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세대, 다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의 구조상 차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 존재하기도 하고 차 두개가 널널하게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도 존재하는 것이 이동네의 생김새라면 생김새이다. 거기다가 그 골목길들을 중심으로 잔가지를 살짝 살짝 쳐댄것같이 막다른 골목길도 군데군데 있는 곳도 종종 눈에 띈다.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골목길의 구조가 차 두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비교적 좁은 골목길이며 더군다나 군데군데 막다른 골목길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해만 떨어지면 그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가서 흡연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중딩,고딩것들은 물론이요. 시퍼렇게 젊은 것들이 그 어둠컴컴한 막다른 골목길에서 심심치 않게 3류 애로영화를 찍을려고 무진장 폼을 잡는 장면을 여러차례 목격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것뿐이면 그런데로 넘어가겠지만, 우리집 밑의집 건너편 집은 주인이 다른 곳에서 살고 세입자들만 잔뜩 들어찬 다가구주택이고 그 구성원 또한 심상치 않은 인물들이 많은지라 알게 모르게 밤만 되면 그집을 끼고 있는 으슥한 골목에서 소란이 끊이지 않았었다.
분명 남녀 둘이 사는데 그들이 지나치게 젊다든지..아니면 정식적인 혼인이 아닌 동거생활상태..혹은 지나치게 젊은 여자와 나이든 남자가 사는 집...(그 남자는 뜨문뜨문 온다.) 거기다가 왠놈의 차들은 그렇게 많은지 그집 주차장을 포화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결국은 남의 집 주차구역에 여기저기 차를 세워놓는 만행까지 저지르고, 두달 전에는 남의 집 주차장 문을 찌그러 트리고 오히려 큰소리 쳤다가 박살이 난 경험까지..아뭏튼 이웃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을 모아놔도 그렇게 모아놨나 싶을 정도로 이동네에서는 악의 축으로 통하는 그런 집이였다.
그런 그 집앞에 일주일 전쯤 가로등이 하나 달려 버렸다. 주황색으로 환하게 그 집 어둠컴컴한 언저리를 밝게 비춰주는 존재가 생기면서부터 재미있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끔 밤만 되면 그집 주차장에 나와 고성을 지르면 싸웠던 커플.....고성만 지르면 모를까 그집 주차장 문을 주먹으로 콩쾅 쳐대면서 거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싸웠던 그 커플이 조용해졌다. 여전히 밤에 그 주차장에 나와 싸우는 행위는 멈추지 않았으나, 환한 서치라이트를 받는 환경으로 바뀌면서부터 매우 조용(?)하게 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자의 소음에 의한 협박행위도 현격하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싸우는 시간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옛날엔 기본이 1시간이였는데 가로등이 생긴 다음부터는 15분 싸우면 많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밑의 집 막다른 골목에서 열심히 담배를 피우던 고딩,중딩들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과거에는 3명 이상으로 몰려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랫집 막내아들(태권도장사범되시겠다.)에게 걸려 두둘겨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담배를 피러 오는 것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버린 것이다. 지들 하는 짓이 떳떳한 행위가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역시 밝게 가로등을 켜주니 아마도 다른 곳으로 아지트를 옮긴 듯 하다.
이처럼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춰주는 가로등 하나만으로 우리집 앞에 있는 골목길은 새벽에도 제법 조용한 동네로 돌변해버렸다. 단지 가로등 하나 달았을 뿐인데, 이런 급작스런 변화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혹시 가로등 불빛에 사람의 성질을 죽여주는 그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뱀꼬리 : 이와 비교되게 우리 윗집과 우리집과의 경계에 있는 가로등은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꺼져있다. 이유는 건너집 통.반장 몽땅 해먹고 있는 집이 그 가로등으로 인해 자기내 집에 빛이 너무 많이 들어 온다는 이유로 자기 맘대로 스위치를 끊어 버린 것이다. 동네사람들이 담합을 해서 그집에서 해먹고 있는 통.반장을 구청에 민원 넣어 다 잘리게 만들려고 하는 음모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