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317
<행복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에 관한 도서에 내가 별 5개를 준 책이 나왔다는 것이 경이롭다. 나는 어쩌면 벨 훅스 Bell Hooks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후 2가지의 열등적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즉, 여성과 흑인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진 사람이 이 사회가, 이 세상이 두 가지 열등적 위치 중 어느 것이 더 강력하게 개인에게 작용하느냐의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여성이고 흑인, 여성이면서 장애자, 여성이면서 부치butch로 트랜스 젠더, 여성이면서 하층 (계급과 같은) 계층 등.
이 책은 내게 실용적이기도 하다. “당신은 Anti-feminist라고구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을 할 수 있다. “나는 Bell Book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 >을 읽어 보시죠. 내 생각이 그 책에 담겨있고, 그 책에 있는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여성학에 분류되며, 제목에 ‘페미니즘’이 포함되어 있지만,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페미니스트를 비판하고 여성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혼란을 줄이기 위해 벨 훅스의 페미니즘과 이 책에서 비판받는 페미니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후자의 페미니즘을 나는 주류 페미니즘이라고 했고, <소모되는 남자>의 저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는 가상의 페미니스트라 했고, 벨 훅스는 주로 백인 여성이 주축이 된 계급 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라 칭한다.
(내 표현으로는 주류이며) 계급 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은 내 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며, <행복한 페미니즘>의 밑줄긋기에서 반복되니, 생략하기로 한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는데, 약간의 비약을 포함하여 내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페미니즘의 퇴행이다.
이 책은 고전classic이 될지언정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되기 어렵다. 여성학에 관련된 책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이 여성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여성을 불편하게 한다. 페미니즘( 이것을 여권 운동으로 정의定義하든, 양성 평등으로 정의하다든, 가부장제 타파로 정의하든)을 위해 여성이 해야 할 과제를 잔뜩 던져준다.
만약 여성이 페미니즘의 책을 통해 자신의 울분을 해소하는 ventilation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했다면 이 책은 부적절한 책이다.
p31 현대 페미니즘 운동 초기의 의식화 그룹들은 종종 개입과 변혁의 전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저 자기가 희생되는 것에 대한 울분과 적의를 풀어놓는 장소가 되었다.
최근 발간된 책은 페미니즘의 철학에 근거한 논리적인 이성적 접근과 대안의 제시보다 울분과 적의를 호응하는 책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퇴행을 언급한 이유이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퇴행이 아니라 아예 벨 훅스의 페미니즘까지 나아가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 지금에 와서야 적-녹-보라 페미니즘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신주의 페미니즘의 비판은 무식한 소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비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