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育兒育我 150429
지난 육아관련 글을 올린 직후다. 지난 주 어느 날 저녁 내내 아이의 하소연을 들어주었다.
* 육아육아 150423 http://blog.aladin.co.kr/maripkahn/7486945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아이에게 그림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빠인 나의 미술 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참 그림을 그리고 있던 중에 담임선생님께서 그림 술기를 지도하면서 그림을 직접 고쳐주신 모양이다. (나중에 듣게 된 것이지만, 선생님은 나름대로 교육 지침을 갖고 계시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그림을 고쳐 놓으니, 아이의 머릿속에 있던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고 한다.
아이는 본인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이 잘못된 것인지를 내게 묻는데, 나는 당연히 아이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도 그러하니.) 그렇다고 내가 아이와 함께 선생님을 비난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선생님이 아이의 그림을 고치고 나서 선생님의 팔꿈치가 아이의 가슴을 치는 일이 있었다. 아이는 분명히 그 상황을 체벌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그냥 우연적 사고에 의한 접촉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마지막까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아이의 입에서 “이 학교, 폭력학교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는 아이에게 자주自主적으로 살라고 훈육한다. 내가 아이로서 을乙이었을 때, 불만이었던 것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남자로서 을은 없었다.) 그런데, 사회는 자주적인 을을 좋아하지 않는다. 복종적인 을을 좋아한다. (이번 경우는 여자라는 상황보다 아이라는 것, 피교육자 학생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친구 어머니들 중에 내 딸아이의 자신 의견 표현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의 아이가 본인에게 의견을 표현하려 할 때, 막으려는 행동을 볼 수 있다.
* 학부모 면담
지난 주, 아이의 학교생활의 심각성을 확인하기 위해 담임선생님과 면담에 참여했다. 첫 대면에서 나를 보시더니 당황하셨다. 아버지가 면담에 참여하는 상황이 (최소한 올해는) 처음이었던 같다. 분명 가정통신문에는 어머니 면담이 아니라 학부모 면담이라고 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