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나온 의견 하나.
“우리 토요일 등산 갑시다!”
이런 제길슨. 등산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요즘 땡기지가 않는다. 아마 작년 등산 때 발목에 살짝 무리가 와 아직도 발목 좀 돌리면 똑딱똑딱 소리가 나는 것이 걸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이차저차 하니 등산계획이 잡혔고 만만하고 사무실에서 가까운 ‘관악산’이 목적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난 불참. 등산 일정이 잡힌 토요일은 마님과 치과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전 못가요!’란 보이콧 선언을 해버렸다. 그러자 실땅님이 한마디 하신다. ‘그럼 뒤풀이라도 참석하시게나.’ 끙.
그리하여 오전엔 마님과의 치과방문 후 부랴부랴 버스타고 하산예정지로 잡혀있는 안양 예술 공원 쪽으로 이동하였다. 대충 하산시간 맞춰 가봤더니 역시나 운동부족 티가 팍팍 나는 한 무리의 사무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장마마 인솔로 내려오는 길에 점심 겸 뒤풀이로 오리 고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몇 차례 와보셨는지 소장마마는 메뉴판도 보는 둥, 마는 둥, 주문을 시켜버리신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소장마마 음식 콘셉은 언제나 대 만족이기에 기대를 하고 기다리니 먼저 찬이 나온다.
찬 하나하나 정갈하니 맛있더라. 더불어 애피타이저처럼 나온 막국수 한 모금짜리도 시원하게 목으로 넘어간다. 동치미는 말할 것도 없고. 치커리와 샐러드까지 일단 기본 반찬이 푸짐하게 나와 준다. 조금 더 기다리다 보니 탕이 먼저 나온다. 오리로 끓였는지 확인은 못해봤지만 제법 실한 고사리들과 수제비가 들어간 것이 매콤하고 시원하다. 오리고기가 드문드문 보이는 걸 보니 아마 오리로 국물을 낸 것 같다.
첫 번째 메인 디쉬 유황 진흙 오리 구이가 등장한다. 오리 뱃속에 찹쌀과 밥, 대추, 은행, 잡곡을 넣고 제대로 쪄서 나온다. 기름기 쫙 빠져 나왔는지 고기는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더불어 촉촉하게 오리 뱃속에서 익혀진 잡곡밥도 고소하니 제법 맛있다.
두 번째 메인 디쉬 오리 로스구이 등장. 커다란 접시에 가운데 잡곡밥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주변에 오리 껍질과 살코기 뼈들이 둥글게 자리 잡고 있다. 겨자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고 아까 나온 반찬과 더불어 잡곡밥을 먹다 보니 기름기로 인해 느껴지는 느끼함은 멀리멀리 안녕이다. 더불어 소주도 반주 삼아 홀짝홀짝 마신다.
역시나 양이 많았는지 밥과 고기를 조금 남긴다. 하지만 음식을 남겨놓고 가기에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알뜰하다. 고기와 잡곡밥을 따로따로 포장 부탁하고 반찬까지 알뜰살뜰하게 깨끗하게 비워버린다. 등산도 안한 주제에 얌체같이 뒤풀이에만 참석했지만, 근사한 점심밥을 먹게 되었다.
주말마다 매일 혼자 등산하기 심심하시다는 소장마마는 ‘내가 점심 사줄게 같이 등산하자!’ 고 살살 꼬시고 계신다. 소장마마 밥을 사면 허술하게 사주시는 분은 아니긴 하지만 내 관절과 체력보강이 먼저 선행돼야 하는 과제가 존재하다 보니 갈등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