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aladin.co.kr/749915104/7840985 ( 밤꽃의 제국 )
남성 혐오 정서'가 불쾌하다는 남성에게 :
꽃과 포스트잇
한국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은 관상용 ㅡ 꽃'이다. 꼰대들이 여성을 흔히 꽃'에 비유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꽃 둏고 여름 하나니 보기에 좋았어라, 누가 ?!
< 꽃 > 은 향기가 있고 아름답다. 가시는 있으나 위협적이지 않고, 암탉처럼 새벽에 울지는 않는다. 뾰족한 가시, 그까이꺼 ! 무엇보다도 욕망이 없다. < 꽃 > 은 남성 욕망이 투사된 대상(오브제)일 뿐,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詩 << 꽃, 김춘수 >> 에 나오는 꽃은 화자인 남성 시선에 갇힌 對象化된 존재'다. 누가 자기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하나의 (의미 없는) 몸짓 " 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 그의 꽃 " 이 되고, 그의 꽃이 " 되고 싶 " 다고 고백한다.
ㅡ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그린 꽃은 당당하다. 남성 시선에 갇힌 꽃이 아니다. 그녀는 대형 화폭에 거대한 꽃을 담았는데 이 극단적 클로즈-업'은 위풍당당한 꽃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오키프의 꽃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씩씩하다.
그런가 하면 小說 << 채식주의자, 한강 >> 는 식물이 되고 싶은 여성 채식주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다분히 문제적이다. 스스로 식물이 되고 싶다는 강박은 남성 폭력에 대한 비폭력 저항'이면서 동시에 남성 욕망에 대한 순응이기도 하다. 이처럼 김춘수와 한강이 호명한 오브제는 남성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꽃으로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다, 위풍당당한 꽃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표적이 되는 순간은 여성이 욕망을 표출할 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성은 욕망을 드러낼 때 < 남성 ㅡ 다움 > 을 획득하게 되지만 여성이 욕망을 드러낼 때에는 < 여성 ㅡ 다움 > 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전자는 남성 욕망의 표출이 < 야망 > 으로 포장되지만 후자는 < 천박 > 이 된다. 그렇기에 여성이 먼저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순간 여성은 " 걸레 " 나 " 쌍년1) " 이 된다.
최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살인은 < 목적 > 은 선명하지만 < 이유 > 는 불명하다. 범인이 목표로 삼은 대상은 뚜렷하다. 불특정 여성 일반이 대상이다. 하지만 살인 동기는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 평소에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 는 게 살해 동기의 전부'다. 내가 보기엔 약자를 향한 분풀이 범죄'처럼 보인다. 혐오 범죄는 대부분 약자를 향한 폭력'이니 이번 살인 사건은 약자인 여성을 향한 혐오 범죄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 지점에서 분노 감정과 혐오 감정의 차이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 분노 > 는 대체로 강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고, < 혐오 > 는 약자를 향한 공격적 성향'이다. 그렇기에 " 불의에 분노한다 " 는 표현은 있지만 " 불의에 혐오한다 " 는 표현은 없는 것이 아닐까.
정확히 말하자면 : < 여성 혐오 > 는 존재하지만 < 남성 혐오 > 는 잘못된 표현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사회적 강자인 남성에게 보내는 공격적 성향은 혐오가 아니라 분노에 가깝다. 서천석 서울 신경정신과 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 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병을 갖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그는 아마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소외감의 원인을 여성들의 자신에 대한 태도에서 찾고, 분노의 초점을 여성들에게 맞춘 것은 분명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우리 사회 내에서 최근 들어 뚜렷하게 늘어난 심리적 현상인 여성 혐오가 (만약 그에게 정신병적 망상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망상 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여성 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망상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은 맥락이 있다. 결국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일 수 없다. 오히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 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ㅡ 서천석 트위터 중 일부 발췌
여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과 폭력에 대항할 수 없는 무력감. 여성들이 죽은 그녀를 애도하기 시작했다. 꽃 한 송이로 애도를 표출하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꽃 대신 포스트잇'으로 애도했다. 이번 사건에서 여성이 선택한 것은 꽃보다는 메시지였다. 그렇기에 포스트잇에 새겨진 메시지는 다잉메세지'처럼 읽혀진다. 격정적인 목소리는 남성 폭력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이에 남성들은 자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간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남혐 정서로 인해 죄 없는 남성 일반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불쾌한 반응이다. 그런데 나는 남성들의 이 불쾌함이 불쾌하다. 울고 있는 자의 편향이 다소 거북하더라도 애도 기간이니 만큼 잠시나마 그 편향'을 받아줄 아량은 없는 것일까.
프란시스코 교황도 말하지 않았던가.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이다. 남성 입장에서는 여성의 격앙이 다소 불쾌하더라도 그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왜, 수많은 여성들이 꽃 대신 포스트-잇으로 죽은 그녀를 애도했을까.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서 대한민국은 내내 남성 상위 시대'였다. 북어와 계집은 삼 일에 한 번씩은 두들겨 패야 정신을 차린다고 믿었던 사회였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역사 전체는 성불평등의 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남성 혈맹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지 10년이 될까 / 말까?! 그것도 여성이 여성 권리 독점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한국 사회가 이토록 빠르게 여성 혐오 사회'가 되어가는 꼴을 보니
이 또한 불알후드(brotherhood)의 지랄같은 노욕으로 보여서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보라 했는데 불알후드는 불알을 황금 알과 같이 소중하게 다루니 답답하다. 여성보다 남성이 행복한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고,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도 건강한 사회가 아니며, 소수가 다수보다 더 많은 권리를 독점하는 사회도 좋은 사회가 아니다. 반대로 남성보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가, 다수 일반이 소수 특권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더 건강한 사회'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남성만 행복한 사회보다 건강한 사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