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게 박상륭 소설가의 부고를 들었다. 선생은 작품성 하나만으로도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신 문단의 큰 별이셨다. 하필이면 그 무거운 소식을 한 유명 제약회사의 오너가 자신의 운전수에게 폭언을 일삼았다는 뉴스와 같이 접했다.

 

애도의 마음이 훑고 간 자리에 뭔가 뿌연 막 같은 것이 가로막았다. 선생과는 직접적인 사연이 없으니 내 애도가 절절함에 가닿지 않은 것은 그렇다 쳐도 이 막연하고 갑갑한 막의 실체는 무엇일까. 아마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선생의 대표작인 자욱한 안개 숲 같았던 죽음의 한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의 막막한 경외감 같은 것일 테고, 다른 하나는 매캐한 연기 속 같은 가진 자들의 갑질행태를 바라봐야 하는 갑갑한 분노쯤이 아니었을까. 막막한 경외감에서 오는 조심스러움과 갑갑한 분노에서 오는 부글거림의 감정이 동시에 온몸과 마음을 뒤덮었던 것. ‘강자의 오만한 태도에 대한 나쁜 뉴스가 선생의 작품 한 부분과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이는 교만으로 가득하고 편견으로 뒤틀린 우리 자화상에 대한 경종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탐욕스런 영감이 착한 종을 데리고 서낭귀신에게 목숨 무게를 재러 갔다. 부자이니만큼 자신의 목숨 무게가 천한 종보다는 무거울 것이라 확신하면서. 귀신은 두 사람 무게가 꼭 같아 아무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고 했다. 영감은 종과 자신이 같은 목숨 무게라면 어째서 종놈은 못사는 데다 종살이를 면치 못하냐고 따진다. 서낭귀신이 말했다. 목숨이나 혼의 무게는 재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누구나 같다고. 다만 선업(善業)의 무게는 달아줄 수 있다고. 저울추를 보니 종의 그것이 영감보다 삼사백 배나 더 무거웠다. 영감 업의 무게는 가랑잎 한 잎에 지나지 않았다. 귀신이 말했다. 혼 위에 업()을 업고 오는 것이라 영감의 업을 종놈에게 판다고 해도 그 무게가 너무 가벼워 저승조차 종이 대신 가 줄 수 없노라고. 이 세상엔 같은 업의 무게는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울며 재물로 원한을 씻겠노라고 발길을 돌리지만 귀신은 그런 영감을 불러 세워 다그친다. 어디를 가느냐고, 저승사자가 와있으니 따라갈 채비나 하라고.

 

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독본이 박상륭의 세계이다. 난해한 철학서이자 불가해한 경전 같다.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손톱만한 뭐라도 건지고 싶은 심정이랄까. 환멸(幻滅)로 가득 찬 진창을 헤매는 고뇌의 인간이 끝내 죽음으로써 환멸(還滅)에 다다르고야 마는 길. 생소한 문법으로 구도에 이르는 길을 장황하게 얘기하는데 뭐라 형언하기 힘든 파장이 인다. 낯설고도 독창적인 문체 앞에서 내 안에 있는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 허상을 걷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해독 불가능한 박상륭 식 문장 앞에서 차라리 무지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강자와 약자가 있다. 약자가 강자에 의해 환난의 울타리로 내몰렸다면 약자에게 동정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강자는 가만있기만 해도 약자 앞에서 강자 자체로 군림한다. 강자가 아무 눈치 주지 않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약자는 이미 심리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약자는 강자의 쓰레기통이나 샌드백이 아니다. 거친 소리를 쓸어 담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막아내는 물건이 아니다. 소설을 넘어서는 소설이자 답 없는 비유로 가득한 암호 속에서도 이미 작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목숨이나 영혼의 무게는 같아도 업의 무게는 같을 수가 없다고.

 

큰 작가는 죽음으로써 감당키 어려운 당신 작품의 업 무게를 늘려놓았다. 사람의 존재감은 목숨 자체가 아니라 살면서 지속되는 선업의 축적에 달려 있다. 그것은 힘과 재물과는 무관하다.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경중이 달려있다. 죽음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업의 무게를 떠올려 본다. 마음이 무겁지만 피해갈 수도 없다. 박상륭 선생의 평생 테마 중의 하나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존재 이유에 대한 선업의 돌탑 쌓기가 아니었을지. 

 

  

  루체른 카펠교에서 - 

    앨리스 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아고타 크리스토프 등등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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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7-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륭.... 처음 들어보는 작가에요. 제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지 또 깨닫게 되는 글입니다. 언니는 글을 정말 잘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