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가지고 온 거에요. 음식은 짜고 시고 도대체 먹을 수가 없잖아. 가서 단무지 두 배로 가져오세요..어서..!!”

 

이 말을 마친 여인은 앞에 앉은 중학생 나이의 자기 아들로 추정되는 아이에게 다른 말을 한다.

 

이것도 음식이라고 만들어 팔고 있네...서울엔 이런 음식 없는데..너 호텔에서 빙수가 얼만지 아니? 6만 원쯤 되는데, 이런 길거리 카페에서 파는 것과 격이 틀려..얼음 결도 럭셔리, 과일도 싱싱...블라블라...”

 

잠시 후 식당 아주머니는 단무지를 가득 담은 그릇을 그들의 식탁에 올려놓는다. 뒤돌아 주방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뒤통수엔 그들의 비릿한 웃음이 박힌다. 이 두 사람은 여전히 럭셔리한 수다를 떨며 우악스럽게 단무지를 씹고 면발을 들이킨다. 동네 제법 큰 근린공원 앞에 있는 순두부 집에서 특별 여름메뉴 메밀소바를 먹는 모자는 그렇게 단무지를 씹고 면을 씹고 국물을 들이켜고, 일하는 아주머니를 씹는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대화내용이었으나 내가 앉은 테이블과 유난히 가까웠고, 럭셔리한 호텔 빙수의 예찬을 늘어놓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컸기에 걸릴 것 없이 그대로 내 귓속으로 들어왔던 내용이다.

 

세상엔 사람과 사람사이 조금이나마 지켜야 할 예의 정도는 가뿐하게 무시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보니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단지 이미 연배가 들대로 들은 여자인간 보다 아직 연식이 채워지지 않은 중학생으로 추정되는 사내아이의 비릿한 비웃음과 누가 들어도 그리 들릴 수밖에 없는 식당 아주머니를 향한 비아냥거림만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모전자전인가. 아이를 보면 그 어른을 알 수 있다는 말. 우리 아들 녀석 일 거수, 일 투족을 새롭게 지켜보게 되는 계기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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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무식한 아줌마라니. 그래서 저 같은 예의바르고 예쁜 아줌마까지 욕을 먹는다니까^^
호텔 빙수는 6만원이나 하는군요. 9천원짜리 빙수 둘이 먹으면서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Mephistopheles 2013-08-23 09:37   좋아요 0 | URL
그런 무식한 아주머니는 그려려니 하는데 그 어린 남자애는 보기 안좋더군요. 식당에서 일하는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가볍게 무시하는 말투와 행동은 내내 걸립니다.

호텔빙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저 가격에 텍스 미포함이겠죠. 그리고 빙수가 너무 비싼건 사실이에요. 더군다나 팥은 정체불명의 중국산을 사다 쓰면서 대체 얼마나 마진을 남기는지...

중국산 중국산 마치 함량미달 품질성 제로의 대명사로 불리우지만 그런 후진 중국산만 골라 수입하는 우리나라 상인들의 모뙨 상술은 고쳐지질 않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3-08-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만원까지는 아니지만 2만원 정도 하는 호텔빙수는 먹어봤는데 맛은 우리동네거랑 비슷하던데 ^^;; 제 입맛이 저렴해서 그렇겠죠 ㅋㄷㅋㄷ 호텔에서 잡수고 제발 동네에 저런분들은 내려오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

얼마전에 병원에서 꼬맹이가 귀엽길래 우리 애랑 같이 데리고 좀 놀았는데, 이 녀석이 우리 꼬마 신발을 보며 '크록스'냐고 묻더군요 =.= 서너살짜리도 브랜드를 아는 세상이라 놀랍더군요.
또 그 며칠 후엔 좀 비싼 중국집에서 밥먹는데 옆자리 꼬맹이가 인형을 들고 우리 딸보고 '너 뭐하면 이거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줄게'하지 뭐예요... 거참.

Mephistopheles 2013-08-24 15:12   좋아요 0 | URL
비싼 음식 먹는다고 인격이 비싸진 않나봐요. 내뱉는 말 몇마디에 스스로를 저렴하게 만들곤 하니 말입니다.

야클 2013-08-2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다가 성질 더러운 종업원한테 걸리면 다량의 타액이 함유된 음식도 먹게 된다던데...
흠..... 모자간에 뜨거운 맛을 좀 봐야 겠군요. 그런데 팥빙수 급 땡기네. 쩝. -_-;

Mephistopheles 2013-08-24 15:14   좋아요 0 | URL
하긴 그 모자 옆에 뜨거운 뚝배기 순두부를 땀 뻘뻘 흘리며 먹던 미녀 두분이 계시긴 했습니다만......팥빙수....ㅋㅋ 울 동네에 진짜 국산팥으로 만들어주는 팥빙수집 생각나네요. 팥죽도 같이 파는 집...

마립간 2013-08-2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주머니, (아마도) 아들이 자신을 닮은 (또는 닮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믓해 할 것입니다. 아...

Mephistopheles 2013-08-24 15:15   좋아요 0 | URL
대를 이어 충성이겠군요... 꼭 좋은 것만 유전되진 않으니까요..ㅋㅋ

네꼬 2013-08-2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식 안 채워진 인간의 비릿한 웃음이라니. 젤 걸리네요. -_- 욕보셨어요 메피님;;

Mephistopheles 2013-08-24 15:15   좋아요 0 | URL
저 역시...어른보단 보고 자란 애들이 걸리더군요. 욕이야 제가 봤나요. 더운날 고생하시는 일하시던 아주머니가 지대로 안좋은 걸 밟은거죠..

Joule 2013-08-23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이 문장가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글이에요.
4번째 문단이 특히 주옥같아요. 냠냠.

Mephistopheles 2013-08-24 15:16   좋아요 0 | URL
컥...아니 왠 문장가.....아닙니다 전 걍 끄적거리는 수준이라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