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블루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데뷔작이라는 "버진 블루".
진주귀걸이 소녀와는 다른 형식의 소설로, 현재의 여인과 과거의 여인의 인생을 비교해 가면서,
묘하게 유사한 인생행로를 성모의 색이라는 버진블루와 성모의 빨간머리를 매개체로 엮어나가는 소설이다.

현재의 미국인 엘라와, 그녀의 조상 이사벨, 그리고 이사벨의 딸 마리.
과거에 빨간머리라 왕따당하고 라루스라고 조롱받던 이사벨과,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왔지만,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프랑스사람들과 부딪히며
문화적인 소외감을 느끼는 엘라는 빨간 머리 뿐만이 아니라 처한 상황마저 비슷한데,
끄덕이면서 보다가도, 후반부로 가면 지나치게 우연을 겹쳐놓아서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위기로 따지면 진주귀걸이 소녀보다 조금더 암울하고 형식으로
따지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민온 미국인 엘라 터너는,
자신을 힐끗 거리면서 은근히 무시하는 프랑스 시골 사회에서 조금도 적응하지 못한다.
(아니, 적응하려 하지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어도 서투를 뿐더러, 타인의 얘기를 뒤에서 시시덕 대는 프랑스 아줌마들이 거북스럽기만 하고,
아이를 가지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해놓은 상태도 아닌 엘라 터너는,
성격도 히스테릭해지고, 마른버짐까지 피는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해듣기로는 자신도 프랑스인이었다는 얘기에 프랑스어도 배울겸, 심심함도 달랠겸 해서
가족조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매력적인 프랑스인 장 폴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주 오래전 가족사에 있었던 안타깝고도 잔인한 사건을 알아가게 되는 책이다.


읽으면서 확실히 이 작가는 처음부터 옛 여자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이사벨의 조용하고 신비스럽기 그지 없는 이미지는,
현실의 엘라에게로 오면서 깨지고 말아버린다.
사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엘라의 캐릭터로써의 매력은 점점 깍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엘라는 다분히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고집은 쎄고,
피해의식이라도 있는 냥 히스테릭한 모습밖에 보여지지 않아서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일을 남에게 떠맞기는 스타일의 사람을 참 싫어한다.
주인공 엘라터너가 딱 그런 스타일의 여자였다.


별다른 의지 없이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왔고, 자존심과 자기 고집만 쎄지 혼자 할줄 아는게 별로 없어서,
가족사를 조사하면서도 사사건건 남에게 의견을 묻고 남이 도와주어야만 일을 해결해나간다.
신기하게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는 전개방식은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서 좀 억지스럽기도 했고, 주인공의 성격의 단점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서
매력은 커녕 주인공에 대한 짜증이 밀려 들어올 정도였다.
장폴과의 로맨스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 치고,
엘라와 장폴은 나름대로 불륜관계인데,
엘라의 피하다가 적극적으로 유혹하다가 또다시 피해버리는 모순적인 행동에서도,
그 우유부단함이나 갈팡질팡한 마음이 애틋하다기 보다는 좀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쩐지 진주귀걸이 소녀의 그리트가 떠올려 지는 이사벨의 이야기와
음울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매우 마음에 들었고, 책 자체로는 꽤 즐거운 책이었다.
역시 이 작가는 이런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옛날 여인의 이야기를 참 잘쓴다.
이렇다할 사건없이 묘하게 서로에게 끌리는 양치기와 이사벨의 비밀스러운 감정의 얘기라던가,
이사벨의 엄마를 물어 죽게 만든 늑대와의 묘한 소통 같은 것은
마치 꿈을 꾸는 듯이 모호하게 아련하고 아름답다.
아주 건조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가는 빨간 머리 이사벨에대한 사람들의 모욕적인 경멸감이나
남편의 무시따위도, 오히려 현재의 엘라가 프랑스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았고, 더 애틋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진주 귀걸이 소녀를 상상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분위기로만 따진다면 나는 이쪽이 훨씬 고풍스럽고 신비로웠다고 생각한다.
(별로 기대를 안해서 일지...)
때문에 마음에 들었고,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모습이 있긴 했지만 읽어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인의 일각수를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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