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혐오와 싫음

 

사람의 감정에 관해서는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 된 상태다.

그러던 중에 곰곰생각하는발 님으로 꽃과 포스티잇을 읽게 되었다.

 

* 꽃과 포스트잇

http://blog.aladin.co.kr/myperu/8505622

 

이 글의 핵심 문장은, 주제는 다음 문장이다. ; <분노>는 대체로 강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고, <혐오>는 약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생각하는 바에 대해 곰곰생각하는발 님에게 댓글로 물었다.

 

마립간 질문 댓글 ;

생각을 다시 정리하면서 글(알라딘 페이퍼)을 쓰고 있는 중에 직접 곰곰발님 에게 물어보면서 진행하는 것이 빠른 것 같아 댓글을 남깁니다.

 

분노와 혐오. ; 아래 예는 어떻게 정리될까요.

 

1) 아이 A가 학교 시험을 망쳤다. 2) 아이 B가 친구 물건을 훔쳤다.

아이 A와 아이 B의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어떤이 ; 두 어머님, 두 분은 ()화를 낸 것이 아니고 ()오를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권력관계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반례에 대해서 곰곰발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알라디너 A 님은 내가 존나 싫어하는 알라디너 3이라는 글을 알라딘 서재에 포스팅했었다. 정확한 제목과 추천수를 찾아보려 하니, 현재 포스팅이 삭제된 상태이다.

 

이 글에 대해 어떤 알라디너 B 님는 싫어할 수도 있고, 싫다고 포스팅할 수도 있지요.’라는 취지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반면, 어제 알라딘 화제의 서재글에 알라디너 C 님의 어느 글을 속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것들에 대해 '싫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그보다 더한 어떤 감정에 대해 생각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이가 무언가를 싫다고 했을 때, ‘아이야, 싫다고 입 밖에 내면 안 된다고 타일러야 할까? 아이는 싫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고 어른은 안 되는 것일까? 사람의 감정 중에 억압이 당연시 되는 것이 있을까?

 

알라디너의 B님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옳을까, 아니면 알라디너 C님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옳을까? (사람들은 또는 알라디너는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의견을 더 지지할까?)

 

혹시 알라디너 A와 알라디너 B 님의 글에 추천을 했으면서 알라디너 C님의 글에도 추천을 한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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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6-21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표절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지만, 상대가 불쾌할 수 있어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처리함.

곰곰생각하는발 2016-06-2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격적 성향 표출에는 종류가 다양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롱, 비하, 폭력, 화, 혐오, 경멸, 분노, 무시 따위.
위의 질문에서 마립간 님은 화의 카테고리 안에 혐오와 분노를 넣으셨는데
제가 보기엔 각각 독립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보에는 공격적 성향 표출은 혐오도 아니고 경멸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거 같습니다. 그냥 화`가 아닐까 라며 자기합리화`를 해 봅니다. ㅋㅋ

마립간 2016-06-21 12:04   좋아요 0 | URL
저는 곰곰발 님의 댓글(이전 댓글 포함)에 대해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꽤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마녀고양이 님의 댓글과도 일맥 상통하는데요.)

이성이 보편화, 일반화 성향에 적합하다면, 감성은 특수성, 개별성에 적합하기 때문에 싫음과 혐오를, 화냄과 분노를 하나로 묶을 수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부 남성들의 `여성 혐오`나 `여성 비하`의 감정도 단일 감정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마녀고양이 2016-06-2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는 보통 행동을 부추깁니다. 현 상황이 뜻대로 안 된다는 의미로, 상대나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혐오는 대상을 피하도록 하는 부분이 있구요.

싫어할 수 있고, 싫다고 표현할 수도 있으나,
상대 행동의 영향력에 비해 지나치게 싫어한다면 그 원인은 일부 자신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내 어딘가가 건드려진 것이 아닐까 하는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
표현의 문제는 분별력이 필요한 부분 같습니다. 무조건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해달라고 하신다면, ㅎㅎ, 슬쩍 물러나려구여, 명료화가 아직 어렵습니다.

마립간 2016-06-21 12:10   좋아요 0 | URL
매번 마녀고양이 님과의 댓글을 읽으면서 (댓글 대화를 통해) 유익을 얻고 간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어떤 명확한 답변을 얻었다기 보다 제가 고민하는 바에 대해 마녀고양이 님의 이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 제가 가벼이 여겼던 부분에 무게를 실어 균형을 맞춰주는 느낌.^^

하여간 이번 댓글도 그렇고 여러 모로 감사드립니다.

마립간 2016-06-21 12:12   좋아요 0 | URL
한 가지 더 댓글 쓰다가 떠오른 것인데요. 저는 제 스스로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지인은 제가 참 낙관적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싫어하는 것이 (이중잣대를 빼고) 거의 없습니다. 이 성향도 `주지주의`의 한 면일 뿐일까요?

마녀고양이 2016-06-21 15:01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저를 기쁘게 해주시네요.. 아하하.
저도 늘 마립간님의 페이퍼에서 얻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따라갈 수 없는 흑과 백의 순수함이랄까, 치열함이랄까,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월감이 느껴지지 않는 글들이니 매우 놀랍습니다. 제가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댓글을 달게 되는 이유 같아요.

싫어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
감정의 깊이(높낮이)가 큰 사람들은 싫고 좋은 것들이 더 명확하고 확고한 경향을 보입니다. 그에 비해 감정의 깊이가 찰랑대는 정도의 분들은 호불호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향을 보인다고 느껴집니다. 감정의 깊이가 낮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닌 기질의 차이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만큼 사고의 폭과 깊이가 커진다고 생각됩니다. 주지주의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대신 일부러 사고로 도피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마립간님에게서 그런 면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감정의 깊이와 폭이 적은 분들은 자신의 소외감이나 외로움마저 잘 느끼지 못하고 외면할 때가 있으니, 그런 면은 주의깊게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댓글은 제가 본 마립간님의 일면으로부터 추측한 것이니, 그 부분을 감안해서 받아들여주셔요~ ^^)

2016-06-22 2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