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붙이기

 이름의 역할은 부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는 것 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이름이 지어질 때, 즉 부모님이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그냥 아무렇게 짓는 것이 아니더군요. 훌륭하게 자라라고 한자든 한글이든 뜻을 담아 짓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이름을 짓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 제가 느낀 것을 적어보면. - (과학 분야에서 특히 느낀 점)


1. 모양을 보고


 ‘사자바위’는 제가 그 바위를 보지 않더라도 사자 모양으로 생겼구나 하고 미리 넘겨 집습니다. '용바위'는 용머리나 아니면, 뱀처럼 길게 꾸불꾸불한 바위가 연상됩니다. '호빵'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둥글둥글하게 호인형으로 생겼을 것입니다.(외모로 별명 붙이는 사람, 정말 싫다.) 사람 등에 '승모근'이라는 근육이 있는데, 마름모꼴 생긴 근육이 스님이 쓰는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2. 기능에 따라


 '날개'는 왜 날개인가. 날라 다니므로 날개지. ‘날다’에서 파생된 이름이겠지요. '굴근'이라는 근육이 있는데, 왜 굴근이라고 붙혔는가? 구부리는 역할을 하니 굴근이라고 붙였지요. ‘꾀꼬리’라는 별명이 있다면 아마 노래 잘 부르는 친구일 겁니다.


3. 원천에 따라


 우리 동네에 예전에 ‘양평상회’라는 가게가 있었는데, 아마도 주인장 두 분의 고향은 양평일 것입니다. '춘천댁' 아줌마가 계시면 아마도 고향이 춘천이겠죠. 왜 바가지일까 박으로 만들어서 바가지 아닌가요. 호박, 호두 호주머니 등은 ‘호’란 글자가 들어가는데, 이는 호족에서 유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생물학, 천문학 등에서 잘 모른 것이 발견되면, 모양에 따라 우선 이름을 붙이고 (혹은 발견자의 이름을 응용하여 붙이고), 나중에 기능이 밝혀지면, 기능에 따라, 원천이 밝혀지면 원천에 따라 용어를 변경하는 경우 많다고 느꼈습니다.


* 발음이 비슷해서 - 이것은 이름이 변해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요. 이런 것 아세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왜 설날 전날이 까치설날로 불리는 줄 아세요. 설 전날을 ‘작은 설’이라 부르고 작다는 뜻의 낱말에 아찬, 아치가 있어 아치설로 불리우다가  까치설로 변해 버렸습니다. 돼지고기의 맛있는 부분의 하나인 ‘갈매기살’은 왜 갈매기살이 되었는지 아세요. 원래는 가로막 살(횡경막)이었는데, 발음을 편하게 하려고 갈매기살이 되었습니다. (세번째 원칙을 따르면 갈매기 새의 고기가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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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대 종교

 초등학교 5학년 때 (이 사건은 담임선생님이 너무 화를 내셔서 정확한 학년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바른 생활 문제에 ‘다음 중 4대 종교가 아닌 것은?’이란 시험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4대 종교는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였습니다. 답가지에 힌두교가 포함되어 있었고, 4대 종교가 아닌 것은 힌두교가 답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없이 힌두교로 답을 표시하였고 저는 그 문제를 맞혔습니다.


 시험 본 다음 날 담임선생님은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누구를 지목하지 않고) 우리 반 학생들을 야단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틀릴 수 있냐.’하고‘나머지는 다 들어 본 종교이고 힌두교는 들어본 적도 없지 않니.’ 저는 ‘시험 문제야 맞고 틀릴 수 있는 것이지만, 너무 쉬운 문제를 누군가 틀렸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지금 제가 이 문제를 풀려고 하면, 쉽게, 당연하게 답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불교와 힌두교중에서 어느 것이 답일까.’ 꽤 고민했을 것입니다. 불교의 많은 사상은 힌두교 사상의 바탕을 갖고 있고, 인도 인구로 보면 신자수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지나고 생각하니 그 초등학교 시절의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어렸을 때 쉬웠던 것이 자라면서 왜 이렇게 헛갈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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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0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에는 그 답은 '유교'일 것 같은데요? 유교가 종교이던가요?
아~~ 이러기 시작하면 '종교'의 definition까지 가야 할까요? 전 그래도 유교일 것 같습니다.
힌두교는 인도 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도 상당한 교세가 있습니다.

