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괴담?

 학생시절, 병원실습을 하던 때였습니다. 화상센터에서 다른 의사 선생님들을 도와 화상 환자들에게 드레싱dressing을 포함하여 환자 치료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화제가 삶에 질Quality of life에 관한 것으로 옮겨 갔습니다.


 선배 한분이 ‘마립간, 네 생각에 삶에 질을 따지는 사람이 부자인 사람이 많을까, 가난한 사람이 많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가난한 사람이 뭐 삶의 질을 따지겠어. 부자가 이것, 저것 따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부자요.’ 선배가 하시는 말씀.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그렇지 않아. 이 병원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가족이 있었는데, 부모,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결혼해서 처자식이 있고 성실한 성격으로 착실하게 일하며 돈을 모아 집도 사고, 부모님을 잘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망나니였습니다. 뭐 변변히 제대로 하는 것 없이. 그러던 중 아버지와 형에게 장사를 하겠다고 장사 밑천을 대달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은 어이없어 하여 동생을 야단쳤습니다. 동생은 홧김에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체표면의 80%에 화상을 입어 거의 사망이 확실시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포함한 가족들은 돈이 무엇이기에, 돈 때문에 동생을 죽인다 말인가. 가족들은 담당 의사에 간곡히 부탁하며 전후 사정을 이야기한 후 동생을 꼭 달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족들의 지성이었는지 가족의 부탁을 듣게 된 의사가 환자를 열심히 보았는지, 몇 달 후 담담의사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죽음의 고비는 넘긴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게 된 얼마 후부터는 환자의 가족들이 의사에게 동생이 퇴원 후 사람다운 삶을 살수 있냐고 계속해서 묻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그거야 치료를 해 봐야지 알 수 있다고 대답을 하면서 왜 계속해서 삶의 질에 관해서 질문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듣게 된 이야기가 동생의 치료비를 대면서 집도 팔고, 전세, 월세로 옮기면서 나머지 가족생활이 말이 아니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동생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들의 생활을 돌아본 것입니다.


 괴담으로 제목을 잡은 이유는 위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성인이 체표의 80%화상으로 살아남기는 매우 힘듭니다. (40%이상의 화상이면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알고 이후 환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의 이야기를 읽고 의사나 의료 관계자를 비난할 분이 계실 줄 모르겠으나,) 학생이었던 제가 느꼈던 점은 ‘현대 의료는 돈과 시간의 싸움이구나!’였습니다. 실제 위와 같은 경우(또는 고민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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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5-1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의사셨군요.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사실 가난한 사람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면 그건 치명적인 것 같아요. 부자는 그리 흔들릴게 없는데. 부자는 비교적 오래 살 수 있잖아요. 가난한 사람은 약값이 없어서 또는 치료비가 없어서 간단한 병도 키우잖아요.'현대 의료는 돈과 시간'이란 말씀 차갑게 들리네요(굉장히).
으~ 돈은 없어도 되고 시간은 많은 그런 곳에서 살고 파라...>.<

호랑녀 2004-05-1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그 돈이 늘 문제입니다 ^^
아는 분이 소아과 의사이신데, 대학병원 레지던트 시절에, 한 희귀병에 걸린 아이를 돌본 적이 있었답니다. 아픈 아이, 그리고 한없이 들어가야 하는 돈 때문에 그 엄마는 늘 우울한 얼굴이었답니다. 그 의사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손쓸 방법도 없이 아이는 세상을 등졌답니다.
몇년 후, 우연히 버스에서 그 엄마를 보게 되었는데, 참 밝은 얼굴이 너무 충격이어서 도저히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더라더군요.
저는 그 엄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를 참 나쁜 사람 취급을 하던데, 저는 완전히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해가 가더군요.

진/우맘 2004-05-1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가 옛날에 지나는 듯이 들려주신 이야기 중 한 토막.
교통사고가 났더랍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두 사람이 병원에 실려왔답니다. 의료진은 일손이 딸려 한 사람을 먼저 치료하고 나머지 사람을 돌봐야 했는데....치료하려고 옷은 이미 다 잘라낸 상태에서, 무언의 합의로, 좋은 팬티 입은 사람을 먼저 치료했다는....-.-;;;
아마도 <남이 안 보는 속옷도 깨끗하게 잘 입어야 한다>는 주제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ㅎㅎ, 울 아빠, 실없는 분이 아닌데...-.-;;;

마태우스 2004-05-1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안타까운 부분도 있고, 어느게 옳은지 헷갈리기도 하네요.

stella.K 2004-05-1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너무 웃겨요. 하지만 정말 다쳐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쁘게 멋있게 쓰러지는 게 좋겠죠. ㅎㅎ.

마립간 2004-05-1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네요. 별 시답지 않은 것도 심각하게 만드는 것의 저의 특기를 무력하게 만드는, 아무리 심각한 것도 슬며시 웃음짓게 만드는 진/우맘님의 내공...
(이렇게 진/우맘님 성격을 동경하다가 나의 개성이 없어지는 것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