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름들 - 세계현대작가선 11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문학세계사 / 1999년 6월
평점 :
품절


문득, 내가 앞으로도 쭉 혼자 살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첫번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병에 걸리거나, 노환이 와서 병원에서
가족들을 앞에 두고, 일생을 마감하는 것.
두번째 죽음은, 어떤 이유로 자살을 하는 것.
세번째 죽음은 급사해서 방에서 죽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꽤 섬뜩하고도 쓸쓸한 독신의 죽음의 형태가 이렇지만,
어차피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죽음이란 누구나에게나 찾아오는 숙명이고,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죽음은 언제나 혼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독하고 두려운 것이 아닐까.
 
역사에 남을 위인들의 죽음은 후세에도 기억된다.
그들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후에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할만한 이야기거리를 남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언제나 고독하다.
어떤 이유로, 어떤 형태로 죽었든,
살아있을때 행복했든, 불행했든,
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매초마다 존재감은 점점 사라지고 만다.
 
소설속의 쥬제씨는 어느날 어느 여자의 기록부를 발견한다.
알려진 바 없는, 누구나 그렇듯 평범한 "모든 이름들"중의 하나인 그녀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은,
그녀가 아주 특별한 위인이나 유명인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50년 가까이 혼자 살았고, 결코 부유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단촐한 삶에서 찾아낸
너무나 평범한 여자.
그녀의 생사를 그토록 궁금해했고, 죽음의 이유를 궁금해했고,
그녀의 이유조차 알수 없는 자살에 가슴아파한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을까.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알고 싶어지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사랑의 시작이라고 부르니까 말이다.
 
누군가를 "기억"에 담아두는 것은 어쩌면 아주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한때에는 아주 소중했던 추억도,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니까.
그래서 "기억"에 누군가를 담아둔다는 것은 무척 뿌듯하면서도 슬픈 일이될것이다.
누군가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면 팅커벨이 살아날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 잊혀진 사람의 존재를 사랑해준다면,
그 사람은 더이상, 흔하게 잊혀져가는 사람이 아닌 특별하고 고귀한 사람이 될테니...
 
그다지 무거운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기분이 우울했고 마음이 허전해졌던 것은
이것이 삶의 이야기 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평범해서 죽고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아주 평범한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고독한 이야기이니까.
커다란 긴장도, 커다란 감동도 없으면서도 이 건조하고 쓸쓸한 얘기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나 역시 죽은 후에는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갈 너무도 평범한 사람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되어야할 사람일까.
쥬제씨가 어느날, 기록부에서 발견한 이름모를 여자를 떠올린것처럼,
누군가 나의 삶을, 나의 죽음을 기억해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3-0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님의 리뷰 보니 이 책 꼭 읽고 싶네요.
땡스투 누릅니다.^^

Apple 2006-03-0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즐거운 독서되시길...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뚱뚱한 사람들이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니는 것을 참 싫어한다.
그 사람이 뚱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짙은 색 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이리라는 컴플렉스가 싫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은데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잔인할지 몰라도, 짙은 색 옷을 입어서 날씬해진다는 말은
어느정도 마른 사람의 얘기이다.
검은색 옷을 입어도 살은 역시 살일뿐,
오히려 답답하고 어두워 보인다는 사실을 본인들은 굳이 타인이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은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친구를 떠올렸다.
언제나 검은색 갈색 옷만 입던 통통한 친구.
사실 살결이 하얗고, 웃는게 에쁘던 그 친구는 어두운색 옷보다는 파스텔톤의 옷이 잘 어울렸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것 역시 컴플렉스였겠지.
내가 추천해주었던 파스텔톤 옷을 입고나서 그후로는 계속 밝은 색옷을 입고,
훨씬 밝고 귀여워진 나의 통통한 친구.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 친구가 생각났다.
 
"씁쓸한 초콜릿"의 주인공 에바는 자신의 뚱뚱함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거라고 생각하는 아이이다.
수업시간에도 언제나 소극적이고, 또래 친구들과의 사이도 언제나 멀리서 지켜볼수 밖에 없는
비만의 컴플렉스로 고민하고 있는 소녀이다.
컴플렉스는 사람을 작게 만든다.
넉넉한 외형과는 달리, 에바는 소심하고 소극적이다.
어쩌다 남자친구도 생기고, 학교에서 친구도 생겼지만,
이런 컴플렉스는 여전히 에바를 괴롭힌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다가 자기도 몰래 냉장고를 털어버리고는

울며 잠드는 소심한 소녀.
컴플렉스가 성격이 되어버린 소녀.
에바는 언제나 날씬한 사람이 되면 더 행복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컴플렉스에서 헤어나온 에바는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것은 비만이 아니라 컴플렉스라는 것을 깨닫는다.
 
