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 예상 못한 지진(카타스트로피)과 새로운 결말(카오스)

 <운명의 날>을 읽으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읽기 시작할 때는 관심이 적었는데, 읽으면서 내용이 흥미진진하여 끝까지 읽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몇 가지 주제가 동시적으로 갈등관계를 일으키면서 한 가지 줄거리를 만들며 산만하지 않고 구성의 치밀성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등의 내용은
1) 우선 지진으로 일어난 혼란의 상황의 극복 및 리스본의 재건
2) 가톨릭을 중심으로 종교 갈등 및 상황에 대한 종교적 판단
3) (왕실 및) 귀족과 예수회 기득권 독점과 신흥 세력
4) 독재의 판단 ; (강요된 선과 방임된 악 중에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구체적 내용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먼저 지진이 났을 때의 아비규환을 떠 올립니다. 그리고 상상을 이어나갑니다. 내가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질서 유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p47 우선 도시의 질서를 되찾아야 했다.
p48 특히 외국인들이 손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p49, 52 끔직한 식량 폭동 ; 식료품을 공평하게 보급했다.
p52 전염병/종말론을 끊임없이 들먹이는 광신적인 신부들
p61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리스본 지진의 비극적인 일화들이 그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다.


 위와 같은 상황에 과연 합리적 설득이나 민주주의적 절차의 역할에 대해 여러 사람(특히 알라디너)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페이퍼 ‘그런데’의 3번째 이야기http://blog.aladin.co.kr/maripkahn/790868)

 종교에 관해 기독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가 민중을 구제하는 것 보다 권력에 빌붙거나 아니면 종교 자체가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수구적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2938329)
 <기독교 죄악사>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권력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저의 당위성이지만 사회 현실 자체에 미치는 저의 영향이 미미한 상태에서 저는 저의 가치관대로 행동합니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가치 판단은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이나 너무 글이 길어질 것 같아 나중에 <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이나 <세 명의 사기꾼>의 서평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한 가지 사실을 보는 관점이 정반대입니다. 기독교 도시인 리스본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은 리스본이 보다 성결하지 못해 지진이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 도시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공의롭지 못한다는 상반된 두 결론이 나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사실 판단은 같으나 가치 판단이 반대인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p 169 가톨릭계 신학자들은 이렇게 아주 기본적인 과학적인 설명마자 배척했다.

 이 책은 또한 인물 카르발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 197 건축적 통일성 속에는 전복적인 평등주의 사상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p 217 카르발류는 포르투칼 소외 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인본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중략) 카르발류는 독재자였다. 그러나 계몽적인 독재자였다. (중략) 카르발류는 자신을 영웅으로 추앙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거부했으며
p 219 그러나 포르투칼의 교육제도를 근대화 하고 대중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고루 주지 않는다면 카르발류가 꿈꾸는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p238)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그의 용기와 그가 저지른 (독재를 포함한) 범죄의 경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또한 범죄 없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 있었는지.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 밑줄 긋기

p16 탐욕스러운 왕실과 귀족, 외국 상인들 때문에 해외 교역과 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언 ; 양극화가 진행되는 현 한국 사회
p78 왕실 전체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모두 기뻐했다./ 무엇보다 국왕이 승하했다면 골치 아픈 왕위계승 투쟁이 시작됐을 것이다./ 공권력이 움직일 수 있었다.
p94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리스본 탈환 소식에 환호했다. 그러나 지배층이 기독교 세력으로 바뀐 것 외에 포르투칼 사람들이 기뻐할 일은 그다지 없었다.
p106 그러나 식민지의 보물창고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포르투칼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p190, 193 대부분이 군 출신이었다./이렇게 강경한 대응을 지시한 사람은 카르발류였다.
p199 리스본 재건은 민주주의 과정은 아니었다.

p222 카르발류는 교육받고 계몽된 대중들이 있을 때 자신의 개혁이 탄탄히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p229 개혁 ; 리스본 재건, 귀족 견제, 정교분리, 예수회 추방, 노예제 철폐, 세금 조례 단일화, 군대 개혁, 상업 육성과 규제, 왕립 출판사 설립
p234 개혁왕 주제 1세가 사망했다. (중략) “총리 각하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습니다.” (중략) 마리아 1세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 아나 빅토리아 왕비는 카르발류를 지독히 싫어했다. (중략) 마리아 1세는 곧 옛날로 회귀하는 보수정치를 했다.
첨언 ; <후불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후불제 계몽주의라고 해야겠다.
p239 혼란이 심해질수록 폼팔 후작의 철권정치에 대한 향수가 커져갔다. 첨언 ; 2류 시민의식이 3류 정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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