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의사에 유죄 확정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의 요청에 따라 퇴원을 허용했다면 ‘살인방조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던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 양아무개(41)씨와 당시 수련의였던 김아무개(36)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양씨와 김씨는 1997년 서울 ㅂ병원에 근무할 당시 뇌수술 뒤 중환자실에 입원한 김아무개씨를 치료하던 중에 김씨의 부인 이아무개씨한테서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는 형편인데다 가족들에 대한 구타를 일삼아 온 남편이 살아 있는 게 오히려 짐이 된다”는 요청을 받고, 사망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은 뒤 김씨의 퇴원을 허락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김씨를 퇴원시키면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피고인들이 김씨를 집으로 직접 이송한 뒤 호흡보조장치를 제거하는 등 (아내 이씨의) 살인행위를 도운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살인방조죄’를 적용한 이유를 두고서는 “퇴원을 허용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김씨의 생사를 아내 이씨에게 맡긴 것에 불과하므로, 김씨의 사망을 계획적으로 조종했다고 보기 어려워 ‘살인죄’ 성립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그동안 치료가 꼭 필요한데도 보호자나 환자가 원할 경우 퇴원을 허락해온 의료계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낸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들은 의식불명 환자의 보호자 입장을 존중해 준 것”이라며 “법원이 이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한 것은 우리 의료 현실을 전혀 모르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권용진 의사협회 대변인은 “보호자 및 법적 대리인 등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과 의학적 충고에 반하는 퇴원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 한겨례 신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