뚱뚱해도 괜찮아.
살이 좀 찌면 어때.
나의 가치는 겨우 그런 외형에 있지 않은데...
...라고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외모는 단지 타고난 얼굴로 결정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예쁜 사람이 묘하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처럼,
좀 통통하더라도 좋은 표정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일수도 있는 법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인간의 외형이라는 것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나고 나서는 엄마가 미안한 마음에 건네주는 초콜릿은
언제나 씁쓸하고 우울한 맛이 났지만,
이제쯤은 달콤해지지 않았을까.
에바는 이제 소심한 뚱보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뚱보가 되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인명구조대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재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13계단>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다카노 카즈아키의 다른 소설.
유령인명구조대가 13계단보다 늦게 나온 소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먼저 소개되었다.
똑같은 사람이 쓴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반대의 매력을 가진 소설로,
<13계단>의 냉소와 허무는 <유령인명구조대>에서는 뚜렷히 나타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읽을 소설들이 줄줄이 사회의 모순에 대한 얘기라서
책을 읽을 때에는 은근히 손을 불끈! 쥐게 된다.
모순과 가식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그래도 살아!!"라고 말하고 있다.
 
원하던 동경대에서 낙방한 후 자살을 한 유이치,
변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믿을수가 없어져서 자살한 미하루,
말년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마치 김두환의 느낌이 드는 야쿠자 두목 야기,
빚 독촉으로 더이상 살아갈수 없었던 사업가 이치카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수 있는 이 네명의 자살자들은 죽어서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한 상태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신을 만난다.
신은 이 네명의 자살자들에게 49일 동안 100명의 자살자를 구조하면 천국에 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다시 인간세상으로 뚝! 떨어진 네명의 주인공.
유령인 그들은 인간을 통과하나 사물은 통과 할수 없다.
무엇도 잡을수 없고, 인간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이지도 않으며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구하란 말인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주황색 구조복, 헤드셋, 고글,로프, 핸드폰, 메가폰 등, 정체를 알수 없는 물건들 뿐,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자살하는 사람을 구할수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스스로 방법을 깨달아가는 주인공들은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읽고,
메가폰으로 원하는 것을 지시한다.

 
49일 동안 만나는 100명의 자살요망자들의 100가지 이유.
세상에 의지할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는 홀홀 단신의 남자,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왔지만, 향수병에 걸려 철저한 고립감속에 놓여진 대학생.
장애아의 엄마로 사회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딸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동반자살하려는 주부,
지독한 불신으로 삶의 이유가 없어진 여자,
한번도 제대로 되어본적 없는 비틀리고 꼬인 세상을 견디지 못해 타인을 죽이고 자살로 다가가는 범죄자,
회사내 갈등으로, 또는 치명적인 실수로 회사에서 더이상 견딜수 없게된 회사원들,
부모의 이혼과 왕따로 삼각자로 손목을 긋는 초등학생,
낭비, 또는 사업실패로 엄청난 빚더미를 지게된 사람들....
이들의 이유는 수도없이 많지만, 그 어느 것이나 우리사회에도 존재하는 모습이다.

섯부른 위로는 절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했을 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그 말에 담긴 가식적인 느낌을 알고 있다.
생각하기가 귀찮은 것이다.
뭐라고 말해줘야할지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구체적인 답도 괜찮은 위로도 찾기 귀찮아서,
"힘내!"라는 말로 떼운다.
과연 그런 말의 효력은 얼마나 될까.
네명의 자살자들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누구도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않아서 성의없는 "힘내!"라는 말이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도록, 성의없는 위로의 말에서 상대방의 무관심에 지쳐버리지 않도록,
경험자의 조언, 조력자의 도움, 타인의 동감, 구체적인 위로등을 통해서
그들을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어온다.
 
