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을 리뷰해주세요.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다행

- 부제 ; <불멸의 신성 가족 대한민국의 의사 족속이 사는 법>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서양 중세 시대 ; 장원을 지배하는 영주 및 가족이 있고 기사, 농노 등 있습니다. 농노는 영주의 땅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일을 합니다. 추수한 곡식은 영주가 대부분 가져가고 남은 것으로 농노 및 농노 가족의 생계를 이어 갑니다. 간혹 흉년이 들면 영주가 가져가는 곡식의 양은 줄지 않아 농노는 굶주리게 됩니다. 너무 배고파 항의를 합니다. 영주는 이를 반란이라고 지칭합니다. 이 때 정의의 기사knight가 나타납니다. 창과 칼로 위협하면서 ‘까불면 죽어.’ 무력 앞에서 농노는 무기력하게 수그러듭니다. 농노는 속으로 ‘세상 살기 싫다.’ 이 순간에 종교인 수사들이 농노를 방문합니다.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는 이 세상의 재물에 욕심을 내지 말고,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라.’

 영주에 빌붙어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니 의사와 요리사입니다 <불멸의 신성 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을 읽으니 영주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네요. 집사執事( 또는 책사, 모사)라고 불리는 사람.

 ‘노예’라는 단어를 보고 무엇이 연상되나요? 고대 이집트 왕국의 노예, 아니면 그리스 시대의 노예. 미국의 노예 제도가 폐지된 것이 1865년, 불과 150여년 전입니다.

 법률이 언제부터 사람people를 보호했을까? 법조계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권력, 재력 등의 힘보다 대중 사람에게 가까워진 때가 언제 부터였나요?

 마치 내부자 고발과 같은 형식을 갖추었으나 그 내용 자체가 새롭지는 않습니다. 법조계 사람을 뽑을 때, 도덕성 평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도 없고, 정확한 도덕성 평가 방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그 당사자(사과)가 나쁘다고 할 것이고 진보적인 사람은 그 풍토(사과 상자)가 나쁘다고 할 것이고.

 책의 앞부분에 양적연구와 질적 연구를 언급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양적연구를 통해 질적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점點이 모인다고 해서 선線이 되지 않고 면面이 모여 부피를 이루지 않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종이는 면으로 치부되는 모이면 책과 같은 부피를 같습니다.

 오히려 법조계의 수입은 어떻고 세금 신고는 어떻고 실비 제공, 향응, 뇌물의 규모는 어떻고. 인맥의 형성은 어떻고 학벌은 어떻다는 것이 훨씬 실감나는 고발이라고 봅니다. 이 책은 오히려 단편적인 증례 보고라고 해야 할까? 외국의 예이기는 하지만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보다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평가는 가능합니다. 폐쇄된 사회에서 고발적 글을 쓰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책을 출간한 점, 개혁은 시작도 ‘한걸음부터라’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

cf 전반적으로 (최근의 방송 보도도 그렇고) 법조계가 의료계보다 조금 센 것 같다.
 고등학교 때에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덕이 계량이 가능하다면 전지구적인 도덕의 총량은 일정할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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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9-07-0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의 리뷰 ; 혹자는 뻔한 이야기와 대안 없는 현상만을 말하는... ; 제가 바로 그 혹자입니다.
마냐님의 리뷰 ;이 메커니즘은 법조계에 국한되지 않은, 우리 사회 전체의 고질병이다/그 훌륭한 분들조자, 검찰이나 법원이라는 자기네 회사에선 찍소리 않고 있다는 점이다./언론이라는 신성가족도 패키지로
* 검찰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가능할까?/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고 세비를 줄이는 국회의원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