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천하장사 마돈나"였지만 이미 내린 것 같다. 괴물의 돌풍으로 상영관 확보가 어려운 것은 알았지만 심하지 싶었다.
다음으로 시간대가 맞고 게 중 볼 만하다 여긴 게 이거였는데, 볼만한 것 이상으로 좋았던 작품이다. 일단 신하균이 나오니 신뢰가 간다.
감독은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낯선 감독 이름이어서 사실 망설이긴 했지만 좋은 투자를 한 셈이다.
윤지혜는 여고괴담에서 몹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는데(2등의 비애를 그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을까...) 드디어 주연을 맡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액션을 보여주더니 이번엔 노출도 불사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노출이라곤 했지만 하나도 야하지 않았다. 내가 나이 먹은 증거인가, 감독이 그렇게 잡은 것인가...(헌데 그녀가 원래 쌍커풀이 있었던가? 코 높인 것은 알아보겠던데, 높인 코가 무지 이뻤다 ^^;;)
김민준은 특별출연이라고 나왔는데, 사실 비중있는 '조연'이었다. 요새는 '주연'이 아닌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하면 쬐매 존심이 상하니까 대개 '특별출연'이라고 나온다. 주연급임에도 '조연'으로 헌신할 수 있는 '자존심'은 그들에게 없는 것일까. 연기는 아직도 어설프다. 아일랜드에서의 '재복'은 참 잘 어울렸지만,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이 작품에서도 그는 여전히 '재복'의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ㅡ.ㅡ;;;
'느와르'장르를 표방했으니 잔인할 장면도 많은데, 생각 외로 덜 잔인했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몹시 대조적이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아주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말없는 킬러가 모든 나래이션을 속말로 대신하는 형식은 "올드보이"에서도 이미 보았고, 말투도 사실 많이 비슷하다. 내용의 다음 전개도 대충 짐작이 가고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참신하지 않다고 해서 수작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 작품은 시종일관 "따뜻하다"
혀가 짧아 아예 말을 안 하고 사는 "킬라", 열여섯에 입양되었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은 자신을 마누라로 만들고, 그렇게 열여섯에 낳게 된 딸을, 아버지여야 했지만 남편이 된 그 작자가 다시 범하니, 딸은 또 다시 아이를 낳아 여주인공은 서른 둘에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열여섯 어린 딸은 자살하고 손녀는 돌 나이에 죽었다. 이토록 비참한 사연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꽤 쿨하게, 씩씩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는 듯 보였다. 그 둘이 어릴 적 좋아했던 고아원 동기라는 것. 결국 서로를 만나기 위해서 긴 시간 돌아온 것 등등은 '신파'에 가깝지만, 그래도 그 줄거리가 전혀 불편하지 않고 애틋해 보였다.
다만 거슬렸던 것은, 육교 위에서 무좀약을 팔며 장사하던 곱사등이 아주머니와, 그 아주머니를 때려가며 돈 빼앗아간 남편을 킬라가 자발적으로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처음으로 의뢰가 아니라 원해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죽자 그 부인이 상심해서 농약 먹고 자살한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두고ㅡ.ㅡ;;;;
작품의 전개상 감독은 그렇게 설정해 둔 것이겠지만, 난 그녀가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몸이었다는 게 화가 난다. 그런 최악의 조건을 가졌음에도, 그런 포악한 남편을 기대며 살고 있다는 설정이 불쾌하다. 그녀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자살을 한다는 설정이 덜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그리고 자식을 두고 죽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그린 것도 참 싫었다. 뭐, 짧게 지나간 에피소드지만.ㅡ.ㅡ;;;;
하여간.
작품은 시작과 끝이 참 좋다. 처음에 타이틀 나올 때 투우 경기의 장면을 통해서 전환하는 방법은 새로웠고, 마지막에 피철철 범벅에서 주인공이 원했던 투우장의 아름다운 광경으로 바뀐 것도 시각적으로 보기 좋았다.(물론, 역시 "달콤한 인생"의 엔딩이 연상된다. 그 선문답이...)
덧글. 작품에서 어린 아이 하나가 나오는데 주니어 홍경민이다. 눈이 또랑또랑한 것이 크면 한 인물 하겠더라.
덧글 둘. 버스 타고 가는 도중 누가 뛰어드는 바람에 차가 급정거했다. 난 잠결에 앞으로 튕겨나갔는데, 무릎이 부딪치면서 손잡이를 겨우 잡았다. 승객들 말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었다나.
하여간, 앉아 있었기에 망정이지, 오늘처럼 높은 굽 신고 있다가 그렇게 급정거했으면 난 운전기사 아저씨한테 인사하러 갔을 것이다. 어찌나 아찔하던지...;;;
헌데, 집에 와서 보니 양쪽 무릎에 멍 들었다. ㅠ.ㅠ