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 할인행사
필립 카우프만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있다. 내게 있어 그 경우는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한 거다. 개나 고양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상상하면 영혼에 푸른 날개가 돋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그야말로 상상일 뿐이다. 우선 반려동물을 키우기에 내 성정은 너무 게으르다. 게다가 알레르기성 체질이라는 개와 상극인 핑계거리도 마련되어 있다. 결코 함께하지 못할 그들에 대한 애도라도 해보련다.

 

몇 번이나 미뤄둔 영화「프라하의 봄」을 이제야 본다. 십 년도 훨씬 넘은 영화인데 너무 길어 몇 번이나 보다가 중간에 그만 두곤 했다. 원작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현대사에 기반을 둔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면 영화는 그저그런 스토리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많은 이야기를 두어 시간의 영화에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원작과 연결하려는 그 어떤 목적 없이 이번에는 ‘카레닌’의 존재에 오래토록 생각이 머문다.

 

카레닌은 여주인공 테레사가 키우는 개 이름이다. 그녀가 즐겨 읽던「안나 카레리나」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테레사의 사랑은 의심하는 사랑이고, 욕망하는 관계이며, 질척이는 무거움이다. 이 모든 원인 제공자는 바람둥이 남편 토마스다. 하지만 그 누군들 무거움의 껍질을 벗고 세파에 가볍게 자신을 내던지며 사는 그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 사랑의 본질은 실연에 있고, 치졸함에 있으며, 실패에 있다. 영원 회귀니 불변진리니 하는 건 이론에나 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대비시켜 보여주기 위해 쿤데라는 또 다른 주인공 카레닌을 등장시켜 끝까지 독자를 심란하게 만든다.

 

카레닌으로 대표되는 개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사랑 따윈 뭔지도 모른다. 괴롭히지도 않는다. 의심하지도 않으며 기대하지도 않는다. 저울질도 탐색도 없으며 파괴도 집착도 없다. 다만 거기 그대로 변함없이 있을 뿐이다. 가변하는 인간의 사랑이 불변하는 개에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은 안락사이다. 믿음이 보장되지 않는 인간끼리는 절대 할 수 없는 최대의 선물 안락사. 죽음으로써 시퍼렇게 살아있는 카레닌의 순정이 거대한 돛으로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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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3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열개 하고 싶어요. 이 복잡미묘한 영화를 이렇게 카레닌에 집중해 쓰시다니요. 사랑과 사랑하는 자의 심연에 자리한 슬픈 본질을 꿰고 계신 느와르님, 반짝반짝 합니다. ^^ 왠지 제 마음이 다 가벼워져요.
오늘도 멋진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2-10-31 01:3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따뜻한 사람이군요. 배울게요.. 용기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대개의 원작이 영화보다 낫긴 하지만 이건 뭐 쿤데라의 승리네요.
곳곳에 단상의 소재가 되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