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칠칠치 못했다. 서울행 가족나들이를 해야 했다. 이주 전 일박이일 일정으로 남편이 잠자리를 예약한다고 했을 때 그러려니 했다. 그날이 문학기행과 겹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매사에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편이다. 도대체 두 가지 일을 생각하지 못한다. 문학기행과 서울행은 각기 다른 일정이니 날짜도 당연히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출발 하루 전에야 두 일정이 겹친다는 것을 알았다. 한심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둘 다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문학기행 중간에 순천까지 남편이 데리러 오는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만 소화하는 기행이 즐거울 리 없었다. 눈은 송광사 단풍에 머물렀건만 마음은 자책의 방망이질로 따끔거렸다.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기숙사에서 급히 나오느라 아들은 속옷과 양말을 챙기지 못했다. 모전자전이다. 야무지지 못하고, 질질 흘리고 다니고, 제 것도 잘 갈무리하지 못한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속옷 갈아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시무룩하다. 이때를 대비했을까. 남편이 아이의 속옷과 양말을 내놓는다. 녀석의 얼굴이 환해진다. 면봉과 치실, 간식까지 꼼꼼히도 챙겼다.

 

남편의 준비성 하나 만은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니 단점이 없을 수 없다. 남편도 나만큼 약점이 있다. 소심하고, 잘 삐치는데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면이 때론 이해가 안 되고 갑갑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칠칠치 못한 점을 커버하는 한, 그 약점은 큰 게 아닌 게 돼버린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어쩌랴. 내 허점은 잦고 드러나지만 그의 약점은 뭉근한데다 숨어 있으니.

 

부부는 서로 달라야 잘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허점투성이 내 기질을 남편이 공유하고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싫다. 갑갑하더라도 나와 다른 약점을 가진 상대가 훨씬 낫다. 다른 사람끼리 보듬고 살라고 조물주는 남녀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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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0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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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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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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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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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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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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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0-29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서로 같은 것보다 달라서 '조화'를 이루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같으면 아마 잘 살지 못할 걸요.ㅋㅋ
저도 남편이 저와 달라서 다행이라 여길 때가 많아요.

다크아이즈 2012-10-30 00:44   좋아요 0 | URL
페크님, 다른 게 다행인 건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 다름이 이해되지 않은 순간순간은 미쳐버릴 것만 같은 게 문제지요.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