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사상과 정의와 상반되는 사람과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한참 바위를 씹어먹고 자갈똥을 싸재꼈던 혈기왕성한 시기엔 그 사람의 생각 자체가 이해불능이였으며 뒤집어버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전을 불사했던 적이 있었다. 허나 나이가 들다 보니 느물느물 능청스러워져 가드올리고 정면돌파 후 몇 대 맞더라도 스트레이트와 원투를 작렬시키는 대신 열심히 사이드 스텝 밟으며 훅으로 상대를 천천히 두둘기는 방법을 택하게 되버렸다.
출장일정이 끝난 후 음주를 동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는 간만에 열심히 스텝과 함께 훅을 사정없이 날리게 되버렸다.
예정보다 1시간 반이나 늦은 출장은 차근차근 그 후의 일정이 그대로 밀리게 되면서 결국 저녁 7시가 다 다 되어서 일이 끝나게 되었다. 많은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그날은 새로 들어온 직원 핑개로 사무실에서 회식일정을 잡았다 미뤄버렸고 그나마 지상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에 내심 일찍 끝나려니 했던 일정도 "갑"사무실 담당자의 늦장으로 인해 지리멸렬하게 늘어져버렸으니 말이다.
미안했는지 일정을 마치고 상행길로 올라가기 앞서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한다. 역전에서 50년 전통이라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설렁탕이나 먹고 나올려고 했지만 술 좋아하는 담당자는 대뜸 "수육"과 소주를 시켜버렸다.
빈속에 찌르르 한 잔이 들어가고 기름지지만 부드러운 고기 한점을 우물우물 씹고 있을 때 담당자는 나이든 남자들이 모이면 의당 나오는 대화거리인 정치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술자리 대화는 정치 혹은 군대 이야기인데, 사람이 맘에 안들다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곱게 들리지가 않는다. 더군다나 술이 몇 잔 들어간 상태이다 보니...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적인 자리기에 입을 꾹 다물고 "먹는게 남는 것" 이라는 지론 하나로 열심히 먹고 마시고를 반복했었다.
정치이야기는 바로 경제이야기로 이어졌고, 이 양반 사업하다 말아먹었을 때 삼성에게 꽤나 큰 피해를 받았는지 요즘 시끌시끌한 삼성의 불법행위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이 나오기 시작했다.
참이슬은 하나에서 둘로..둘에서 셋으로 넘어갈 즈음 더 이상은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는 몇가지 발언이 담당자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이번 대통령은 이XX씨가 되야지 암...그러고 보면 전XX씨가 정치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했어..안그래요 메차장? 그쵸.?"
절래절래 당신은 지금 큰 실수를 하신 겁니다. 난 빛의 속도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저기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시나요. 전 좀 생각이 다른걸요. 조세포탈과 기타등등 부정 비리가 너무 많잖습니까. 그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면 어쩌실려고요? 아울러 전XX의 전시행정과 근시안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해 지금의 이러한 경제풍토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은 인정 안하시는 건가요?
라는 정색을 하고 따지는 말대꾸에 나보다 5살이나 많은 담당자는 꽤나 당황을 했었나 보다. 변명이라고 내뱉은 이야기는 더 가관이였다.
"아...내가 사업을 해봐서 아는데...사업하는 사람들 그 정도의 불법, 탈세는 다 해요..그걸 문제시 하면 안되죠...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안그래요..?? 그리고 전XX가 지금의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요..허허허"
오냐 끝까지 가보자. 송곳같은 작렬하는 좌우 연타 훅..
"그럼 삼성을 욕하시면 안되죠..이건희도 사업가인데...이사님 말씀대로라면 삼성을 비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는군요. 아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의 무대뽀식의 경영방식은 면역성도 없고 경쟁력도 없이 오직 편법과 사도의 방법으로 기업을 일궈나가는 정책을 펼친 전XX시대때의 영향이라고 보고 싶은걸요?"
20대 혈기 왕성한 시기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술상을 엎어버리는 대신 나는 30대에 가공할만한 말펀치라는 무기를 새로 장착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말 몇마디에 갑 사무실 담당이사는 서울까지 올라가는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란 말이 전부였었다.
분명 삐진 거다..이런 밴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