 
자살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이 세상에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같은 상황인 사람들 중에는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견디고 어떤 사람들은 죽어버리는 것일까?
문제는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이다.
자살한 사람의 정신이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살해서 빨리 끊어버려야하는 목숨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살 역시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쉽게 변해버릴 수도 있는 변덕의 일종이거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자살요망자들의 대부분은, 일평생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남을 비방하지 않으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언제나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끝도없이 좌절하게 만들고, 살아갈 의지를 빼앗아 버린다.
그 억울함이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긴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에서는 자살율이 높지 않다.
그나마 경제사정이 나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자살율이 높다.
우리보다 경제사정이 더 나은 영국이나 일본같은 선진국에서의 자살율은 더 높다.
무엇이 차이일까.
우울하고 나약한 국민성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편차가 이상하게도 크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쉽게 변화할수 있다.
오늘은 굶었지만, 내일 열심히 일한다면 밥을 먹을수 있다.
아주 소박한 본능적인 기쁨은 단순하면서도 강하다.
그러나 현실의 일본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단다.
오늘도, 어제도, 비슷한 상황이거나 또는 더 나빠질 뿐이다.
단순히 본능적인 기쁨으로 살아가기에는 사회의 모순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일본 내에 존재하고 있는, "명예롭게 죽어라"라는 사무라이 정신 또한
이런 자살을 부추기는데 일조한다고 한다.
 
 
작가는 인생을 좀더 편하고, 단순하게 살기를 바란다.
자살을 할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지나치게 고정된 성실함 따위 내던지고, 좀더 무책임하고 덜 예민하고 더 즐기며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현실의 좌절이 평생을 괴롭힌다고 볼수도 없다고 말한다.
네 명의 자살자들이 100명의 자살요망자들을 구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려보았더라면, 조금 더 냉정히 생각해보았더라면,
해결책은 어디에든 있었을텐데...
많은 자살요망자들의 사연과 그들의 자살요망을 설득해가면서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고,
뒤늦게도 살아갈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깨달음.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은 영 형편없는 시간때움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한다.
 
 
자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 자체는 코믹하고 귀엽다.
<13계단>의 작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편차도 있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인 속력조절이 부족해서,
이야기가 처음에는 조금 루즈하게, 뒤로 갈수록 급진적으로 흘러간다는데 있다.
또한 100명째 자살요망자를 구하는 설정은 조금 무리다 싶을 정도로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고,
뻔한 결말이지만서도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느낌도 들어서 그런 점은 아쉽다.
 
 
언젠가, 당신이 절망에 빠져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고 있을때,
그들은 고독한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어느 초등학생의 초인종 누르고 도망치기로....
그 때엔 기쁜 마음으로 반기며 문을 활짝 열어 두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리스 E. M. 포스터 전집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있어 영국은 꿈의 나라이다.
피터팬의 네버랜드 처럼, 모든 것이 나의 꿈속의 아련한 이야기처럼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없을것같은 동경의 나라가
나에게 있어서는 영국인 것이다.
딱 무엇이라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신사적이며 귀족적이지만, 조금은 신랄하고 베베꼬인 지적인 악랄과
특별한 까닭없이 우울하고 우중충한 이미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풍스러운 영국소설에 대한 애착이 심한 편이니, 그 점 염두해두고 글을 읽어주신다면 좋겠다.


이 책은 비교적 평범하게 자라온 영국 중상류층의 젊은이 모리스가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거의 초반부터 모리스의 성정체성은 정해져 있었다.
다만, 모리스 자신이 뒤늦게 깨달았을뿐.


정확히도 귀족적인 루트를 따라서 살아온 모리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할 집안의 가장이고, 학교에서는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히 운동을 잘하거나
특별히 유난한 성격을 가지지도 않은 그저그런 학생 "모리스 홀".
케임브릿지 대학을 들어가 우연히 알게된 선배에게서 알수 없는 동경을 느끼고,
어떻게든 그의 보헤미안 적인 취향을 맞추려 성격을 개조해볼까 싶기도하면서 주위를 맴돌던중,
선배의 방에서 클라이브 더럼을 만나게 되고, 둘의 사이는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다가
결국, 클라이브의 고백으로 둘은 연인사이로 또다시 발전한다.

