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쓰디 쓴 인생무상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월드컵으로 열광의 도가니였었고 마님의 임신은 기쁘고 축복받기에 더할나위가 없었으나
나의 직장생활은 암흑기의 연속이였다.
2번의 면접까지 받아가면서 들어간 사무실의 첫 인상은 대단했다. 집에서의 교통편은 불
편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기존에 받아오던 연봉보다는 높은 인상율로 책정이 되었으며
사무실의 위치 또한 압구정쪽 학동사거리였었다. 사무실도 높은 건물에 좋은 기자재에다
쉽게 말해 겉모습으로 보기에 사무실의 위용은 여타의 설계사무실과 수준이 달랐었다.

겉모습뿐이였던것이 문제였으리라. 입사 한 후 한달 지난 후 급여가 나온 후 그 다음 급
여부터 매달 체불이였다. 수금이 안된다는 이유로 직원들의 인권비가 3달 가까히 안나오
기 시작하면서 발을 빼고 싶었다. 그러나 마님의 배가 부르고 있는 입장에서 이직을 결
정하기는 쉽진 않았었다. 이런 상태로 6달이나 지나니 참을성의 한계는 바닥을 치고 있
었다. 결국 상무(우습지 않은가 소장은 콧배기도 안보이고 상무가 돈관리를 한다.)와
독대를 했고 임시 방편으로 체불임금의 일부를 받아냈다. 그것도 돈을 확실히 받았다는
확인서명까지 해가면서...

그 돈을 받아들고 퇴근하는 길에 난 인생무상이 무엇인 줄 알게 되었다.
사무실의 위치상 압구정 역까지의 도보가 있어야 퇴근이 가능했기에 열심히 걸었었다.
그 동네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입자동차
매장들.. 퇴근길에 보이는 BMW매장을 지나면서 밖에 나와 있는 Z시리즈 스포츠 카에 새로
운 번호판을 달고 있는 매장직원이 눈에 띄었고 그 뒤에 조용히 팔짱을 끼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지그시 그모습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전화기에 뭐라고
중얼거리는 청년의 모습을..

본의 아니게 그 귀티나는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통화내용을 듣게 되었다.
대입 선물로 차 받아서 지금 번호판 달고 있다고.. 포르쉐 사달라고 졸랐는데 BMW 따위를
사줘서 속상하다는..

남들에게 화창한 봄날일진 몰라도 나에겐 우중충한 먹구름이 잔뜩 낀 요한계시록의 그날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퇴근길이 그날따라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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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3-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제가 논현동에 있는 사무실 다닐때도 딱 그랬죠
입사하자마자 IMF 딱 터져 주시고,
직원들 절반 뭉텅 잘려 나가고,
연차도 낮을때라 정말 아부지랑 두식구 어찌 살아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던......이제는 없으면 없으려니 하고 삽니다만 ^^

하이드 2006-03-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에 감사하고,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것도 그닥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무튼, 생각 백만개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글이에요.

세실 2006-03-1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시절이 있으셨군요.....
힘든 시절을 견디어야 더 단단해 진다는....토닥토닥~~~

Mephistopheles 2006-03-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마치 신선 같잖아요..^^
저도 딸린 식구가 없었다면 몽님 같았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이드님// 사회생활 오래하면...길들여지나 보더라구요..^^
편하게 생각하는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세실님//처음 뵙네요..반갑습니다. 이왕이면 머리도 쓰다듬어 주세요..호호홋

물만두 2006-03-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럴때는 입(우리는 이렇게 부르지 않죠)을 확 때리고 싶어져요.

mong 2006-03-1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딱 작년 이맘때 즈음 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
6년 반 다니던 회사 박차고 나올때 우리집 노친네(아...아부지)한테
아무렴 두식구 입에 풀칠이야 못하겠냐고~뭐 이따우 말을 내뱉던 기억이 납니다 ㅋ
그때부터 정신적 백수 상태입니다 ^^

Mephistopheles 2006-03-1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사실 그 청년은 밉진 않았어요.. 사무실의 처우가 XXX를 때리는 걸로 끝나는게 아닌 불을 확 싸질러 버리고 싶었었죠..^^
몽님// 전 그 때 그 현실이 아직도 맘이 아파요. 타의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열정이 꺽인 건축하는 사람들이요.. 좋은 세상이 와야 할텐데 말이죠..

nemuko 2006-03-1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손으로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러자면 맘에 들지 않아도,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어도 언제나 방글방글 웃어야 한다는 생각.... 오늘 제 기분에 딱 맞춤한 글이네요.

Mephistopheles 2006-03-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제가 제 이미지로 쓰는 구우라는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안면이 두개거든요....접대용 안면과 일상용 안면...^^

비로그인 2006-03-1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왜 이 글을 읽고 제 처지가 생각나는 걸까요?
인간이 자기 하나는 책임져야하는데 전 정말 이혼하면 먹고 살 방도가 없다죠
이혼을 하고 싶고 아니고를 떠나 그런 현실은 참 우울한 일이예요..-_-

Mephistopheles 2006-03-1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학하진 마세요 우울해 하실 필요도 없죠..현실을 즐기시면 어떨까요..사야님...^^
(말은 참 쉽게 하죠 호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