마립간 2004-02-0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이 어려운 질문을 던지셨네요.
예전에 친구와 종교란 무엇인가 한참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제 생각에 언급된 종교중 가장 표준에 해당하는 것이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입니다. 멀리 있는 것이 유교이고, 그 중간이 불교입니다. 왜냐하면 유교는 구원이 없고, 불교는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자신의 해탈이지 부처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했다가 친구한테 야단 맞았습니다. 서양종교관을 갖고 있다고. 개신교에서 제사를 금지하는 것은 유교에도 종교적 측면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도 카돌릭, 개신교,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 영국국교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취급되는 여러가지를 생각하면,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종교로 말하기도 어렵고.
제가 느낀 점은 힌두교가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당히 비중있는 종교였고 불교의 뿌리가 되는 종교였습니다. 가을산님의 글까지 읽고 나니 그 문제 정말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소굼 2004-02-0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사를 지내면서도 종교조사를 할 때면 '무교'라고 했었죠. 게다가 객관식 문항에서도 '유교'가 없어서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었고...음 고등학교때 친구녀석이 종교가 뭐냐고 했을 때 당당히 '산신령'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vs 군자대도행君子大道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는데, 집에 등하교할 때 주로 후문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3, 4학년 때 쯤 갑자가 후문으로 다니지 말고, 정문으로 등교하라는 이야기가 학교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 이유가 되었던 것이 바로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큰 길로 다닌다. 얼마 후 후문을 열어 놓는 시간이 줄게 되어 학생들은 점차 정문으로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랬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하였던 학생들이 정문으로 다니기 시작한 후 군자대도행이란 말은 점차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적인 큰 사람을 뜻하는 군자가 큰 길을 다닌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한자의 의미가 한 가지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로路가 길이라는 뜻일까? 길을 뜻하는 것에 路와 道가 있는데, 도道는 길이란 뜻 외에 도리란 뜻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문장은 ‘군자란 무릇 큰 도리를 행한다.’가 ‘큰 길을 다닌다.’로 와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해석에는 반대로, 군자는 큰 길을 다녀야 하는데 후대에 추상적으로 옳고 바른 행동을 한다고 확대 해석되었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글쎄, 아마도 처음부터 도리를 뜻하며 생겨난 말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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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흔 2004-02-0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자대로행'은 공자와 공자의 제자인 '자유'와의 대화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도'자는 노자 도덕경에서 사용을 하였습니다. 공자보다는 노자가 윗 시대지만 그 당시에는 인정을 받기가 어려웠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합니다. 그러니, '로'자가 맞다고 보아야 합니다. 실지로 공자와 '자유'와의 대화를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그 사람은 길을 걸으면 큰 길로만 걷습니다. 그 사람은 사잇길이나 뒷길, 그리고 좁은 길은 걷지 않습니다. 더욱이 길이 아닌 곳은 절대로 걸어가는 일이 없고, 언제나 큰 길을 당당하게 걷는 사람입니다."
 

 서재 폐인이 되기 전에 - 나의 반성

 모임이 있을 때 가만히 보면, 주로 이야기 하는 사람, 주로 듣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주로 듣는 사람에 속합니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말재주도 없고. 현대사회는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 자기 PR시대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 표현에 바탕(내용)이 없으면, 매우 가벼운 것이 됩니다. 세상 살아가기에 조금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깊은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는데..... 출세가 늦거나 경제적 이익이 적더라도 선비와 같은 깊은 생각


 오늘 알라딘에 주문한 책을 받았습니다. 알라딘에서 주제별로 책을 surfing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독자 평도 볼 수 있어 알라딘을 애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시하거나 글을 올린적이 거의 없었는데, 서재가 생긴 이후 마이리뷰를 올리기 시작하고, 마이페이퍼를 쓰는 등...... 생각의 충전보다는 생각의 소비가 많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서재 관리도 잘 해야겠지만 책을 읽는데 게을러지지 않는 제 자신을 바라며 - 책을 읽는 시간보다 마이페이퍼 읽으며 돌아다닌 시간이 더 많은 것은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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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일보에 기고된 글 -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생가하게 마련이죠.