지적이며 몽상가적인 클라이브와 현실적이고 정확히 "남자같은" 모리스.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모리스는 클라이브의 몽상적인 의견을 동경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사람의 관계를 이끌어 가는 것은 클라이브였다.
환상과도 같은 플라토닉한 우정을 남모르게 강요하고 있던 것은 클라이브.
모리스는 그의 취향을 동경하여 따라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모리스에게 클라이브는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생명까지 버릴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클라이브가 변한다.
어째서 변했냐고 말한다면, 그냥 시간이 지나자 변해버린 것이다.
여성혐오에 가까운 관점을 가지고 있던 클라이브가 여자에게서 매력을 느끼게 되고,
그전에 모리스에게 느꼈던 애정은 역겨운 감정으로 변해가게 된다.
아마도 클라이브는, 동성애를 느낀 것이아니라 동경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의 철학자와 그들의 미소년들에게 있었던 소년애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청소년시절, 모리스가 도서관에 앉아 그리스의 음란한 동성애 시를 읽으며 남몰래 얼굴을 붉혔던 것을
클라이브가 알았더라면, 음란하다 그를 욕하지 않았을까.

 


클라이브의 변심으로 모리스는 방황하게 된다.
클라이브가 어느순간 성정체성이 바뀌었던 것처럼,
모리스 역시 나이가 차게 되면 여자를 좋아할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심리 치료도 받아보지만 별 효력은 없다.
클라이브가 결혼한다는 가슴아픈 소식이 전해져오고, 클라이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갔던
클라이브의 저택에서 하인 알렉 스커더를 만나게 된다.
참기 힘든 욕망에 괴로워하던 밤, 사다리를 타고 알렉이 모리스에게 다가온다.


클라이브와의 정신적인 데에만 심취해버린 플라토닉한 사랑과 다르게
알렉과의 사랑은 처음부터 육체적인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모리스가 알렉을 만나게 된 이유는 단지 "자기 위해서" 인것이다.
곧 아르헨티나로 떠나려는 알렉은 모리스를 위해 인생의 계획을 바꾸게 되고,
이 사실을 안 클라이브는 아직도 그시절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모리스를 질책하며,
게다가 하필이면 하인과 사랑에 빠진 모리스를 경멸하면서 소설은 마무리 짓는다.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버린 클라이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클라이브는 얄밉다.
자기 감정에 충실할줄 아는, 그래서 비교적 솔직한 모리스와는 다르게,
클라이브는 그가 이전에 동성애를 경험해 본적이 있든, 아니든간에,
어딘지 얄밉게도 자기중심적이었고, 결국은 변덕스러웠다.
자기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모리스에게 강요하고,
그를 배신한 후에 그가 모리스에게 빨리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서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역시,
그렇게 하면 자신이 배신한 댓가를 갚을수 있고, 또 그 기억들이 영원히 뭍혀져 버리길 바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나온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절친한 친구가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지도 모르는 채,

그는 모리스와 나누었던 사랑과 기억을 창피해하고 있었다.


소설이 쓰여졌던 시대에,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간주하고 치료하려고 했으며, 감옥에 가두기도 했던 풍경들은
지금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모리스는 선천적으로 게이이다.
그것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은 남의 인생에 쓸데없는 참견이며, 그의 성향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게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똑같이 태어나 똑같은 인생을 사는게 아니듯,
초코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코렛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듯,
그건 남에게 어떤 특별한 시선이나 차별을 받을 필요없는  단순한 개인적인 취향이고 인생의 단면이다.
책 후반에 E.M 포스터 자신의 입으로 말한 설명서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대중이 동성애와 관련해서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한다는 사실이라는 점이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이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정도 공감은 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지적이고 얄미운, 사랑에 있어서도 우정에 있어서도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클라이브나,
수치심을 무릎쓰고서라도,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려하는 모리스나,
솔직하게 다가와 동등한 입장에 서고 싶은 알렉이나,
어느 사랑에나 그런 사람들과 그런 모습들은 다 존재하니까.

