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인명구조대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재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13계단>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다카노 카즈아키의 다른 소설.
유령인명구조대가 13계단보다 늦게 나온 소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먼저 소개되었다.
똑같은 사람이 쓴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반대의 매력을 가진 소설로,
<13계단>의 냉소와 허무는 <유령인명구조대>에서는 뚜렷히 나타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읽을 소설들이 줄줄이 사회의 모순에 대한 얘기라서
책을 읽을 때에는 은근히 손을 불끈! 쥐게 된다.
모순과 가식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그래도 살아!!"라고 말하고 있다.
 
원하던 동경대에서 낙방한 후 자살을 한 유이치,
변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믿을수가 없어져서 자살한 미하루,
말년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마치 김두환의 느낌이 드는 야쿠자 두목 야기,
빚 독촉으로 더이상 살아갈수 없었던 사업가 이치카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수 있는 이 네명의 자살자들은 죽어서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한 상태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신을 만난다.
신은 이 네명의 자살자들에게 49일 동안 100명의 자살자를 구조하면 천국에 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다시 인간세상으로 뚝! 떨어진 네명의 주인공.
유령인 그들은 인간을 통과하나 사물은 통과 할수 없다.
무엇도 잡을수 없고, 인간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이지도 않으며 목소리 또한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구하란 말인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주황색 구조복, 헤드셋, 고글,로프, 핸드폰, 메가폰 등, 정체를 알수 없는 물건들 뿐,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자살하는 사람을 구할수 있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스스로 방법을 깨달아가는 주인공들은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읽고,
메가폰으로 원하는 것을 지시한다.

 
49일 동안 만나는 100명의 자살요망자들의 100가지 이유.
세상에 의지할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는 홀홀 단신의 남자,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들어왔지만, 향수병에 걸려 철저한 고립감속에 놓여진 대학생.
장애아의 엄마로 사회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딸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동반자살하려는 주부,
지독한 불신으로 삶의 이유가 없어진 여자,
한번도 제대로 되어본적 없는 비틀리고 꼬인 세상을 견디지 못해 타인을 죽이고 자살로 다가가는 범죄자,
회사내 갈등으로, 또는 치명적인 실수로 회사에서 더이상 견딜수 없게된 회사원들,
부모의 이혼과 왕따로 삼각자로 손목을 긋는 초등학생,
낭비, 또는 사업실패로 엄청난 빚더미를 지게된 사람들....
이들의 이유는 수도없이 많지만, 그 어느 것이나 우리사회에도 존재하는 모습이다.

섯부른 위로는 절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했을 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그 말에 담긴 가식적인 느낌을 알고 있다.
생각하기가 귀찮은 것이다.
뭐라고 말해줘야할지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구체적인 답도 괜찮은 위로도 찾기 귀찮아서,
"힘내!"라는 말로 떼운다.
과연 그런 말의 효력은 얼마나 될까.
네명의 자살자들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고 누구도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않아서 성의없는 "힘내!"라는 말이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도록, 성의없는 위로의 말에서 상대방의 무관심에 지쳐버리지 않도록,
경험자의 조언, 조력자의 도움, 타인의 동감, 구체적인 위로등을 통해서
그들을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어온다.
 
 
자살외에는 어떤 해결책도 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경우는 이 세상에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같은 상황인 사람들 중에는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견디고 어떤 사람들은 죽어버리는 것일까?
문제는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이다.
자살한 사람의 정신이 나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살해서 빨리 끊어버려야하는 목숨인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살 역시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쉽게 변해버릴 수도 있는 변덕의 일종이거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자살요망자들의 대부분은, 일평생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남을 비방하지 않으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언제나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끝도없이 좌절하게 만들고, 살아갈 의지를 빼앗아 버린다.
그 억울함이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긴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나라에서는 자살율이 높지 않다.
그나마 경제사정이 나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 자살율이 높다.
우리보다 경제사정이 더 나은 영국이나 일본같은 선진국에서의 자살율은 더 높다.
무엇이 차이일까.
우울하고 나약한 국민성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편차가 이상하게도 크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쉽게 변화할수 있다.
오늘은 굶었지만, 내일 열심히 일한다면 밥을 먹을수 있다.
아주 소박한 본능적인 기쁨은 단순하면서도 강하다.
그러나 현실의 일본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단다.
오늘도, 어제도, 비슷한 상황이거나 또는 더 나빠질 뿐이다.
단순히 본능적인 기쁨으로 살아가기에는 사회의 모순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일본 내에 존재하고 있는, "명예롭게 죽어라"라는 사무라이 정신 또한
이런 자살을 부추기는데 일조한다고 한다.
 
 
작가는 인생을 좀더 편하고, 단순하게 살기를 바란다.
자살을 할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지나치게 고정된 성실함 따위 내던지고, 좀더 무책임하고 덜 예민하고 더 즐기며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현실의 좌절이 평생을 괴롭힌다고 볼수도 없다고 말한다.
네 명의 자살자들이 100명의 자살요망자들을 구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려보았더라면, 조금 더 냉정히 생각해보았더라면,
해결책은 어디에든 있었을텐데...
많은 자살요망자들의 사연과 그들의 자살요망을 설득해가면서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고,
뒤늦게도 살아갈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깨달음.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은 영 형편없는 시간때움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한다.
 
 
자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 자체는 코믹하고 귀엽다.
<13계단>의 작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편차도 있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인 속력조절이 부족해서,
이야기가 처음에는 조금 루즈하게, 뒤로 갈수록 급진적으로 흘러간다는데 있다.
또한 100명째 자살요망자를 구하는 설정은 조금 무리다 싶을 정도로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고,
뻔한 결말이지만서도 시시하게 끝나버리는 느낌도 들어서 그런 점은 아쉽다.
 
 
언젠가, 당신이 절망에 빠져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고 있을때,
그들은 고독한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어느 초등학생의 초인종 누르고 도망치기로....
그 때엔 기쁜 마음으로 반기며 문을 활짝 열어 두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