은행가서 카드를 만들려는데, 비밀번호를 본인이 아닌 은행에서 정해주는 이 오만함,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키려는데 서투른 프랑스어에 웨이터는 손님을 불쾌한 듯 귀찮은 듯 바라본다.
이런 나라가 프랑스.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입을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땀을 흘려 살을 뺀다는 개념이 없어, 비만은 다이어트 크림 하나로 다스릴수 있다고 믿는 게으른 나라. 손님이 왕이라는 우리나라말에는 전혀 걸맞지 않는 불손한 매너의 나라.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이런 행동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오만할만큼 자존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기자출신의 전형적인 뉴요커 애덤 고프닉이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파리에 대한 동경, 결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몇년동안 파리에 거주하게 된 이 남자의 이야기-사실 여행서적이 아닐까 하고 펼쳤지만, 의외로 여행서적이 아니라 파리에서 살아본 생활인으로써 바라보는 파리가 담겨 있어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훨씬 흥미로웠다. (나는 여행 서적을 싫어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행도 싫어한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은, 생소한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사람처럼 몇일을 살아보는 여행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쪽의 책이 내게는 더 맞지 않을까.)
 
저자는 프랑스에 대한 동경으로 날아갔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프랑스 역시 변한 지 오래되었다. 섹스의 나라라는 명성은 암스테르담에 빼앗겨 버렸고, 거리마다 맥도날드가 판을 친다. 미국식 음식이 들어옴에 따라 미국식 문화도 같이 딸려들어올수 밖에 없어서, 환상속의 예술의 도시였던 파리는 이미 그 환상성을 잃어버린 셈이다. 미국식 문화는 가져들어오면서도, 잘못된 점은 꼭 다 미국때문이라 욕하는 프랑스 사람들- 비겁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참 순진한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수다 떨기 좋아하고, 남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통성명을 하고나면 반드시 지나칠때마다 안부를 물어줘야하는 프랑스 사람들, 그 오만하고 게으르기 짝이없는 프랑스의 하나하나가 빠릿빠릿한 생활 패턴과 개인주의에 사로잡힌 뉴요커에게는 피곤하고 진땀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파리를 사랑할수 밖에 없는 이유, 아무리 미국식 문화가 판을 치고 있어도 파리가 여전히 파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오래된 레스토랑 주인이 바뀌고 메뉴가 바뀌기 시작하자 단골 손님들이 모여 자신들만의 추억의 레스토랑을 여전히 그자리에 놓아두려 노력하는, 참견 잘하는 사회에서 볼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정"에 가까운 행동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처리에 답답하고, 아는 척에 짜증이 나도, 개개인의 역사마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도시는 그래도 여전히 예술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까.

책을 쓴 저자는 뉴욕출신이고, 책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이고, 또 읽는 독자인 나는 한국인이니,
이 뉴요커가 파리에서 이해할수 없었던 점들이 뉴욕의 시선에서 또 한국의 시선으로, 두번에 걸쳐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잘 이해가가지 않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저자의 소소한 일상들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이어져 큰 불만없이 보았다. (하지만 오타는 좀 신경써주길 바란다.)
유럽인들이 축구에 환장하는데 비해, 미국인들은 축구에 관심조차 없는 것 같다.
축구에 열광하는 유럽인들이나 우리나라의 축구를 사랑하는 남자들은 어떻게 축구를 사랑하지 않을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이 책에 미국인들이 축구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역시, 미국인으로써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 월드컵을 바라보며 축구에 도무지 정을 붙일수 없던 저자가(득점기회를 노리려고 패널티 킥을 얻으려 반칙을 이끌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심지어는 비열하다고까지 생각한다.) 아이스하키와 농구를 보며 유럽인들이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된 부분이다. 나 역시 축구는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첨부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축구는 보고 즐기자고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었다. 직접 공을 차며 경험하는데 의미가 있는 스포츠였다. 힘든 상황, 실패가 거의 확실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월드컵은 숙명의 축제인 듯 하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고 누구도 골을 넣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과 닮은 점이 있다. 0대 0은 삶의 득점표다. 여전히 운동장에서 에덴동산을 찾는 미국인들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철학일 수 있다. 그러나 축구는 삶의 도피 수단으로 만들어진 스포츠가 아니다.
뭔가 불공평하고 답답하다는 점에서 축구는 곧 삶이다.
우리는 부당한 이익을 구하고, 조그만 기쁨의 순간을 최종적인 승리인 양 좋아하며, 또 상대편의 실수를 바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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