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한 저녁식사 시간은 한달도 채 남지 않는 대통령 선거가
밥상에 올라와 버렸다.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XX을 뽑아야 하나....이XX을 뽑아야 하나..."
새삼스럽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연세의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정치적인
성향은 언제나 보수이며 완벽한 우익이시니까. 그래도 그나마 연세가
드시고 많이 유연해지신 것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투표권이 있는 나
에게 거의 반강제적으로 특정후보를 찍을 것을 강요해 엄청난 충돌이
수차례 일어났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는 아들의 정치적인 성향을 잘 모르신다. 아마 아버지는 날
급진좌파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으나 그건 천만에 콩떡 만만에 팥떡이다.
알라딘에서도 농담삼아 몇차례 밝혔듯이 난 소심한 무정부주의자이며
코스모폴리탄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환상에 허우적거리는 꼴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예로 난 몇차례의 국민투표에 참가에 무효표를 열심히 던져주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국회의원 해보겠다고 혹은 대통령 하겠다고 거품물고 나오신
양반들 측은하여 한 명만 찍으라는 붓뚜껑 자국을 다다다다 찍어버리고
나오는 행동을 여러차례 해왔었으니까.
딱 한 번 소신을 가지고 한 인물을 찍은 투표가 있었다.
누가 싫어서라는 반동심리도 있었겠지만 이 사람의 정치적인 행보가 제법
공감과 존경의 마음을 느꼈었기에 믿고 찍었지만 완벽하게 등에 도끼 맞은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누굴까?)
그런데 이번 투표만큼은 투표장에조차 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뽑을 인물이 없는 건 언제나처럼 똑같은 상황이다만 이번엔 그냥 보기조차
싫은 이름들이 투표용지에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온갖 탈법 불법을 일삼으며 한나라의 국가수장이 되겠다고 뻔뻔하게
이름 석 자 내민 사람
자격조차 검증 안된 TV에서 볼때나 괜찮았던 인물.
대쪽이라하지만 남의 창자 너무 쉽게 빼먹겠다던 고루한 인물.
아마도 늙어서 죽기전까지는 계속해서 노동계의 빽으로 도전할 어이없는 인물.
무노동 무임금이란 헛소리를 지껄인 양반.
(이봐이봐그럼 국회의원들 월급은 한 푼도 지급되지 말아야 하는게 정상이야)
그밖에 정치적,경제적 혹은 종교적 기반을 가지고 도전하는 양반들...
훗날 주니어가 성장하여 책으로나 접할지도 모를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마주쳤을
때 "아버지는 그때 누굴 지지하셨고 누굴 뽑으셨어요?" 란 질문에 "아무도 지지
하지 않았고 아무도 뽑지 않았다."가 가장 떳떳한 행동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소심할지라도 난 나의 길을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