결국은 알렉과 모리스의 해피엔딩으로 책이 끝나지만,
당시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겼던 영국에서 벗어나, 동성애를 더이상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알렉과 모리스가 떠났을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괜찮은 곳으로 떠나
둘이 잘 먹고 잘살았다 죽었다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어쨌거나 초반의 지나치게 관념적인 문구들로 인해 다소 지루한 편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조금더 생각해가면서 볼수 있었던 책이었다.
열린 책들에서 E.M 포스터의 전집을 낼듯 보이는데, 이 우아한 양장은 정말로 원츄다!
흰책이라 더럽혀 질까봐 걱정이 될정도로 양장이 마음에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진 블루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데뷔작이라는 "버진 블루".
진주귀걸이 소녀와는 다른 형식의 소설로, 현재의 여인과 과거의 여인의 인생을 비교해 가면서,
묘하게 유사한 인생행로를 성모의 색이라는 버진블루와 성모의 빨간머리를 매개체로 엮어나가는 소설이다.

현재의 미국인 엘라와, 그녀의 조상 이사벨, 그리고 이사벨의 딸 마리.
과거에 빨간머리라 왕따당하고 라루스라고 조롱받던 이사벨과,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왔지만,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프랑스사람들과 부딪히며
문화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엘라는 빨간 머리 뿐만이 아니라 처한 상황마저 비슷한데,
끄덕이면서 보다가도, 후반부로 가면 지나치게 우연을 겹쳐놓아서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위기로 따지면 진주귀걸이 소녀보다 조금더 암울하고 형식으로
따지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온 미국인 엘라 터너는,
자신을 힐끗 거리면서 은근히 무시하는 프랑스 시골 사회에서 조금도 적응하지 못한다.
(아니, 적응하려 하지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어도 서투를 뿐더러, 타인의 얘기를 뒤에서 시시덕 대는 프랑스 아줌마들이 거북스럽기만 하고,
아이를 가지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해놓은 상태도 아닌 엘라 터너는,
성격도 히스테릭해지고, 마른버짐까지 피는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해듣기로는 자신도 프랑스인이었다는 얘기에 프랑스어도 배울겸, 심심함도 달랠겸 해서
가족조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매력적인 프랑스인 장 폴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주 오래전 가족사에 있었던 안타깝고도 잔인한 사건을 알아가게 되는 책이다.


읽으면서 확실히 이 작가는 처음부터 옛 여자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이사벨의 조용하고 신비스럽기 그지 없는 이미지는,
현실의 엘라에게로 오면서 깨지고 말아버린다.
사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엘라의 캐릭터로써의 매력은 점점 깍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엘라는 다분히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고집은 쎄고,
피해의식이라도 있는 냥 히스테릭한 모습밖에 보여지지 않아서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일을 남에게 떠맞기는 스타일의 사람을 참 싫어한다.
주인공 엘라터너가 딱 그런 스타일의 여자였다.


별다른 의지 없이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왔고, 자존심과 자기 고집만 쎄지 혼자 할줄 아는게 별로 없어서,
가족사를 조사하면서도 사사건건 남에게 의견을 묻고 남이 도와주어야만 일을 해결해나간다.
신기하게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는 전개방식은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서 좀 억지스럽기도 했고, 주인공의 성격의 단점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서
매력은 커녕 주인공에 대한 짜증이 밀려 들어올 정도였다.
장폴과의 로맨스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 치고,
엘라와 장폴은 나름대로 불륜관계인데,
엘라의 피하다가 적극적으로 유혹하다가 또다시 피해버리는 모순적인 행동에서도,
그 우유부단함이나 갈팡질팡한 마음이 애틋하다기 보다는 좀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지 진주귀걸이 소녀의 그리트가 떠올려 지는 이사벨의 이야기와
음울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매우 마음에 들었고, 책 자체로는 꽤 즐거운 책이었다.
역시 이 작가는 이런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옛날 여인의 이야기를 참 잘쓴다.
이렇다할 사건없이 묘하게 서로에게 끌리는 양치기와 이사벨의 비밀스러운 감정의 얘기라던가,
이사벨의 엄마를 물어 죽게 만든 늑대와의 묘한 소통 같은 것은
마치 꿈을 꾸는 듯이 모호하게 아련하고 아름답다.
아주 건조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빨간 머리 이사벨에대한 사람들의 모욕적인 경멸감이나
남편의 무시따위도, 오히려 현재의 엘라가 프랑스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았고, 더 애틋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진주 귀걸이 소녀를 상상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나는 이쪽이 훨씬 고풍스럽고 신비로웠다고 생각한다.
(별로 기대를 안해서 일지...)
때문에 마음에 들었고,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모습이 있긴 했지만 읽어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인의 일각수를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