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잔에 2/3 정도의 검은 액체가 따라진 후 몇 분의 시간이 지난 후 나머지를 채운다. 잔의 최상부를 차지하는 공간은 부드러운 크리미가 차지한다. 잠시 후 잔 속에 검은 액체를 잔뜩 머금고 내 앞에 대령한 이 한 잔의 맥주를 전달하며 한마디를 첨부한다. ‘1분 정도 지난 후 드세요 손님액체는 옆으로 누운 팔자 모양을 그리며 잔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막간의 시간이 흐른 후 크리미를 윗입술에 살짝 묻히며 한잔을 들이킨다. 쌉쌀하며 시원하며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잔속에서 돌고 있던 8자의 나선이 식도에도 전해지는 느낌이다. 기네스 흑맥주를 생맥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수많은 싸돌아다님을 통해 나름 여기저기 나만의 아지트를 하나 둘 꾸려나가고 있다. 이게 무슨 비밀요원들의 안전가옥 같은 분위기는 결코 아니겠지만, 이왕 주고 먹는 술. 밥이 그래도 이왕이면 가성비가 월등하다면 그나마 내가 지출한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며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허술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일종의 위안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근래 한 군데 찾은 곳이 펍이다.

 

펍이 뭐냐. 쉽게 말하면 맥주 파는 동네 술집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엉덩이 깔고 막걸리에 지짐이 뜯어 먹는 분위기. 이게 바다건너 영국이라는 나라에 가면 동네마다 이런 술집들이 널려 있다고 한다. 물론 주종은 맥주와 위스키겠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동네 펍으로 모여들어 웃고 마시고 떠들며 응원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가 이 동네에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또 다른 재미있는 사실은 여기서 파는 술이 제법 맛있다. 주종은 맥주. 거기에 곁다리로 와인, bomb 종류의 폭탄주를 팔고 있다. 하지만 여기선 분위기상 맥주가 최고. 그리고 기네스 흑맥주를 생맥주로 마실 수 있는 재미가 존재한다. (사실 여기선 기네스 흑맥주만 두잔 먹고 나와도 기분이 상쾌, 통쾌.)

 

기분 좋게 한잔, 혹은 두 잔을 마시고 만취가 되지 않고 살짝 알코올의 기운만 느끼기에 가장 좋은 공간. 혼자보단 둘에서 셋 정도가 가장 좋은 공간. 오랜 시간 가깝게 들리고 싶은 단골가게가 하나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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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1-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맥주를 마시면 급속도로 빨리 취하고
다음날 숙취가 심해서 잘 안마시거든요.
아마도 지난번 메피님 뵈었을때 마신게 마지막인듯 하네요.
그런데!
페이퍼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침이 쓰윽 고이면서 그 맛을 혼자 음미하고 있네요.
기네스 흑맥주 예전에 참 좋아라 했거든요 ^^


Mephistopheles 2013-11-24 18:17   좋아요 0 | URL
일예로 이런저런 이유로 금주를 선언한 회사 여직원 한명이...이집에서 이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서는....

두잔을 시켜서 더 마시면서 연신 맛있다..를 연발했다지요..ㅎㅎ

숙취건 뭐건 마셔줘야 하는 술은 분명 존재해요...

-바커스 빙의 메피스토-

비연 2013-11-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부러워요... 동네에 그런 곳이 있으면 정말 편할텐데...

Mephistopheles 2013-11-24 18:18   좋아요 0 | URL
단가가 좀 쎄긴 해요...하지만 쎄더라도 그 모든게 이해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맥주 맛...!!

moonnight 2013-11-2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럽 ㅠ_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이런 집이 있으면 출근도장 찍을 것 같아요. ;;

Mephistopheles 2013-11-24 18:18   좋아요 0 | URL
그러다....알콜홀릭으로 넘어가면...전 책임 못져요...달밤님...^^

dreamout 2013-11-22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승까지 해가며, 맥주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부럽네요. ^^

Mephistopheles 2013-11-24 18:19   좋아요 0 | URL
서울에도 비슷하게 두군데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보진 않았지만 분위기는 대동소이 술맛도 비슷할꺼라 보고 싶습니다...

야클 2013-11-2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맛없는 소주와 맥주와 막걸리와 양주를 섞어 먹고 삽니다만. -_-;;

Mephistopheles 2013-11-24 18:20   좋아요 0 | URL
에이 맛 있어도...그걸 다 섞으면.....한잔 마시고 다음 잔부턴 안드로메다 맛이 날 것 같군요...ㅎㅎ

마녀고양이 2013-11-2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정말 맛있는 맥주 한잔일 듯....
묘사가 팍팍 땅기는군요.

저는 오늘 저녁 집에서 이미 치맥을 했습니다만..

Mephistopheles 2013-11-24 18:20   좋아요 0 | URL
참 재미있는게...이 집에선 치킨을 않팔아요....치킨도 윙 정도..?? 근데....다른 안주가 절대 치킨을 안찾게 해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