'旣婚'을 강요하지 말라 / 서리니

“그러면 선배가 이혼 한 번 해봐요.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아요. 일단 해보고 후회하라니까요.”

내 말에 기세 당당하던 선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아가씨가 못하는 말이 없네. 이혼을 하라고? 이래서 나이 먹기 전에 시집을 가야된다니까. 꼬들꼬들 말꼬리 잡는 거 보면….”

선배의 느긋함이 황당과 노여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선배는 반쯤 남은 소주를 입에 털어넣고 입을 연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그게 말이 돼? 멀쩡한 남의 가정을 깨라니?”

선배의 흥분에 나는 더 기가 막힌다. 그럼 자기가 나한테 한 말은 뭔가.

“그럼 혼자 사는 길을 택해서 잘사는 사람한테, 그 길이 틀린 길이니 후회하더라도 결혼하라는 말은 괜찮고요? 내 삶도 멀쩡해요. 그런데 깨라면서요? 기혼은 미혼에게 자신들의 삶을 강요해도 되고 미혼은 안 된다는 거, 너무 가난한 발상 아니예요?”

머쓱해진 선배는 철없는 동생을 대하듯 다시 푸근한 ‘곰돌이’ 탈을 써버린다. 드문 일도 아니지만, 그래서 웃음 한 번으로 넘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직도 어쩌다 한번씩은 한풀 접어둔 성질이 파다닥 고개를 든다.

서로가 절친하다고 믿는, 스스로는 나를 아주 아낀다고 믿는 선배가 늦은 시각에 술 한잔을 하자고 청해왔다. 새삼스럽지도 않았고 마침 심심하던 차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선 포장마차에서 나는 그가 찍어준 남자 하나를 만났고 금세 분위기를 파악했다. 굳이 내숭을 떨 기력도 없었고 피차 성격도 모르지 않는 것 같길래 나는 눈 인사 대신 악수를 청했고 남자는 부스스한 머리에 운동복 차림의 여자가 내미는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오가던 몇 마디가 기어이 말싸움이 되고 말았다. 평소라면 이 정도의 일에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는데. 그렇게 순간 발끈했던 건, 나 사는 게 그렇게 불안하고 한심해 보이나 하는, 자격지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사는 일에 익숙하다. 아니,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가끔씩 이런 궂은 날씨에 몸이 젖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어느 길을 가던 그 정도의 수고로움이야 없겠는가. 모두 그렇지 않은가. 기혼이든, 미혼이든. 이제 와서야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은 더 이상 내 생활에 토를 달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혼자 살기에 적합한 인간형임을 인정하는 눈치다.

콩나물 한 봉지를 살 때도 콩의 원산지를 확인하고 우유나 빵을 살 때도 성분이나 유효기간을 보고 원하는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러니 결혼 역시 선택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는 결혼이 선택의 문제일 수 있는 세대의 앞줄에 설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특혜임도 인정한다.

나는 다만 지금 결혼이라는 관념문화와 제도문화가 닦아놓은 ‘큰 길’ 말고 또다른 작은 길에 발을 얹었을 뿐이다. 세금 한 번 미룬 적 없고, 정부를 뒤엎겠다는 정치집단도 아니고, 세상을 혹하게 하려는 불온한 세력도 아닌 바에야 굳이 박해당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런데도 대부분의 기혼의 무리, 아직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인 그들은, 아직은 소수정예에 불과한 우리들에게 강요에 가까운 회유로 유감을 표시하곤 한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이미’ 했고 나는 ‘아직’ 안한 상태가 아니라 ‘이미 선택이 완결된 상태’임을 인정해줄 수 없는지를.

사실 나도 당신들에게 유감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공식적인 미소 속에 감춰두거나 술 한잔으로 피곤함을 풀 때, 이를 갈며 안주 삼을 뿐이다. 우리, 서로간에 다소의 유감이 있더라도 그저 그렇게 삭이며 살아보는 게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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