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어렸을 때 나는 외할머니가 키웠다고 한다. 여장부셨다는 외할머니는 나를 끔찍히 이뻐하셨다고
한다.외할머니는 비교적 한량이셨던 외할아버지 집안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가셔서 가산을 불리
기 위해 만주까지 나가서 장사도 하셨다고 한다. 전쟁통에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피난에 피
난을 전전하시다가 서울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막내딸인 어머니를 시집보내고, 마지막
외손자인 나를 애지중지 키우는 재미로 말년을 즐겁게 보내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북분이시다 보니 이북음식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만두..냉면.. 아마도 내가 이런 종류
를 좋아하는 이유도 할머니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할머니와 나를 위해 냉면을
꼭 포장해서 가지고 오셨다고 하니 말 다했지... 냉면 만세...!!
2.
조금 더 컸을 때, 외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따라 시내에 외출을 하게 되면 꼭 먹게
되는 음식이 있었으니, 하나는 명동에서 먹는 칼국수였고, 또다른 하나는 L백화점 본점에서
먹는 냉면이였었다. 하절기 시즌때는 냉면, 동절기 시즌에는 칼국수였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추운 겨울에도 냉면을 먹어야 한다고 어머니에게 징징거린 기억이 난다.
다 먹고 나와서 바로 밑에 층 소프트 아이스크림까지 덥석 먹어버리고선 밖에 나와서 이를 딱딱
거리면서도 그게 그렇게 행복했었다.. 냉면 만세..만세..!!
3.
강남구쪽 사무실을 다닐 때, 여름만 되면 주식이 거의 냉면이 되버린 적이 있었다.
먹는 걸 가지고 내기를 하는 것만큼 무식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때 내 밑에 직원과 여름철 점심으로
냉면만 먹고 몇일을 견디나 내기가 이루어졌고, 한달을 기약으로 이 웃기지도 않는 내기는 결국 보름
만에 나가떨어진 녀석을 재끼고 내가 이겼었다. 우승 상품...거하게 술한잔 사기...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냉면으로 단련을 시켜주신 외할머니의 하드 트래이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냉면 만세..만세..만세..!!
4.
어제 이매지님의 페이퍼에서 봤던 단돈 7900원~!! 10인분 냉면묶음이 사무실로 배달이 왔다.
효리몰에서 사무실 여직원을 뽐뿌질 해서 두셋트를 구입했었는데, 그 내용물이 드디어 오늘 와버린
것이다. 가끔 허름한 분식집에서 먹는 냉면맛일꺼라는 뻔하디 뻔한 결론이겠지만, 그래도 7900원에
10인분이면 대단한 것 아닌가..?? 냉면 만세..만세..만세..만세..!!
뱀꼬리 : 이동네는 냉면 먹을 만한 곳이 없단 말이야..우이씨...댄장..!!
번외편
내 선배중에 냉면을 정말 좋아하는 양반이 하나 있다.
이양반은 엄청난 대식가인데 앉은 자리에서 냉면을 5그릇 먹는 걸 본 적이 있었다는....
하루는 강원도쪽을 가다 허름한 냉면집을 보고 허기를 느껴 아무생각없이 7그릇을 비우고 나왔다고
한다. 한적한 곳에 있는 냉면집치고는 맛이 꽤 좋았다고 한다..
계산하고 나오니 주방쪽에서 할아버지 하나가 뛰어 나오시더란다.
자기가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인데, 내가 말은 냉면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 첨 봤다고 악수를 하고
고맙다고 하더라는....음식값 걱정하지 말고 종종 들려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